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이란 무엇인가. 어린이들의 놀이 도구를 목적으로 만들어 진 게 바로 장난감이다. 고로, 그들 행복의 척도는 주인에게 얼마나 사랑 받느냐에 달려있다. 주인의 유희 대상에서 제외되는 순간, 그들은 목적을 잃고, 가치를 잃는다. 이러한 운명을 타고난 장난감을 내세워 관객을 울리고 웃겼던 <토이 스토리> 시리즈가 어느새 15년의 세월을 입었다. 1편이 최첨단의 장난감에게 밀려나게 된 장난감의 슬픔을, 2편이 버려질지 모르는 두려움을 이야기 했다면 3편은 삶의 변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그 비겁한 변명이 이 영화에서는 그 어떤 말보다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코 질질 흘리던 앤디(존 모리스)가 어느 덧 대학에 들어 갈 나이가 됐다. 집을 떠나기 위해 짐을 싸는 앤디는 가장 아끼는 장난감 우디(톰 행크스)만 가지고 가고, 버즈(팀 앨런)를 비롯한 나머지 인형들은 다락에 보관해 두려 한다. 하지만 앤디 엄마의 실수로 장난감들은 마을 탁아소에 기부되고 만다. 자신들이 버림받았다고 오해한 장난감들은 앤디를 잊고 탁아소에서 새출발 하려 한다. 하지만 그 곳은 독재자 랏소 베어가 지배하는 곳. 친구들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 우디는 위기에 처한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1995년 첫 모습을 드러낸 <토이 스토리>는 100% 컴퓨터 디지털로 완성된 첫 애니메이션이었다. 신기술의 등장에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애니메이션 시장이 빠르게 재편됐고, 애니메이션의 역사가 다시금 쓰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때도 그렇고, 3D로 중무장한 이번에도 그렇고, 픽사의 ‘필살기’는 첫째도 이야기, 둘째도 이야기, 셋째도 역시 이야기다. 이러한 픽사의 마인드를 고스란히 계승한 <토이 스토리 3>가 그리는 세계는 여전히 감동적이고, 창의적이며, 유려하고도 놀랍다. 평범함 속에서 보편적 가치를 길러내는 마법이 영화 내내 따뜻한 온기를 전달한다.
특히 픽사는 3편에 다다라 1, 2편에 없던 또 하나의 소중한 감정을 담아내는데 성공한다. 장난감들의 주인 앤디의 감정이 그것이다. 전편까지 이 시리즈는 철저히 장난감들에게 복무하는 작품이었다. 버림받으면 어쩌나 고민하는 장난감들의 마음만 있었지, 그들의 주인인 앤디의 심정은 간과됐다. 즉 버려지거나 남겨지거나 잊혀지는 자들의 슬픔에 초점을 맞추느라,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거나 떠나보내게 된 주인들의 아픔은 소홀했다. <토이 스토리 3>는 이러한 결핍된 심정을 완벽하게 보충해 낸다. 그것도 아주 까무러칠 정도로 감동적이게, 슬프게, 공감가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설명은 못하지만 영화 마지막, 앤디의 선택을 지켜보는 당신은 추억에 사로잡히고, 대견함과 애처로움에 뒤엉켜 폭풍 눈물을 흘리게 될지 모르겠다. 내 딸을, 내 아들을, 내 조카를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찾았을 어른 관객들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아이들보다 더 큰 감동에 가슴을 움켜쥘 게 자명하다. 어느덧 앤디에게 동화돼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테니 말이다. <토이 스토리 3>는 앤디와 그의 장남감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내 이야기이고, 당신들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실 (픽사의 작품만을 두고 보면)창의성 면에서는 <월-E>가 낫고, 재미는 <니모를 찾아서>가 더 뛰어나다고 할 관객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감정을 두드리는 소리만큼은 <토이 스토리 3>만큼 강력했던 게 없었던 건 같다. 더불어 <토이 스토리> 시리즈만큼 시리즈의 마지막을 이토록 환상적이게 끝낸 영화도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고향에 계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아직도 집에 있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박스 어딘가에 담겨져 보관중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행이다 싶었다. 고향에 가면, 내 유년기를 함께 해 준 장난감을 갑갑한 박스에서 탈출시켜 줘야지, 생각했다.
2010년 7월 30일 금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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