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은? 1960년 서울출생. 1978년 미스롯데선발대회 인기상 수상, 연예계 입문. TBC 20기 탤런트. 드라마 '마포나루' '상처' '짝사랑' 등 출연. 영화는 '불새'를 시작으로 '고래사냥'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바람난 도시' '뽕' '겨울 나그네' '정사' '단적비연수' 등 출연. 대종상 신인여우상(불새), 대종상 여우주연상(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아시아 태평양영화제 최우수 여우주연상(뽕) 등 수상. 최근 호연을 펼친 영화 '베사메무쵸'가 31일 개봉됨.
영화배우 이미숙. 가을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늦여름의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그녀를 만났다. 높은 곳에서 서울을 내려다 보니 참 멀리 보였다. 그랬다. 이미숙은 멀리 보려고 했다. 연기자로서 멀리 보고 달리는 마라톤 주자이기를 원했다. 한때 '고래사냥' 등 우리 시대를 풍미한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그녀는,결혼과 동시에 잠시 스크린에서 만나질 못했다. 88년 '두여자집' 이후 가정이라는 공간에 잠수해 있던 그녀는 98년 '정사'(이재용감독)로 충격을 던지면서 복귀했다. 그녀의 복귀는 중년 배우들이 설 자리가 없는 영화현실에 가능성을 열어주면서 그녀의 꺾이지 않는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신화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정사' 서울관객 38만명, 이어 출연한 '단적비연수'(박제현 감독) 또한 서울관객 70만명,40대 여배우로 흥행신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중년 배우로 흥행신화를 이어가는 유일한 배우인 셈이다. 연기자로서 그녀의 생명력은 물론 지고는 못사는 강한 근성에서 시작됐지만,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에게 하나의 선물같은 존재이다. 그 선물은 관객들에게 영화선택의 폭을 넓혀주면서 40대 이후에겐 추억의 신선함을,젊은 세대들에겐 색다른 연기 맛을 전해준다. 제2의 전성기를 활짝 열고있는 것이다. 그녀는 "인생체험을 표현으로 옮길 수 있는 중년 배우들의 설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며 "어른이 볼만한 영화, 인생을 생각해 볼수 있는 영화 역시 제작편수가 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 '베사메무쵸'(전윤수 감독,강제규 필름 제작)에서 그녀는 평범한 주부 영희로 출연, 호연을 펼쳤다. 이 영화는 물질(돈)과 성(섹스)로 위협받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한 가족의 안쓰러운 삶을 담은, 가슴을 저리게 하는 아픈 영화다. 사랑이란, 돈이란, 가족이란, 자기지키기란 무엇인가를 잘 정돈된 그림 속에 담아낸 수작이다. 이미숙은 이 영화에서 극중 영희역을 맡아 그녀 특유의 감각과 세련미 그리고 중후한 맛의 연기로 관객들의 가슴을 후벼 놓는다. 그 울림은 배우 이미숙의 힘이 큰 목이다. 온갖 위험과 유혹이 도사리고 있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그늘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한 가족이 현실과 싸우는 눈물나는 투쟁이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는 영화다. 이미숙은 타인의 삶을 표현하는 일은 매우 어렵지만, 아주 일상적이고 흔한 인물을 표현하는 게 더 어렵다고 했다. 좋은 연기는 농후해야하고, 간장에 저린 듯이 익어있는 연기가 진정한 연기라고 말했다. 그녀는 영화촬영현장을 전쟁터에 비유했다. 학원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전략은 집에서 현장에서는 프로로서 모든것을 집중해서 보여주는 곳이어야한다고 했다.
최근 한국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사랑에 보답하는 것은 철저한 프로근성이라고 했다. '정사' 이후 최근 신인감독과 작업을 주로하는 것에 대해 감각과 경험의 조화라고 말했다. 싱글 수준이 골프도 요즘엔 못하고 있고, 술도 즐기나 자리가 많지 않단다. 두 아이들도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 최근에는 영화 일에 더욱 열정을 태우고 있다고. 몇몇 사람들과 영화사 메이필름을 공동으로 설립, 첫 작품을 위한 기획에 몰입하고 있다. 당차고 시원시원한 성격의 그녀는 "꿈은 방대하지만, 차근 차근 준비하고 있다"면서 "첫 영화의 제작발표회를 곧 가질계획"이라고 밝혔다. '고래사냥'의 춘자에서 '베사메무쵸'의 영희로 자신의 연기코드를 변화시키면서 새로운 영화의 바다로 나선 그녀를 만나봤다.
-근성이 대단한데?
▲제 성씨가 이순신 장군의 덕수이씨에요. 제가 상을 받으면 종친회에서 거북선을 내려보내요. 장군의 기질을 타고 나서 그런가 봐요.(웃음)
-지난 88년 '두 여자의 집' 이후 10년동안 공백기를 가졌는데?
▲여배우가 결혼하면 현장으로부터 멀어지는 현상이 안타까웠어요. 아이도 낳고 세상도 더 살아보고 이제 연기할 나이에,체험이 묻어있는 연기를 할 나이에 죽어버리는 현실이 참 서글펐어요. 갈등,고민이 많았지요. 배우로서 주저 안고 말아야 하는가? 다시 일어서야 한다며 어떻게 해야하나? 자신을 채근하면서 보낸 시절이었어요. 그런 면에서 그 시간들은 공백이 아니었어요. 사회의 편견, 영화계의 현실, 그리고 제 자신과 싸운 시간이었습니다.
