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에 위치한 보험회사를 다니는 안나(알바 로바처)의 삶은 여유롭다. 자상한 남편에, 화목한 가족, 친한 친구 등 딱히 부족할 게 없다 싶다. 아니, 없다고 믿으며 살았다. 동료의 퇴직 기념 파티에서 도미니코(피에르프란체스코 파비노)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도미니코에게 미묘한 감정을 느낀 안나는 그와 본격적인 사랑에 빠지면서 자기 안에 숨어있던 욕망을 발견한다. 하지만, 도미니코는 책임져야 할 아내와 자식들이 있는 유부남. 안나와 도미니코는 서로의 배우자 몰래 만남을 지속하지만, 그 사실은 결국 발각되고, 두 사람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여행을 떠난다.
<사랑하고 싶은 시간>을 대표할 수 있는 키워드는 막장 소리 딱 듣기 좋은 ‘불륜’이다. 이야기 진행도 너무 전형적이어서 다음 내용이 충분히 머리에 그려질 정도다. 하지만 영화는 전형적이긴 해도, 진부하지는 않다. 다행히 실비오 솔디니 감독은 시시각각 변하는 (예상 가능한)사랑의 감정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다룰 줄 안다. 두 남녀의 다음 행보나 선택보다, 그 과정 사이사이에 놓인 심리에 초점을 맞춘 것도 <사랑하고 싶은 시간>이 막장을 피해가는 방법이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감독이 두 남녀의 일상을 분배한 방식이다. 영화는 중반까지 안나의 일상에만 주목할 뿐, 도미니코의 사연을 완전 배제한다. 그리고 관객이 도미니코를 백마 탄 왕자, 혹은 판타지적인 인물로 느낄 때쯤 본격적으로 도미니코의 삶에 카메라를 댄다. 그 속에서 드러나는 도미니코의 현실은 관객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팍팍한 삶. 육아비가 부족해 직장에 가불을 신청하고, 밀월여행 중에도 돈을 걱정하는 이 남자의 사정은 공중 그 어딘가에 붕 떠 있는 사랑의 판타지를 현실로 끌어내리며 영화에 사실성을 부여한다.
뒤늦은 사랑에 허우적대는 두 남녀 못지않게, 이들의 배우자를 비추는 카메라의 시선도 사실적이다. 만약 <아내의 유혹> 김순옥 작가의 인물이었다면, 성형 후 점 하나 찍고 나타나 외도하는 남편에게 복수를 했을 수 있다. 임성한의 사람이었다면, 상대편 집을 풍비박산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하고 싶은 시간>에 나오는 두 배우자의 선택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자식 때문에 남편을 놓지 못하는 도미니코의 아내나, 내 삶을 지키고자 아내의 또 다른 사랑을 묵묵히 감내하는 안나의 남편. 너무 흔해 빠진 선택인가. 하지만 이것이 실제, 배우자의 외도를 확인한 다수의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으로 알려지지 않았던가. 한없이 판타지적일 수 있고, 자극적일 수 있는 ‘불륜’이라는 소재에 일상의 힘을 불어넣은 것, 이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물론, 누군가에겐 불륜은 불륜일 뿐이겠지만.
2010년 11월 29일 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