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고시촌의 허름한 고시원에서 총무로 일하는 중년의 장필(유순웅)은 어떠한 비전도 삶의 낙도 없다. 그저 고시원의 소소한 잡일들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고시를 보기 위해 공부를 하지도 않는다. 가끔 목각 인형을 깎아 팔고, 폐품 수집을 하는 것이 그나마 평소와는 다른 삶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고시원에 사는 청년에게 돈을 빌려주고 일이 꼬이면서 청년에게 일자리까지 빼앗기고 만다. 그런 와중에 동네에서 만난 여자에게 사기를 당하고 멸시까지 당하자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하지만 그는 그 일을 계기로 다른 삶에 눈뜨게 된다.
<빗자루, 금붕어 되다>는 신림동 고시촌을 담아낸 작품이다. 어떠한 감정적인 기교도, 어떠한 편집 효과도 쓰지 않고 그저 담담히 그들의 삶을 관조한다. 심지어 우발적인 살인 장면에서조차 그저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기만 한다. 카메라가 감정을 배제하고 그저 그들을 응시하기만 하는 것은 6만 명에 달하는 고시생들이 기거하는 신림동 고시촌의 생활이 단순한 생활이 아닌 그들만의 또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마치 어항에 사는 금붕어처럼 그 작고 허름한 동네는 어떤 이들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이다.
그들의 일상을 차갑게 바라보는 카메라는 그곳에서의 삶이 고시패스라는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각자의 방법으로 삶을 연장해가는 생존법이라 말한다. 비누나 구두 같은 사소한 문제로 다툼이 생기고, 폐품으로 판 모니터 가격 몇 천 원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오랫동안 비슷한 패턴으로 고정된 장소에서 살아오던 이들에게는 어느 새 그 안에서의 삶이 전부가 되고 말았다. 생활의 반경이 고착화되면서 사고의 방향과 범위 역시 좁아졌고, 사람의 관계와 인생의 가치 기준 역시 달라졌다. 장필은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통해 고착화된 삶을 벗어나는 듯도 싶지만, 결국 다시 돌아온 고시촌은 그에게 다른 삶을 허락하지 않는다.
고정된 앵글은 배우에게 편안함을 준다. 연극배우 유순웅은 카메라 앵글을 무대삼아 편하게 연기를 펼친다. 연기라기보다 마치 삶의 한 단면을 뚝 잘라 보여주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사운드와 같은 기술적인 부분은 불만족스럽기도 하지만, 오히려 영화적인 요소에 휘둘리지 않았기에 더욱 현실적이다. 동시에 좁은 공간을 찍기 위한 광각렌즈의 왜곡은 치열한 현실과 현실에서 벗어난 환상의 경계를 보는 듯 몽환적이다.
<빗자루, 금붕어 되다>는 31개의 샷, 60여 개의 컷, 음악의 배제 등 소위 말하는 예술영화적인 모습이 많이 감지된다. 고정된 카메라, 렌즈의 왜곡으로 일그러진 배경, 평범한 일상의 사실적인 표현 등 영상 역시 독특하다. 하지만 인과관계를 따지지 않는 전개와 소소한 일상의 반복적인 나열은 관객의 호기심을 잡아끌기엔 역부족이다. 새로운 형식으로 만들어진 색다른 스타일이라는 측면에는 관심이 생기지만, 예술영화나 대중영화라는 단어로 정의하기엔 어느 쪽으로든 애매한 구석이 있다.
2010년 9월 27일 월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