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신임 총리가 시가행진 도중 암살당한다. 경찰은 현장 인근에 있던 택배기사 아오야기(사카이 마사토)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졸지에 총리 암살범으로 몰린 아오야기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 하지만, 그를 살해자로 보이게끔 하는 날조된 영상들로 인해 사면초가에 몰린다. 자신을 죽이려 다가오는 경찰들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도주 뿐. 그 와중에 대학 시절 연인이었던 하루코(다케우치 유코)와 친구들이 하나둘 나타나 그의 도주를 돕기 시작한다.
<골든 슬럼버>가 내세우는 장르는 스릴러다. 하지만 <골든 슬럼버>가 뿌리 내린 곳은 엄밀히 말해 스릴러가 아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스릴러와는 다르다. ‘총리 암살범의 도주극’이라는 스릴러적 상황을 소재로 삼고는 있지만, 정작 영화를 이끌어가는 동력은 주인공이 도주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추억이다. 그러니까 앞서 언급한 케네디와 비틀즈의 사례 중, 영화가 집중하는 건 감성적인 비틀즈의 사연이다. 낭만으로 점철된 과거 회상씬의 잦은 등장은 둘째치더라도, 극한의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일본식 유머가 끼어든다거나 말랑말랑한 음악이 가로지르며 영화를 아기자기하게 만든다.
거대 권력에 의한 국민의 인권 침해라는 날카로운 문제의식에 비해, 이에 대응하는 자세는 또 소박하기 그지없다.(혹은 지나치게 무관심하다.)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고도의 서사적 논리를 요하는 스릴러 영화에서 육하원칙은 매우 중요한 기둥이다. 하지만, 영화는 아오야기가 ‘왜’ 이러한 상황에 놓이게 됐는가에 대해 크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심지어 아오야기를 괴롭힌 배후 세력이 ‘누구’인가에 대한 정확한 답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사건을 오목조목 파헤쳐서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겠다는 의지가 이 영화의 우선 순위는 아닌 셈이다.
사실 이는 이 영화의 원작자와 감독에 대한 지식이 있는 관객이라면, 어렵지 않게 유추 가능한 지점이다. <골든 슬럼버>는 일본에서 300만부 이상이 팔린 이사카 코타로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활자에 머문 이야기를 영상으로 길어 올린 이는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 이사카 코타로와 나카무라 요시히로의 만남은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피쉬스토리>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로, 다양한 시·공의 교차, 개성 있다 못해 황당무계한 캐릭터, 차곡차곡 쌓이는 복선 등, 두 사람의 특성이 이번 영화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이렇게 놓고 봤을 때, <골든 슬럼버>의 장점과 단점은 비교적 명확하다. ‘스릴러 같지 않은 스릴러’라는 것. 스릴러를 기반으로 미스테리, 휴먼 드라마 심지어 코미디에까지 손을 뻗은 영화는 타 스릴러 영화에 비해 서스펜스적인 쾌감도, 긴박감도, 진행 템포도 한 박자씩 느리거나 약하다. 대신 영화는 스릴러 영화들이 경계하는 인간간의 ‘신뢰’와 ‘믿음’을 (오히려)장착해 달린다. 특히 감동을 향해 치닫는 라스트 15분에서는 스릴러 영화의 결말과 문법을 뒤집는 색다른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속도감 있고 통쾌한 정통 스릴러를 추구하는가, 일본영화 특유의 소소한 느낌이 묻어나는 색다른 스릴러를 추구하는가. 이것이 당신들이 이 영화를 선택하는데 있어 중요한 길잡이가 되지 않을까 싶다.
2010년 8월 20일 금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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