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막상 <파이터>를 보면 영화의 포커스는 미키(마크 월버그)에서 벗어나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대신 그의 주변―특히 가족들에게 상당부분 맞추어져 있다. 미키의 집안은 말 그대로 ‘콩가루’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다. 그가 자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지부진한 백업선수 신세를 면치 못하는 이유는 인생에 도움 안 되는 그의 형 디키(크리스천 베일)와 어머니(멜리사 레오) 때문이다. 그의 트레이너를 맡고 있는 이부형제 디키는 미키에게 복싱의 모든 것을 가르쳐준 복싱 영웅 출신이지만, 지금은 사고나 치고 다니는 마약중독자다. 매니저인 어머니는 미키가 받는 대전료에 급급해 아들에게 매번 불리한 경기를 종용한다. 그럼에도 미키는 가족을 떠나기는커녕 불평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다.
가족이란 늘 애증의 대상이고, 그 자체로 딜레마다. ‘가족공동체’라는 울타리 안에서 누군가는 미키처럼 희생당한다. 그런 점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미키의 연인 샬린이다. 그녀는 가족구성원이 아닌 제3자, 외부인이다. 그렇기에 미키가 가슴 속에만 쌓아놓고 차마 가족들에게 꺼내놓지 못하는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었고, 미키가 처해 있는 상황을 반전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샬린이 어머니와 형에게 미키의 스트레스를 직설적으로 대변하는 지점은, 갈등을 진행시키고 또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역할이라는 점에서 중요하고 흥미롭다.
<파이터>의 이야기는 미키의 복싱 인생의 하이라이트, 예를 들어 서두에서 언급한 가투와의 명승부 등은 배제한 채, 그가 서른 살이 넘어 뒤늦게 처음으로 세계 챔피언이 되는 순간까지만 진행된다. 그 과정은 역경을 헤치고 밑바닥에서부터 최고의 자리에 오른 챔피언의 이야기인 동시에, 갈등과 오해 끝에 사랑을 확인하는 가족의 이야기라는 지극히 할리우드적인 패턴을 따른다. 물론 이것은 실화이고, 미키의 인생 이야기가 그 자체로 강력한 드라마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모든 갈등이 갑자기 눈 녹듯 사라지는 엔딩은 다소 갑작스럽고 비약이 심하다. 실화의 팩트와 관계없이 클리셰로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파이터>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디키다. 크리스찬 베일은 디키 역을 위해 무려 14kg을 감량하며 완벽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비쩍 마른 몸, 개개 풀린 눈으로 산만하게 건들거리는 그의 언행은 마약에 찌든 밑바닥 인생 그 자체다. 신경질적이고 억척스러운 어머니 역의 멜리사 레오의 존재감 역시 막강하다. 결과적으로 어머니와 형은 아카데미의 남우조연상을 휩쓸었다. 그러나 그들이 빛나는 만큼 정작 주인공인 미키는 상대적으로 가려진다. 그게 과연 좋은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관점의 차이에 맡겨야 할 듯하다.
2011년 3월 4일 금요일 | 글_최승우 월간 PAPER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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