곽경택 감독의 첫 번째 사랑이야기 <사랑>은, 남녀의 사랑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남성적 서사’가 더 도드라진 영화였다. 멜로드라마로만 보기엔 망설여지는 부분이 있었다.(실제로, <사랑>의 장르는 액션/드라마로 구분돼 있다.) 그런 의미에서 <통증>은 곽경택 감독이 그리는 본격 러브스토리라 할 수 있다. 영화는 곽경택 스타일로 불리는 기존 ‘부산느와르’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작가 강풀이 있다. 자신이 창조한 시나리오로만 작업해 오던 곽경택은, 강풀의 원안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처음 있는 일이다. 그래서 <통증>에는 기존 곽경택 영화에 있었던 것들이 없다. 구수한 부산 사투리가 없고, 부산 바다가 없고, 싸나이 의리에 대한 무조건적인 환상이 없다. 그동안 (자주 지적되어 온)마초이즘도 안 보인다. 대신 영화엔 애달픈 순애보가 시종일관 넘실거린다. 곽경택의 변신이라면 변신이다.
아쉬운 건 감독이 새롭게 시도한 세계를 채우고 있는 게, ‘지독한 신파’라는 거다. 평소엔 까칠하지만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만큼은 순진한 양이 되는 건달, 긴 생머리를 휘날리는 불치병의 여자, 폭력과 가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미 너무나 많은 멜로영화들이 시험한 소재들이다. 결국 감독은 개인의 변화에는 성공했지만, 신파멜로가 지닌 고질적인 관습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좋은 결과물을 내놓지 못한다. <통증>을 곽경택식 멜로라 말하기 힘든 이유다.
다만 신파멜로가 짊어진 어떠한 임무를 생각한다면, <통증>은 제몫을 잘 완수해낸다. 영화는 때로는 감동적이고, 때로는 애잔하고, 때로는 슬프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특히 권상우는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짧은 혀’ 콤플렉스까지 웃음소재로 활용하며, 내면의 아픔을 몸의 언어로 묵묵히 끌어올린다. ‘달달한 이미지를 너무 우려먹는 게 아닌가’ 염려가 될 때도 있지만, 멜로가 근사하게 어울리는 배우임에는 틀림없다.
2011년 9월 7일 수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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