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지난 몇 년간 TV 예능국들이 마음에 새겼을 구호다. 시작은 <무한도전>이었다. 유재석을 중심으로 모인 6인의 MC는, 예측불허의 미션을 리얼하게 수행하며 시청자를 TV 앞으로 불러 모았다. <무한도전>이 인기를 끌자, ‘모방과 창조 사이’ 그 어디쯤에서 후발주자들이 생겨났다. 멤버들을 야생에 풀어놓자 <해피선데이-1박 2일>(이하 <1박 2일>)이 탄생했다. 멤버 성비를 혼합하자 <패밀리가 떴다>가 떴다. <무한도전>의 야구버전격인 <천하무적 야구단>이 등판했고, 멤버 전원을 여성 아이돌로 변주한 <청춘불패>가 ‘농활’에 나섰다. 리얼 버라이어티 토크쇼라는 변종도 탄생했다. <황금어장-라디오스타>(이하 <라디오스타>) <세바퀴>등이 대표적인 변종들이다. <무한도전>의 피를 수혈 받은 예능들이 저마다 진화와 위기를 거듭하는 사이, 집단 MC체제 리얼 버라이어티는 대한민국 예능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조직 생활의 맹점은 한두 명이 실수를 하거나 말썽을 피웠을 때, 그 피해를 조직 전체가 함께 떠안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공생과 상생, 혹은 기생으로 묶인 집단 체제에서 누군가의 이탈은 멤버 관계에 적잖은 파장을 미친다. 우연찮게도 최근 인기 예능 프로그램 3개가 집단 MC체제 리얼 버라이어티의 아킬레스건을 드러냈다. 신정환이 해외 원정도박 의혹 속에 잠적하자 <라디오스타>는 잡음으로 몸살을 앓았다. MC몽의 병역기피 의혹으로 <1박 2일>의 하루는 1년과 같이 무거워졌다. 필로폰 투약혐의로 구속된 김성민 사태는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이하 <남자의 자격>)에 ‘멤버의 자격’에 대한 물음표를 던졌다. 리얼 버라이어티가 가장 큰 무기로 삼았던 멤버들의 리얼한 삶이, 독이 되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 ‘섹션TV’ 자료화면에 모자이크 된 채 등장한 신정환(좌) 새로운 멤버 김희철(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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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솔들에게 우환이 생기면서 새로운 멤버 충원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예능에서 교체 멤버 찾기란, FA 시장에 나온 선수 영입하듯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교체 멤버의 이미지, 도덕성, 기존 멤버와의 관계 등 객관적인 스펙 이상의 것들을 고려해야 했다. 맞선(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나선다 한들, 적임자 찾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특히 새 식구를 잘못 들인 탓에 시즌2에서 ‘패가망신’한 <패밀리가 떴다>, 멤버교체 실패로 ‘불패신화’로 남은 <청춘불패>의 사례는 제작진이 결정을 더욱 심사숙고하게 만들었다. 새 멤버에 대한 대중의 막대한 관심 역시 넘어야 할 산이었다. 새로운 멤버에 대한 기대와 우려의 시선은 출연 제의를 받은 사람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전가됐다. 불난 집에 불을 끄는 해결사로 선뜻 나설 예능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결국 윤계상이, 송창의가, 그리고 (알려진 바로는)유희열이 국민 예능의 주전 자리를 고사했다.
많은 사람들이 위기라 했다. 신정환을 대체할 수 있는 멤버는 없을 거라 했다. MC몽이 하차한 <1박 2일>은 멤버들 간 힘의 균형이 무너져 타격을 받을 것이라 했다. 하지만 ‘인생은 일 막의 show’와 같다고 그 누가 말했나. <라디오스타>는 빈자리에 김태원, 토니, 김희철, 문희준 등을 일일객원 MC로 기용하며 우려를 기대로 돌려놓는다. 물론 그들 중 그 누구도 ‘신정환이 지닌’ 얄밉지만 밉지는 않은 특유의 재간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신정환이 지니지 못한’ 본인들만의 B급 정서로 독특한 웃음을 제조했다. 특히 그들이 보여준 3MC와의 궁합은 신정환과는 또 다른, 경쟁력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과정을 통해 김희철이 최종 승선했다. 그리고 <라디오스타>는 언제 위기를 맞았냐는 듯, (신정환 없이도)매주 수요일 밤 전파를 타고 흐른다.
