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딩 코미디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샬린 이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아니 사랑을 모른다. ‘애무가 뭔데?’라고 묻는 이 스무 살 넘은 아가씨가 주인공이 되어 동서고금의 보편적인 사랑을 논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페이퍼 하트>는 공적으로는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각계각층의 인물들에게 사랑에 대해 묻는 로드 무비형식을 취하고, 사적으로는 주인공 샬린이 마이클 세라와 사랑에 빠지는 러브스토리를 엮는다. 그러니까 <페이퍼 하트>는 라스베가스, 오클라호마, 내슈빌 등 미국 전역을 돌면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묻고 답하는 인류학 보고서인 셈이다. 물론 섹스 리서치 <킨제이 보고서>처럼 논란거리가 되기도 어렵고, 스펙터클을 선사하지도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배시시 얼굴 만면에 미소가 번져간다.
<페이퍼 하트>는 다양한 인물군상들의 인터뷰를 통해 사랑의 대전제를 완성한다. 생물학교수를 만나 사랑의 화학작용을 묻기도 하고 매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을 지켜보는 웨딩 홀 주인에게 진정한 사랑의 표본을 찾기도 한다. 게이 커플, 50년을 동고동락한 노부부, 로맨스 소설가, 심령술사, 이혼 전문 판사 등 각자의 인생 속에서 찾은 사랑에 대한 해답을 샬린의 이야기 속에 끼워 넣는다. 인형극을 통해 재현하는 사랑의 에피소드들은 앙증맞기 그지없다. <테이킹 우드스탁>의 디미트리 마틴, <사고친 후에> <40살까지 못해본 남자>의 세스 로건 등 할리우드 루저 코미디 전문 주드 아파토우 사단의 친구들이 카메오로 등장해 이 소소한 사랑이야기에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모든 사랑에는 영화 같은 순간이 있다. 샬린 이와 마이클 세라의 사랑은 물론 다큐로 기록되지만 진짜 영화처럼 빛나는 순간을 보여준다. 주인공 샬린 이의 사랑에 대한 탐구생활은 일거수일투족 감독이 개입된다. ‘사랑 따윈 필요 없어’하던 샬린이 급기야 마이클 세라의 손을 잡고 카메라를 피해 뉴욕의 뒷골목을 냅다 달려가는 장면은 바로 그 빛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사랑이라는 일련의 감정 곡선을 그래프로 표시할 수 있다면 아마도 여기에 점을 찍어둬야 할 것이다.
<페이퍼 하트>를 보고 있노라면 여느 다큐와 마찬가지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설정인지의 여부가 궁금해진다. 재미있는 것은 투박하고 솔직한 이 다큐가 페이크다큐멘터리라는 사실이다.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인물 도표를 만들어두고 무작위로 인터뷰하는 영상들은 물론 다큐멘터리에서 사실을 맡고 있다. 하지만 샬린 이와 배우 마이클 세라의 소소한 연애이야기는 극영화라는 깜짝 놀랄 만한 사실. <페이퍼 하트>는 다큐와 극영화를 버무린 연애탐구생활인 셈이다. 틀에 꽉 짜인 웰메이드 무비도, 깔끔하고 세련된 로맨틱 코미디도 아니지만 <페이퍼 하트>를 보고 있노라면 사랑에 대한 시시덕거림, 꾸밈없는 순수함, 그리고 위트를 동시에 맛보게 된다. <페이퍼 하트>는 그런 영화다.
2010년 8월 31일 화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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