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병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엉클 분미(타나팟 사이새마르). 그는 시골에서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 여생을 보낸다. 어느날 죽은 아내의 영혼이 나타나 병간호를 해주고, 오래전에 실종되었던 아들이 원숭이 괴물로 변해 그를 찾아온다. 엉클 분미는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상봉하며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되뇐다. 이후 그들은 정글을 지나 동굴을 목적지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여행을 떠난다.
<엉클 분미>는 각 마을의 전생 이야기를 담은 책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전생을 다룬 영화이기에 곳곳에 위치한 판타지 요소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동안 인간과 영혼과의 교감을 영상으로 표현했던 아피차퐁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판타지 요소를 좀 더 강하게 드러낸다. 모두가 밥을 먹는 식탁에서 어느 순간 나타난 죽은 아내의 영혼, 원숭이 괴물이 돼서 돌아온 아들 등 감독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 죽은 영혼을 등장시키며 판타지 요소를 극대화한다.
물론 영화는 일반적인 할리우드 영화처럼 CG로 구현한 영상으로만 판타지 효과를 주지 않는다. 극중 판타지 요소는 전체적으로 몽환적인 느낌을 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감독은 육체와 영혼, 사람과 동물, 전생과 현재의 삶을 구분하지 않는다. 오히려 선을 지워버린다. 그 결과 등장인물들은 어느 순간 영혼으로, 동물로 변한다. 그리고 그것은 상상에서 비롯된 전생의 시간 속에서 이뤄진다. 극중 분미가 생각하는 공주와 메기의 합일은 이를 잘 보여주는 예다. 또한 정글이라는 공간과 분미의 삶이 시작됐다고 믿는 동굴도 몽환적인 느낌을 더 강하게 나타낸다.
아피차퐁 감독은 <열대병> <징후와 세기> 등 자신의 작품에서 시공간의 혼재를 그려왔다. 극중 인물들은 같은 공간이지만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 <열대병>은 정글이란 공간에서 또 다른 자신의 자아를 찾는 주인공을 보여주고, <징후와 세기>는 병원이란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시대의 삶의 모습을 그린다. 두 영화를 미루어 볼 때 <엉클 분미>는 그동안 감독이 꾸준히 실험해왔고, 영화에 드러냈던 시공간의 혼재를 자유자재로 펼치는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감독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태국에서 일어난 전쟁의 아픔을 다룬다. <엉클 분미>는 태국의 북동부를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그의 고향이기도 한 이곳은 언제나 전쟁의 위험 속에 있었다. 극중 사진으로 나오는 군인들의 모습과 전쟁의 상흔은 엉클 분미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서로 다른 이념의 대립은 혼란을 가져왔고, 상대방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사태가 벌어졌다. 감독은 전쟁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며 평화롭기만 한 땅에서 전쟁을 통해 피로 물든 때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점점 그 일을 잊어가고 있는 현실의 안타까움까지 전한다.
<엉클 분미>가 아무리 좋은 작품이지만 대중들이 즐기기에는 쉽지 않은 영화다. 길고 긴 롱테이크 장면을 잘 버틴다 하더라도 현재와 과거가 뒤섞여있는 이야기에 도통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 특히 영화의 끝부분에서 엉클 분미의 사촌인 젠과 통의 마지막 모습은 풀리지 않는 문제처럼 의문점을 남긴다. 하지만 <엉클 분미>는 시공간의 혼재를 통해 마법 같은 영상을 보여주며, 영화만이 표현 할 수 있는 언어를 다시 재조명한다. 이런 점이 평단의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가 아닐까!
2010년 9월 14일 화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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