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남편, 잘 자란 아이들. 풍족한 가정에서 완벽한 삶을 꾸리고 있는 피파 리(로빈 라이트 펜, 블레이크 라이블리)는 나이 많은 남편 허브(앨런 아킨)의 건강을 위해 한적한 교외로 이사를 온다. 처음엔 모든 게 순조롭다. 아니 순조로워 보인다. 피파 리가 자신이 공허함을 깨닫기 전까지는. 어느 날, 피파 리는 자신이 몽유병에 걸려다는 사실을 알고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옆집에 이사 온 크리스(키아누 리브스)를 만나면서 묘한 감정을 느낀다. 급기야 남편이 이웃 산드라(위노나 라이더)와 불륜 사실인 걸 알게 되면서, 피파 리의 완벽해 보이던 성엔 돌이 킬 수 없는 균열이 생긴다.
공허한 삶을 살던 중년 여성이 자아를 찾고, 덤으로 연하까지 얻는다는 이야기는 빤하고 빤하다. 당장 방영 드라마 <역전의 여왕>부터 추억의 명화 <델마와 루이스> 최근 개봉작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까지 수많은 연상 영화가 솟구친다. 현재 극장에 걸려있는 <아이 엠 러브>의 엠마(틸다 스윈튼)도 국적만 달랐지 피파 리와 판박이다. 그렇다면, 이제 관건은 후발주자인 이 영화가 본인만의 차별화를 어떤 식으로 이뤄내느냐다. 이 고민에서 영화가 선택한 키워드는, ‘엄마와 딸’, 그리고 ‘죄의식’이다.
‘특별한 로맨스’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 영화의 원제는 <The Private Lives Of Pippa Lee,피파 리의 은밀한 삶>이다.(키아누 리브스를 이용한 홍보사의 로맨스 전략이, 영화를 보면 그리 달갑지 않다.) 원제처럼 영화는 피파 리의 로맨스보다 그녀 삶의 은밀했던 부분을 탄생에서부터 현재까지 연대기 순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독특한 게 있다면, 그 연대기를 현재와 삶과 교차되며 드러내는 기술이다. 완벽해 보이는 여자의 숨기고 싶은 과거가 하나씩 까발려지는 과정을 통해, 영화는 극적인 재미를 노린다. 특히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던 피파 리와, 피파 리를 이해해 주지 않는 그녀 딸의 관계는, 애증과 애정과 집착과 우정으로 뭉친 ‘엄마와 딸’이라는 희귀한 관계의 이해를 돕는다.
한편 피파 리의 이 완벽해 보이는 결혼에는 또 하나의 맹점이 있다. 피파 리가 남편 허브를 만날 당시, 그가 유부남 이었다는 것. 그리고 남편의 바람을 알게 된 허브의 전 부인이 자살을 했다는 것. 허브 전 부인에 대한 죄의식은 피파 리로 하여금, 남편에게 평생 헌신해야 한다는 일종의 부담감을 안긴다. 피파 리가 오랜 시간 믿었던 남편과의 사랑. 그러니까 이 사랑은 죄의식과 인내가 동반된 사랑인 셈이다. 영화는 이러한 죄의식이 한 여자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갉아 먹는지를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바라본다. 그리고 그 죄의식이 발화 되는 순간을 향해, 서두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보폭으로 전진한다.
<피파 리의 특별한 로맨스>에서 눈에 띄는 건, 배우다. 영화에는 주인공 로빈 라이트 펜, 블레이크 라이블리 외에도 키아누 리브스, 줄리안 무어, 위노나 라이더, 모니카 벨루치 등 인기 스타들이 대거 출연한다. 의외이면서 놀라운 건, 이들이 영화에서 진지하게 망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톱스타를 데려다가 이토록 망가뜨릴 수 있었던 건, 브래드 피트의 영향이다. 브래드 피트는 <시간 여행자의 아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 이어 이 영화로 또 한번 제작자 명함을 달았다.
2011년 1월 31일 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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