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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짓 존스의 일기 2배쯤 재밌게 보기
브리짓 존스의 일기 | 2001년 9월 5일 수요일 | sweetalker 이메일

1. 정말 후진 번역을 극복한다.

이 영화는 대본을 보고 번역한 게 아닌 모양이더군요. 그래서 마크 다아시의 대사들은 안 그래도 별로 없는데 거의 대부분 과감하게 삭제를 했습니다. 그래서 마크 다아시가 사실 좀더 재미없는 캐릭터가 되기도 한 것 같아요. 몇 가지 생각나는 부분만 짚어보려 합니다.

* 마크 다아시와 나타샤가 호텔 로비에서 브리짓 일행과 마주쳤을 때.

다아시는 나타샤와 함께 왔다고 말하면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완전히 주말을 낭비하지(entirely wasted weekend) 않아도 된다고" 조금 장황하다 싶을 정도로 설명을 하죠. 이 부분에서 우리는 다아시가 나타샤와 애인관계로 오해되기 싫어한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데요. 브리짓을 의식해서 한 말이 아닐까요.

그랬더니 다니엘 클리버가 "Oh, What a gripping life you lead!(거 참, 근사한 인생을 사는구만!)"하면서 비꼬거든요. 하지만 번역에서는 완전히 이 부분이 사라졌습니다.

* 마크와 브리짓이 출판사에서 마주쳤을 때

브리짓은 마크를 "그래프튼 언더우드 출신"이라고 말하는데, 외국 게시판에서 본 바에 의하면 그게 아마 시골인 모양입니다. 정확한 뜻을 물어두었는데 답을 받으면 알려드릴께요. 일부러 약간 짓궂은 소개를 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브리짓의 소개는 "마크는 잘 나가는 변호사지만 촌구석 출신이에요." 정도가 되었을 것 같지요. 그랬더니 마크가 바로 "브리짓은 우리 집 풀장에서 홀딱 벗고 놀았다"고 복수를 하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요것 봐라"는 듯 고소한 표정으로 와인을 마시죠. 마크의 유머감각이 완전히 꽉 막힌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부분인데요.

* 마크가 브리짓을 부엌의 대재난에서 구출해 줄 때.

이 부분의 번역은 거의 완전히 소설입니다. 마크와 브리짓의 관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부분인데요.

마크가 와인잔을 따르면서 "They are coming to see you, not the orange parfaits in sugar cages"라고 말하는데요. 브리짓 소설에도 나오는 대사죠. "친구들은 당신을 보러 오는 거지 설탕새장에 갇힌 오렌지 파르페를 보러 오는 게 아니라는" 이 다정한 말이 글쎄 "어차피 망쳤으니 한 잔 들어요"라는 정없는 대사가 되었습니다. 헉.

그리고 나서 이어지는 대사들 중에요. 내가 정말 벗고 풀장에서 놀았느냐는 말에, 마크가 말하죠. "당신은 네 살이었고 나는 여덟살이었다"고요. 그러자 브리짓이 "나이 차이가 꽤 되는군요." 라고 말한 뒤, "Quite pervy, really?", 즉 "흠, 꽤 야했겠는걸요."라고 말하거든요. 그러자 마크가 "Yes, I'd like to think so.", 즉 "그래요. 그렇게 생각하고 싶군요."라고 하죠. 마크가 브리짓에 대한 애정을 이렇게 솔직히 표현해 버리자, 분위기가 어색하고 묘해지는 거예요.

그런데 번역에서는 "나이차가 꽤 되는군요."라고 한 뒤에, 브리짓이 "그 정도는 별 거 아니죠."라고 말하죠. 사실은 마크가 브리짓한테 애정을 표현하는 부분이 브리짓이 과감하게 대시하는 부분으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저런.

아무튼 브리짓이 네살, 자기가 여덟살이었다는 걸 그렇게 정확하게 기억하다니 마크가 어려서부터 브리짓한테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닐까요.

