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더스틴 호프만)는 광고음악을 만드는 일을 한다. 그러나 일에 매달려 살아온 나머지 아내와 이혼하고 딸조차 자주 보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딸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결혼식이 열리는 런던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하비는 찬밥신세가 되고, 딸에게 자신이 아닌 새아버지의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가기로 했다는 말을 듣는다. 게다가 회사에서 해고 통지까지 받는다.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카페를 찾아간 하비는 전날 공항에서 설문조사를 하던 케이트(엠마 톰슨)를 만난다. 노처녀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케이트 또한 전날 소개팅에 실패한 뒤 삶의 회의를 느끼고 있는 상태. 둘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수다를 떤다.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의 다친 마음을 치유해 주는 동안 그들은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장르가 멜로이기는 하지만 영화의 초반부는 하비와 케이트의 일상을 쭉 따라가는 드라마 형식으로 진행된다. 시작은 그의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로 시작한다. 부드럽게 흐르는 멜로디는 어느 순간부터 뚝 뚝 끊긴다. 그는 재즈 피아니스트를 꿈꿨지만 결국 광고음악을 만드는 직업을 택했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이 어그러진 피아노 선율처럼 망가졌다고 생각한다. 이혼의 아픔과 딸과의 이별, 그리고 어느 순간 회사의 잉여사원으로 낙인찍힌 그는 삶의 행복을 느껴본지 오래된 사람이다. 이런 하비의 삶과 마찬가지로 케이트 역시 행복을 모르고 산지 오래다. 부모의 이혼으로 홀로 남은 엄마를 보살펴야 하는 의무감, 그리고 사랑이란 감정을 벽에 가둔 그의 인생은 무미건조하다.
영화의 전반부는 이 둘의 불행한 삶의 단면을 들춰낸다. 아내와 딸에게까지도 버림받은 하비의 얼굴, 소개팅에 나가 좋은 남자를 만났지만 자신의 초라한 모습만 확인하고 온 케이트의 모습은 이를 잘 나타낸다. 삶의 고뇌를 전하기에는 대사 없이 보여지는 두 배우의 주름 많은 얼굴이면 충분하다. 감독은 사는 곳도, 취미도 다른 이 둘의 만남을 통해 서로를 치유하고 그 마음이 사랑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천천히 그린다. 더스틴 호프만과 엠마 톰슨은 감독이 그린 스케치에 채색을 담당한다. 다른 영화와 특별한 차별성이 없는 이야기 구조지만 두 배우의 연기는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앞에서 언급한 그들의 표정 연기와 더불어 우울함뿐인 자신들의 삶을 이야기 하며 서로의 아픔을 웃음으로 달래는 모습은 각 캐릭터의 진정성을 보여준다. 그들의 안정된 연기는 흡입력있게 다가오고, 점점 발전되는 그들의 러브스토리로 이끈다.
언뜻 보면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는 다른 멜로 영화와 비교해 별다른 것 없어 보인다. 그러나 두 배우의 무게감 느껴지는 연기는 곧바로 현저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평범한 두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 넣은 더스틴 호프만과 엠마 톰슨은 각각 하비와 케이트가 되어 인생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편안하게 전해준다. 두 배우의 연기 이외에 시선을 사로잡을 요소가 없다는 게 아쉽지만, 오랜만에 배우의 연기에 심취할 수 있는 영화를 만난다는 기쁨이 더 크다.
2010년 10월 22일 금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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