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서 트럭 운전을 하던 폴 콘로이(라이언 레이놀즈)가 정신을 차린 곳은 사방이 막혀 있는 관 안. 게다가 6피트 땅 속에 묻혀 있는 관이다. 그리고 자신의 몸 근처에서 라이터, 휴대폰, 칼, 볼펜 등을 발견한다. 휴대폰으로 식구들에게 연락을 하지만 연락이 닿지 않고, 국방부와 911, 자신의 회사에 도움을 청하지만 모두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런 오중에 몸값을 요구하는 테러범의 전화가 걸려온다. 저항해보지만 반항하다 목숨을 잃는 동료의 동영상이 전송되며 협박의 강도는 높아진다. 테러리스트와 통화를 하면서도 계속 구조를 기다리는 폴 콘로이. 하지만 회사는 책임을 회피하고 정부는 형식적인 이야기만 할 뿐이다. 그런 와중에 관은 서서히 무너지고 그 틈으로 모래가 밀려들어오기 시작한다.
<베리드>는 굉장한 아이디어로 완성된 영화다. 할리우드에서도 ‘영화화 불가능’이라는 낙인이 찍힌 크리스 스파링의 시나리오에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은 매력을 느꼈다. 본인 스스로도 영화화가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시나리오의 독창성에 끌려 끝내 영화로 만들기에 이른다. 상식적으로 90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땅 속에 묻힌 관과 그 안에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배우만 보여주는 영화를 만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미친 존재감으로 소름이 끼치는 연기를 보여준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의 시선을 끌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베리드>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며 관객을 관 안에 가두고 숨 막히는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은 한 공간에서만 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에 카메라 앵글에 많은 신경을 썼다. 각기 다른 7개의 관을 만들었고, 작은 공간이지만 핸드헬드와 크레인샷 등 다양한 앵글을 360도 방향에서 모두 활용하면서 같은 컷을 하나도 만들지 않았다. 이러한 방법으로 카메라를 관 밖으로 꺼내지 않겠다는 고집을 실천으로 옮겼다. 그 흔한 플래시백이나 전화통화를 하는 상대방조차 보여주지 않음으로서 관객 모두를 시종일관 관 안에 가둘 수 있었다. 혼자 영화 전체를 책임진 라이언 레이놀즈 역시 투혼을 보였다. 17일이라는 비교적 짧은 촬영 기간이었지만, 레이놀즈는 그 동안 8시간 정도 밖에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캐릭터에 몰입했다. 오히려 일상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든 작업이었다.
하지만 <베리드>가 형식에만 치중한 영화는 아니다. 영화의 큰 배경을 민간인도 테러를 당할 수 있는 위험 지역 이라크로 설정하고, 죽음에 직면한 한 인간의 처절함 몸부림과 그를 둘러싼 정부와 기업의 이기적인 행태를 까발린다. 폴 콘로이는 살기 위해, 또 가족을 위협하는 협박 때문에 테러리스트들의 지시에 따르고 심지어 손가락까지 자른다. 하지만 그를 이곳으로 보낸 회사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트집을 잡아 그를 해고 시키고, 정부 역시 ‘국민을 위해 모든 것을 하고 있다’는 상투적인 얘기만 늘어놓는 등 사무적이고 형식적인 태도로만 일관한다.
<베리드>는 외형적으로는 실험적인 시도의 영화지만, 내적으로는 기업과 국가로 대표되는 거대사회의 이기적인 속성과 그 안에서 철저히 희생되는 개인에 초점을 맞춘다. 글로벌 기업의 책임 회피, 세계의 보안관을 자처하는 미국의 관료주의, 그리고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 등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요소를 적절하게 잘 드러낸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에 관객을 동참시켜 주인공의 고통을 자연스럽게 전이시킨다. 영화의 오프닝이 수 분간 관에 몸이 부딪히는 작은 소리와 함께 암전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도 이러한 효과를 크게 하기 위함이다.
2010년 12월 3일 금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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