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인장이 찍혔다면, 일단 인생에 대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부터 들기 마련이다. 그의 전작들을 봤던 관객들은 두꺼운 책으로 가르침을 설파하는 현자들보다 유연하게 삶을 돌아보며 인생의 깨달음을 전하는 이 노장 감독의 영화를 더 선호할지도 모르겠다. 사후세계를 뜻하는 제목인 <히어애프터>는 물론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감독은 직간접적으로 죽음을 접한 세 주인공을 통해 죽음이 또 다른 삶의 시작이라 말하고 있다. 기자로서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만을 믿는 마리는 사후세계를 경험한 뒤 삶의 새로운 행복을 얻고, 조지는 아이러니 하게 저주라고 믿는 그 특별한 능력으로 인해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마커스는 형의 죽음을 계기로 힘겨운 삶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감독의 여타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역시 화려한 영상미나 극적인 상황은 없다. 대신 죽음의 문턱에서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유유히 따라갈 뿐이다. 쓰나미 장면이나 런던 지하철 폭파 장면 등 실제 일어났었던 사건을 영상으로 옮기면서 잠시나마 스펙터클한 순간이 연출되기도 한다. 하지만 <히어애프터>는 죽음과 새로운 삶 사이에 놓인 다리를 힘겹게 걸어가는 인물들의 발걸음만을 고집스럽게 주시한다. 이후 각기 다른 곳에 사는 세 인물의 발걸음이 거짓말처럼 한 공간에서 멈출 때, 그리고 서로의 고통을 나누는 동시에 희망의 씨앗을 가슴에 심어줄 때, 노장감독의 고집스러움은 비로소 빛을 발한다.
그 고집스러운 연출을 받아들이는데 있어 관객마다 약간의 편차가 있을 수 있지만, <히어애프터> 또한 죽음을 소재로 다뤘던 전작의 연장선에 안착하는데 성공한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나 <그랜 토리노>에서 느낄 수 있었던 인상적인 장면의 부재가 조금은 아쉽지만, 죽음을 통해 또 다른 희망을 보여주려는 노장 감독의 진심어린 조언은 마음의 양식을 얻는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어쩌면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극중 조지가 위대한 사람으로 칭했던 소설가 찰스 디킨즈의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에게 죽어서도 진정한 삶의 소중함을 전하는 사람이 되려고 말이다.
2011년 3월 24일 목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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