-영화적 열정의 문제인가?
▲그렇죠. 결혼해서 아이 낳으면서 맡아야하는 통과의례적인 배역이 참 많아요. 그 배역도 중요했지만, 배우로서 하고 싶은 배역에 대한 갈망도 컸어요. 또 영화의 배역도 나이 들면 그 나이에 맞는 역할을 맡아야만 하는 것도 싫었구요. 배우에게 있어 캐릭터는 항상 열려 있어야하고 현실적으로도 가능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여배우의 생명력은?
▲스타는 만들어내는 성향이 강하죠. 시대가 만들어내는 것이죠. 연기자는 탄생되는 거에요. 스타에서 진정한 연기자로 한발짝 내디딜 수 있도록 자기노력과 주변(사회)이 도와 주어야합니다. 사회구조와 병행되어야 해요. 그것을 인정치 않으려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한 두사람이 시도했으나 성공을 못했어요. 중도 포기한 사람이 많아요.
-그 출발점에 서 있는데?
▲흥행이 영화의 전부는 아니지요. 중년 배우들, 특히 여배우들의 생명력은 너무 짧았어요. 흥행 때문에 제외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렇다 보니 중년 배우들의 설 자리가 좁아진 게 사실이지요. 이제 우리 영화는 폭과 깊이가 함께 발전해야한다고 생각해요. 감각을 넘어선 인생의 이야기를 담은, 감동을 줄수 있는 영화가 많았으면 해요.
-배역을 맡으면 어떻게 성격 구축을 하는가?
▲배역을 맡으면 그 역할에 젖어서 살아요. 이번 영화 '베사메무쵸'의 경우는 극중 인물인 영희에 저저서 일상을 살아가지요. 그래야만 리얼리티가 살아나는 거지요. 예를 들면 영희가 무엇을 먹으면 어떻게 먹을까? 화를 내면 어떻게 낼까? 등등이 그것이죠.
-''베사메무쵸의 영희는 퍽 자연스러운데?
▲이미지 컷을 상당히 많이 만들어 봤어요. 영희에 대한 인물의 성격을 10개 정도 만들어서 그 가능성을 항상 생각했어요. 감독과 현장에서 만나 그 열개 중 하나를 골라 작품속에 심었어요. 배우는 연기의 틀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 틀을 부수는 노력, 그게 배우가 할일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영희는 가장 보편적인 인물이지요. 그런 만큼 연기하기가 참 어려웠어요. 가장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것의 표현이야말로 참 어려운 것입니다.
-좋은 연기는 극속에 묻혔을 때 발산되는데?
▲디테일을 계산하기 보다는 영화 전체의 흐름에 익숙해져야 하고, 그 흐름을 따라 배우 이미숙이 극중인물로 묻혀야 하는 것이지요. 전 혼자 두드러지는 것은 경계해요. 저만 잘하려고, 잘 보이려고 하면 영화의 완성도에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어요, 영화는 앞뒤 구분없이 짤라서 찍기 때문에 특히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을 볼줄 알아야해요.
-'베사메무쵸'의 시사회 반응이 좋은데?
▲어른들을 위한 영화이고 가족을 위한 영화에요. 평범한 남녀가 만나서 결혼해 가정과 인생을 꾸려나가면서 만나는 불륜, 그 위험(한국적 현실)으로부터 헤쳐나오려는 모습을 담고 있어요. 인간이면 누구나 가정이란 둥지를 틀고 살지요. 그 둥지를 지키기 위해 예기치 않은 현실과 부딪히는 소시민 가정을 위한 진솔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극 속에서 1억원에 다른 남자와 잠자리 제의를 받는데, 실제상황이라면?
▲전 그렇게 무디진 않아요. 영화적인 답은 영화 속에 있어요.(웃음)
-스스로 생각키에 좋은 영화는 어떤 영화인가?
▲영화는 허구입니다. 허구를 통해 진실을 찾는 것이지요. 전 영화를 보고 '나'를 빗대어 볼수 있는 것들, 뭔가 생각할 수 있는 영화가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메시지, 숙제거리, 고민거리, 추억거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영화가 좋지요. 개인적으로는 '대부' '미드 나잇 익스프레스' 최근에는 '천국의 아이들'을 감동적으로 보았어요.
-최근 한국영화 발전이 눈부신데?
▲좋지요. 굉장히 좋지요. 관객들께서 한국영화에 엄청난 애정을 보여주시고 계세요. 또 얼마나 잘 만드나 검증도 하고 계시구요. 그 다음이 문제지요. 영화인들이 한국 영화를 사랑해주시는 관객들께 어떻게 보답해야할 것인가? 기획-제작-상영까지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책임감을 가지고 한국영화관객들을 지켜내야하는 것이지요.
-앞으로의 계획은?
▲영화 '베사메무쵸'가 잘 되었으면 좋겠구요. 다음 작품은 저의 다른 면을 보여 드릴수 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해요. (그녀는 배우로서 자신이 보여줄수 있는 면이 100개라면 지금까지 70여개 정도 보여드린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공동대표형식으로 지난 5월 창립한 메이필름이 곧 제작에 들어갈 영화가 질되었으며 해요.
◇아름다운 40대, 새로운 비상을 시작한 배우 이미숙. 그녀는 "오래 두고, 가까이 할 수 있는 중년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자료출처 : 스포츠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