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배경은 괴짜 환자가 모여 사는 어느 병원. 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와 비슷한 세계라 보면 이해가 쉽다. 그 속에 자기 밖에 모르는 고집불통 영감 오누키(야쿠쇼 코지)가 있다. 오누키는 어느 날, 벤치에 앉아 ‘개구리 왕자 vs 가재 마왕’이라는 동화책을 읽는 소녀 파코(아야카 윌슨)을 만난다. 사소한 오해로 파코의 뺨을 때리게 된 오누키는 후에 파코가 하루 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괜히 미안한 마음에 파코에게 사과를 하는 순간, 놀랍게도 파코가 “어제도 제 뺨을 만졌죠?”라며 전날의 일을 기억해 낸다. 이 한마디에 묘한 감동을 받은 오누키는 파코의 기억을 찾아주기 위해 병원 환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연극을 준비한다.
<파코와 마법 동화책>은 극작가 고토 히로히토의 ‘개구리 왕자와 가재 마왕’이라는 희곡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하지만 원작은 거들 뿐, 영화는 밑도 끝도 없는 기상천외한 테츠야의 정신세계로 덧칠됐다. 감독은 동화 속 세계와 동화보다 더 동화 같은 세계를 극중극 형식으로 이종 배합했다. 여기에 연극과 뮤지컬, 애니메이션, 코미디가 뒤섞이면서 테츠야표 변종 장르가 완성됐다. 감독의 전매특허로 통하는 울긋불긋 총천연색 화면과 키치적 영상은 물론, 디즈니 픽사의 고풍스러운 스타일, 지브리스튜디오의 감성, 최근 유행한다는 풀 CG까지 만날 수 있다.
시청각적 화려함과 대비 돼 도드라지는 건, 인간의 공허한 잿빛 감정이다. 영화는 그 누구에게도 기억되길 원치 않던 오누키가 단기 기억 상실 환자 파코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려 안간힘을 쓰는 아이러니를 통해, 고립된 인간의 마음을 어르고 달랜다. “만약 죽더라도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남는다면 그 사람은 살아 있는 것이다. 살아 있더라도 누군가의 마음에 남아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죽은 것이다”라는 원작의 대명제는 오누키 뿐 아니라,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처럼 비극적이거나 심오한 이야기를 희극의 방식을 빌어 풀어내는 테츠야 감독의 장기는 <불량공주 모모코>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에 이어 또 한 번 무리 없이 발휘된 느낌이다. 하지만 만화적인 상상력을 외피에 두르고도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풀어냈던 앞의 두 작품과 달리, <파코와 마법 동화책>은 이미지 자체에 조금 더 치중한다. 때문에 <파코와 마법 동화책>은 여전히 사랑스럽고 감동적이지만 전처럼 눈물을 흐르게 하거나, 가슴을 미여지게 하지는 않는다. 영화에서 느끼는 감정이 생각보다 빠르게 휘발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훈남 배우 츠마부키 사토시를 비롯한, 야쿠쇼 코지, 카세 료, 츠치야 안나, 아베 사다오 등 인기스타들의 몸을 내던지는 민망한(?) 연기는 이 영화가 선사하는 숨은 재미다.
2010년 7월 20일 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