| MC몽의 <1박 2일> 출연 시절(좌) 제6멤버 엄태웅을 맞은 <1박 2일>(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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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1박 2일>은 나영석PD가 전면에 나서며 프로그램 포맷에 변화를 줬다. 특히 나PD는 뜻밖의 예능 포텐셜을 투하하며 MC몽의 빈자리를 메웠다. ‘제6의 멤버=나영석PD’라는 네티즌들의 농담을 가장한 진담이 쏟아졌다. 특기할만한 건, 이 과정에서 나PD의 존재감이 <무한도전> 김태호PD 못지않게 상승했다는 점이다. 팬들은 김태호를 신뢰하듯, 나 PD에게 무한신뢰를 보내기 시작했다. <1박 2일>은 나PD라는 경쟁력 있는 브랜드를 위기의 순간, 팬들에게 각인시킨 셈이다. 팀을 총괄하는 선장이 믿음을 획득했다는 건, <1박 2일>으로서는 큰 수확이었다(최근 동시간대 방영 중인 <나는 가수다>의 PD 논란과 비교하면, 더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마침 흘러나오기 시작한 제6의 멤버에 대한 다양한 추측들은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후보군에 오른 연예인을 두고 누리꾼들 사이에서 갑론을박 설전이 벌어졌다. 논란을 먹고 사는 예능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찾아 온, <1박 2일>의 터닝 포인트. 엄태웅이 제6멤버로 확정되자, 관련 소식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박지성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 소식이 이보다 호들갑스러웠을까. 폭발적인 관심 속에서 <1박 2일>의 주가도 덩달아 치솟았다. 엄태웅의 활약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벌써부터 ‘엄태웅 효과’라는 평가가 나오고 시청자의 호평이 쏟아지는 걸 보면, <1박 2일>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있는 게 분명하다.
| 이제는 볼 수 없는 김성민(좌) <남자의 자격> 제7멤버로 발탁된 양준혁의 <1박 2일> 출연 당시(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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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스타>의 김희철 선택이 ‘안정적’이고, 엄태웅의 <1박 2일>이 합류가 ‘뜻밖에’라면, <남자의 자격>이 제7멤버로 내민 양준혁 카드는 ‘도박’에 가깝다. 집단 MC체제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화장 지운 배우를 목격하는 건,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니다. 망가지는 아이돌을 만나는 것 또한 이젠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전직 야구 선수가, 그것도 ‘양신’으로 불리며 한 분야에서 최고의 성과를 일궈낸 선수가 예능에 고정으로 출연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남자의 자격>에 양준혁의 합류가 기대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다. 집단 MC체제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제작진의 기획과 멤버들 간의 관계는 프로그램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다. 기획 가능한 관계 설정의 가짓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캐릭터와 캐릭터가 만나 일으키는 시너지가 크면 클수록, 그 관계가 특이하면 특이할수록 유리하다는 얘기다. 야구선수 출신 멤버의 합류로 <남자의 자격>은, 새로운 포맷의 리얼 버라이어티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셈이다. 한때 식상하다 평가 받았던 리얼 버라이어티는, 배우들에게서 위기해결책을 찾았다. 신선한 배우들을 끌어와 분위기를 쇄신했다. 하지만 이제 배우는 더 이상 ‘인적구성 차별화’에 중요한 변수가 되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운동선수’ 양준혁이란 미개척지는 예능이 발굴한 또 하나의 블루오션이다.
신정환, MC몽, 김성민의 하차로 집단 MC체제 리얼 버라이어티는 한차례 심한 홍역을 앓았다. 집단 체제가 지닌 취약점도 드러냈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그들은 위기에 대한 면역력을 키웠다. 이제 더 이상, 멤버의 위기는 팀의 위기가 아니다. 어느덧 예능은 멤버의 위기마저도 전술의 하나로 승화시키는 수준에 도달했다. 집단 MC체제 리얼 버라이어티는 그렇게 진화중이다.
2011년 3월 25일 금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