그리고 나서 요리중에, 마크가 "girkin이나 stuffed olives" 있느냐고 묻죠. 이게 브리짓의 엄마가 항상 하는 요리잖아요.

특히 루돌프 스웨터 입고 처음 만났을 때, 제프리의 아내 유나 아줌마가 브리짓 엄마한테 눈치를 막 주면서 부엌에 가서 수프를 체로 거르자고 했더니 브리짓 엄마가 "Who needs sifting? Just stir(거르긴 뭘 걸러, 그냥 저어.)" 라고 하니까 유나가 막 눈짓을 하죠. 그제야 눈치를 채고 두 사람을 떠나는 장면, 있었죠? 전형적인 선보는 장면. 하하. 그 이야기를 그대로 하는 거예요.

브리짓이 초록색 건더기 케이퍼 그레이비는 체로 쳐야겠다고 하니까, 마크가 "Who needs sifting? Just stir." 라고 하거든요. ^^ 아,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번역에서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 브리짓이 마크에게 고백할 때

마크가 브리짓에게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알쏭달쏭할 고백을 한 것처럼 브리짓도 마크에게 이런 저런 점이 문제지만 그대로 좋아요, 라고. 원문으로는 거기서 브리짓이 마크의 눈사람 넥타이를 보면서 "You always wear strange things your mom gives you, tonight's another classic"이라고(기억이 완전히 정확한 지는 모르겠지만, 그 비슷한) 말한 것 같은데요. 번역하자면 "당신은 맨날 어머님이 주신 괴상한 옷들을 입고 있구요. 오늘도 걸작이군요" 정도 되겠는데요. 자막에서는 "오늘은 괜찮군요"로 번역되었어요. 저런.

* 브리짓의 부모님이 화해할 때

엄마가 아빠한테 "You used to be mad about me. Couldn't get enough of me."라고 할 때 "당신은 늘 내게 화를 냈어요"라고 자막에 나오더군요. 쯔쯧. 여기서 "Mad about me"는 화가 났다는 뜻이 아니라 미치도록 사랑했다는 뜻입니다. 열렬하게 사랑해서 "아무리 사랑해도 질리지 않을" 정도였다는 거죠. "Couldn't get enough of me"는 의역을 해야 하는데, "바로 곁에 있어도 그리워했다" 정도 될까요.

브리짓의 엄마가 원하는 건 두 사람의 열정이 다시금 타오르는 것이지요. 브리짓의 아빠가 엄마한테 늘 화낼 사람이 아니라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는데.

* 창녀와 목사들 가장무도회

이 부분은 한 번 언급하고 넘어가긴 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자막에서 짚어주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머리에 빨간 꽃 꽂은 아줌마가 왜 삐지는지 잘 알 수 없지요.

사실 사직서를 낸 브리짓에게 다니엘이 "come on, Bridget"(이러지마, 브리짓)이라고 하는 부분이 "어서와, 브리짓"으로 번역되는 등, 소소한 잘못이 곳곳에 있긴 하지만 뭐 다른 건 그런대로 괜찮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실수는 대형사고 아닌가요.

2. 곳곳에 숨어있는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 유머들

이 영화, 미국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외국 사람들보다는 영국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유머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첫째, 브리짓이 말하는 F.R. 리비스 교수. 20세기 영국 영문학계의 태두죠.
리얼리즘 비평의 거두인 이 사람과 포스트 모더니스트 소설가인 커트 보네거트라니, 일단 정말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죠. 브리짓이 쥬드와의 전화를 리비스 교수와 통화하는 것처럼 하면서, 진짜 "보네거트 적인 작품이다"라고 하거든요. 하하. 일단 여기서부터 웃기기 시작해서 78년에 죽은 얘기까지 하면, 대형사고죠. 브리짓이 원작에서 영문과 출신으로 되어 있는데, 사실 작가나 비평가 이름만 알고 졸업하면 그런 실수 충분히 할 수 있잖아요. 리얼했어요.

둘째, 출판사 파티에 곳곳이 숨어있는 실제의 유명작가들.

