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에서 택시를 모는 구남(하정우)은 돈을 불려 빚을 갚으려고 마작을 하지만 항상 잃는다. 돈 벌러 한국에 간 아내는 소식이 없고, 사채업자의 빚 독촉으로 하루하루가 힘들다. 그러던 구남에게 면가(김윤석)는 한국에 가서 사람을 죽이면 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빚도 청산하고 한국에 있는 아내도 찾을 겸, 구남은 황해를 건너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구남이 제거하려는 목표물이 눈앞에서 누군가에게 먼저 제거된 것. 살인 누명을 쓴 구남은 경찰에 쫓기고, 구남에 앞서 목표물 제거를 지시한 태원(조성하)은 구남을 죽여 증거를 없애려고 한다. 한편 구남의 정체를 안 김태원은 연변의 면가를 한국으로 불러들이게 되고, 면가 역시 구남의 목에 돈을 걸고 태원과 거래를 한다.
많은 관객이 기다리던 <황해>가 드디어 공개됐다. 상영시간은 무려 156분! 시사회 당일 아침까지 후반작업을 했다더니 개봉 전까지도 약간의 수정 작업은 계속 될 듯 보인다. <황해>는 분명 <추격자>와 비교해 더 스타일이 정립됐다. 이야기의 힘은 다소 약해졌지만, 스케일은 커졌고, 인간의 감정적인 충돌을 이끌어내는 방식도 달라졌다. 사건 하나하나에 집착하지 않고 큰 그림을 잘 그렸다. 그리고 그 안에 완벽한 로케이션으로 사실감을 확보한 생생한 영상과 지독한 짐승이 된 배우들을 풀어놨다.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잔인함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도 동시에 담겼다. 어둡게 촬영된 화면은 아쉬움을 더했지만, 이를 통해 ‘나홍진 스타일’은 다시 한 번 자세를 잡은 셈이다.
우선 <황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스타일을 제대로 살린 비주얼이다. ‘도대체 저런 곳을 어디서 찾았을까?’ 싶을 정도의 맞춤형 로케이션은 영화의 흥미를 배가 시킨다. 개시장을 비롯한 연변의 여러 모습, 아내를 찾아다니는 시장, 부산항, 지하실, 울산으로 넘어오는 산, 면가 일당이 머무는 이층집 등 장소 하나하나의 임팩트가 강하다. 추격 장면 역시 눈을 뗄 수가 없다. 구남과 경찰의 추격전은 <추격자>의 골목 장면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며, 자동차 추격 장면이나 컨테이너 차량이 뒤집어 지는 장면은 한국 영화에서 본 적이 없는 대범한 스케일이다. 여기에 사시미 칼과 손도끼로 완성되는 폭력 장면들도 사실적으로 잔혹하다. 156분은 분명 긴 시간이지만 어느 장면 하나 지나칠 부분이 없을 정도로 흥미롭다.
하지만 강도 높은 장면들에 비해 이야기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추격자>가 스릴러라는 장르 안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하나의 사건을 향해 뒤도 안 돌아보고 내달리며 집중력을 높였다면, <황해>는 여러 갈래의 이야기를 설정하고 적당히 배분해 다소 헐거운 응집력을 보인다. 구남의 이야기는 구남의 이야기대로, 면가는 면가대로, 태원은 또 태원의 이야기대로 흐르며 효과적인 교집합을 이루지 못한다. 이야기 자체의 흥미로움이나 전체적인 큰 틀에 각 요소들은 잘 배치됐지만 기능적인 부분과 달리 관객이 느끼는 체감지수나 공감에서는 <추격자>보다는 그 밀도가 덜 하다.
<황해>는 이미 시작될 때부터 <추격자>와의 비교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하여 유사한 상황 설정이나 비슷한 이야기를 배제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그리고 스릴러라는 장르를 넘어서는 새로운 무언가를 지녀야한다는 강박도 담겼으리라. 이러한 부분에 대한 나홍진 감독과 제작진의 고심은 제작 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300일의 제작기간, 170회차의 촬영, 5,000여 컷의 장면들은 한국영화에서도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악독한 작업이었으며, 이를 통해 만들어진 사실감은 화면을 뚫고 나와 새로운 현실을 창조할 정도다.
비록 <황해>가 만듦새를 떠나 대중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을 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최소한 잔혹한 스타일에서는 자기만의 색깔을 완성했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점수를 줄 수 있다. 그게 관객 모두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소의 무리수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홍진 감독이 그린 추악하고 이기적이며 폭력적인 인간의 이면은 나름대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전작을 넘어서려는 독한 야심이 배우들을 통해, 영화를 통해. 주제와 이야기, 비주얼과 폭력의 방식을 통해 긍정적으로 드러난 경우다.
2010년 12월 21일 화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