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지극히 마니아적인 영화 (오락성 5 작품성 7)
파코와 마법 동화책 | 2010년 7월 20일 화요일 | 정시우 기자 이메일

혼자 극장가는 걸 즐기긴 하지만, 그러길 정말 잘 했다고 느낀 적이 있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을 찾았을 때다. 그 놈의 눈물 때문이었다. ‘뺨을 타고 조용히 흐르는’ 혹은 ‘눈동자에 그렁그렁 맺힌’ 따위의 미사여구 곁들인 눈물이 아닌, 눈물콧물 질질 짜는 통곡에 가까운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던 기억이 난다. 퉁퉁 부어 오른 눈으로 극장 문을 빠져나오며, 혼자 보길 잘했다고 얼마나 다행스러워 했던가.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혹은 그 전작 <불량공주 모모코>)이 안긴 충격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감독의 후속작 <파코와 마법 동화책>을 그냥 넘어가기란 쉽지 않다.

영화의 배경은 괴짜 환자가 모여 사는 어느 병원. 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와 비슷한 세계라 보면 이해가 쉽다. 그 속에 자기 밖에 모르는 고집불통 영감 오누키(야쿠쇼 코지)가 있다. 오누키는 어느 날, 벤치에 앉아 ‘개구리 왕자 vs 가재 마왕’이라는 동화책을 읽는 소녀 파코(아야카 윌슨)을 만난다. 사소한 오해로 파코의 뺨을 때리게 된 오누키는 후에 파코가 하루 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괜히 미안한 마음에 파코에게 사과를 하는 순간, 놀랍게도 파코가 “어제도 제 뺨을 만졌죠?”라며 전날의 일을 기억해 낸다. 이 한마디에 묘한 감동을 받은 오누키는 파코의 기억을 찾아주기 위해 병원 환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연극을 준비한다.

<파코와 마법 동화책>은 극작가 고토 히로히토의 ‘개구리 왕자와 가재 마왕’이라는 희곡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하지만 원작은 거들 뿐, 영화는 밑도 끝도 없는 기상천외한 테츠야의 정신세계로 덧칠됐다. 감독은 동화 속 세계와 동화보다 더 동화 같은 세계를 극중극 형식으로 이종 배합했다. 여기에 연극과 뮤지컬, 애니메이션, 코미디가 뒤섞이면서 테츠야표 변종 장르가 완성됐다. 감독의 전매특허로 통하는 울긋불긋 총천연색 화면과 키치적 영상은 물론, 디즈니 픽사의 고풍스러운 스타일, 지브리스튜디오의 감성, 최근 유행한다는 풀 CG까지 만날 수 있다.

시청각적 화려함과 대비 돼 도드라지는 건, 인간의 공허한 잿빛 감정이다. 영화는 그 누구에게도 기억되길 원치 않던 오누키가 단기 기억 상실 환자 파코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려 안간힘을 쓰는 아이러니를 통해, 고립된 인간의 마음을 어르고 달랜다. “만약 죽더라도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남는다면 그 사람은 살아 있는 것이다. 살아 있더라도 누군가의 마음에 남아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죽은 것이다”라는 원작의 대명제는 오누키 뿐 아니라,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처럼 비극적이거나 심오한 이야기를 희극의 방식을 빌어 풀어내는 테츠야 감독의 장기는 <불량공주 모모코>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에 이어 또 한 번 무리 없이 발휘된 느낌이다. 하지만 만화적인 상상력을 외피에 두르고도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풀어냈던 앞의 두 작품과 달리, <파코와 마법 동화책>은 이미지 자체에 조금 더 치중한다. 때문에 <파코와 마법 동화책>은 여전히 사랑스럽고 감동적이지만 전처럼 눈물을 흐르게 하거나, 가슴을 미여지게 하지는 않는다. 영화에서 느끼는 감정이 생각보다 빠르게 휘발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훈남 배우 츠마부키 사토시를 비롯한, 야쿠쇼 코지, 카세 료, 츠치야 안나, 아베 사다오 등 인기스타들의 몸을 내던지는 민망한(?) 연기는 이 영화가 선사하는 숨은 재미다.

2010년 7월 20일 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불량공주 모모코>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의 팬이라면!
-츠마부키 사토시, 카세 료, 야쿠쇼 코지, 츠치야 안나 등 이 무슨 드림팀이던가.
-애들 영화라고? 무슨 말씀! 어른들을 위한 달콤 쌉싸름한 동화
-전작들 보다, 힘이 약한 건 사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겠다
-보다 강력해진 이미지의 향연, 그만큼 약해진 감정의 골
-지극히 마니아적인 영화. 호불호 확 갈린다
30 )
st79
오오 매니아라   
2010-08-03 09:40
audwh
기대할께요   
2010-08-01 03:22
lovemuz
기대됩니다   
2010-07-26 19:09
gt0110
마니아적으로 느껴지네요   
2010-07-26 09:56
mvgirl
어린이들 영화여서 전 좀   
2010-07-25 20:47
sunnyday45
허접 영화인줄만 알았는데 평을 보니 나름 기대가 폴폴~   
2010-07-25 20:39
bubibubi222
재미있을 것 같은데^^   
2010-07-24 21:07
dsimon
잘 읽고 갑니다.^^   
2010-07-23 00:42
1 | 2 | 3 | 4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