불쌍하게도 사람들마다 화장실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았던 그 흰수염에 대머리 아저씨. 다들 아시겠지만, [악마의 시]를 쓰는 바람에 호메이니가 암살명령을 내려 숨어사는 그 작가입니다. 살만 루시디는 유명한 헬렌 필딩의 팬이죠. 필딩과는 색채가 전혀 다른 작가입니다만. 20세기 영미문학에서는 가장 중요한 작가들 중 한 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번역에서는 '러쉬씨'라고 했어요.) 그런 루시디한테 "당신 작품도 빠지지는 않아요"라고 했으니, 이런 망신이.

루시디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고 있을 때 "마틴의 견해" 운운하죠. 여기서 마틴은 마틴 에이미스입니다. 마틴 에이미스 역시 영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소설가인데요. 심지어 꽤 잘생기기까지 해서 일종의 명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루시디 말고 또 한 사람 아처 경이라고 했던, 늙은 스팅이 안경쓴 거처럼 생긴 분 있죠. 그 사람은 영국 최연소 하원의원이자 보수당 부총재까지 했던 소설가 제프리 아처입니다. 한 때 유명했던 정치소설(샘 닐이 주연한 미니 시리즈로도 유명했던) [카인과 아벨]을 쓴 작가이지요.

앗, 참, 출판사 이름이요. 다니엘이 브리짓을 꼬실 때 뒤에 보이던 출판사의 찬연한 그 이름, 펨벌리 프레스(Pemberley Press), 이건 다 아시겠죠. [오만과 편견]의 미스터 다아시의 아름다운 장원입니닷. 핫하하.

세째, 젖은 셔츠 유머 - 굳이 호수에서 다니엘을 빠뜨리는 건,
그 유명한 미스터 다아시의 젖은 셔츠에 대한 인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하. "나는 왕이다(I'm King of the World)"는 누가 봐도 [타이타닉]의 레오를 흉내내는 것이구요. 그건 모르시는 분 없으시겠지만요. ^^

네째, 마지막 브리짓의 연설.
영국에도 최고의 인재들이 필요하다...는. 이거 우리들한테는 어거지로 들리는데요. 사실 어거지이긴 했지만, 영국 사람들에게는 아주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닙니다. 일종의 농담이죠. 우리 나라도 유명해지면 미국 가지만, 영국 같은 경우 언어장벽이 없기 때문에 의사도, 변호사도, 잘 나가면 결국 다 미국으로 빠져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영국의 의료체제가 공공체제로 완전히 편입한 후, 화려했던 의학의 업적이 몰락한 이유는 바로 그 끔찍한 브레인드레인 현상 때문이었죠. 하하. 나중에 "훌륭한 연설이었다"고 마크가 말하지요. 훌륭한 연설이었습니다.

다섯째, 곳곳에 숨어있는 제인 오스틴에 대한 인용.
특히 [오만과 편견]이요. 여기서 미스터 빙리로 나왔던 크리스핀 본햄 카터가 출판사 직원으로 슬쩍 출연합니다. 어디 게시판 보니까 Bingley Spotting이라고 해서 찾기 놀이도 하는 모양이던데, 전 솔직히 못 찾았어요. -.- 다음에 볼 때나 한 번. 그리고 나타샤로 출연하는 엠베스 데이비츠는 영화 [맨스필드 파크]에서 거의 똑같은 역으로 나왔답니다. 이름이 뭐더라.

암튼 저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아기자기해서 좋았는데 번역이나 마케팅에서 그런 의미들이 많이 사라져서 단순한 슬랩스틱이 된 게 좀 아쉽습니다.

(브리진 존스의 일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중에서..)

4 )
ejin4rang
브리짓존스재미있죠   
2008-10-16 17:08
rudesunny
너무 너무 기대됩니다.   
2008-01-21 16:13
kangwondo77
브리짓 존스의 일기 2배쯤 재밌게 보기   
2007-04-27 15:34
ldk209
노처녀의 심리... 아주 탁월해...   
2007-01-3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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