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청기, <로보트태권V>를 만들다
김청기 감독은 1964년 서라벌예술대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만화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꾸준히 만화를 그렸던 그는 1966년 애니메이션에 입문해 <홍길동> <보물섬> <황금철인> 등 많은 작품에 참여했다. 하지만 TV가 문제였다. TV의 등장으로 극장에 가서 돈을 내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전반적인 영화 시장이 위축되었다. 애니메이션도 예외는 아니었다. 1971년 용유수 감독의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후 5년간 애니메이션 제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상영할 한국 애니메이션이 없었던 극장에서는 일본에서 수입한 애니메이션이 자리를 대신했고, TV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이 방영되면서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1975년도 MBC에서 방영한 <마징가 Z>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년 후 <오발탄>의 유현목 감독이 제작을 맡고, 김청기 감독이 연출을 맡았던 <로보트태권V>가 극장에 상영했다. 당시 18만 명(서울관객)이라는 기록적인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는 한국 애니메이션을 다시 기사회생시켰다. <로보트태권V>는 <마징가 Z>와 대결구도를 이루면서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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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로보트태권V>는 5편의 애니메이션 시리즈와 다른 감독이 만든 번외편 그리고 실사와 애니메이션 합성 영화까지 총 7편이 제작되었다. 이후 2007년에는 <로보트태권V>의 복원판이 다시 극장에 상영되면서 향수를 자극했다. 현재 <로보트태권V>는 <세븐데이즈>의 원신연 감독이 연출을 맡아 실사 영화로 제작중이다.
<황금날개 1.2.3>부터 <바이오맨>까지
<로보트태권V>의 흥행은 다수의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김청기 감독은 <로보트태권V> 시리즈에 이어 다양한 로봇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초합금 로보트 쏠라 원.투.쓰리> <혹성 로보트 썬더 A> <스페이스 간담 V> 등은 ‘태권V’와는 사뭇 다른 캐릭터와 각종 신무기로 재미를 더했다. 더불어 단순한 선악구도로 이루어진 스토리는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다.
김청기 감독이 로봇 애니메이션만 만든 건 아니었다. 1978년 로봇이 아닌 초능력을 갖고 있는 영웅을 등장시킨 <황금날개 1.2.3>와 <날아라 원더공주>를 잇달아 내놓았다. 이어 김청기 감독은 <똘이장군: 제3땅굴>을 개봉하면서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1970년대 후반 북한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감이 매우 심했던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불여우동무’라는 간첩을 몰아내는 똘이의 이야기는 반공영화로 인식되기도 했다. 이후 <간첩잡는 똘이장군> <꼬마 어사 똘이> <공룡 100만년 똘이> 등 <똘이장군> 시리즈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고우영 화백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삼국지>, 구약성서를 바탕으로 만든 <다윗과 골리앗>, 과학을 소재로 한 교육 애니메이션 <꾸러기 발명왕> 등 다양한 소재의 애니메이션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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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뢰매>와 함께 많은 이들의 기억속에 화자가 되는 영화는 <수퍼 홍길동> 시리즈다. 허균의 원작 소설 ‘홍길동’을 새롭게 재구성한 이 영화는 로봇이 나오지는 않지만 무예와 도술에 능한 홍길동이란 영웅을 등장시켰다. 그렇다고 영화 속 홍길동이 잘 생기고 멋있지는 않았다. 다소 바보 같으면서도 인정이 많은 캐릭터였다. <우뢰매>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도 심형래가 홍길동으로 출연하며 친근하면서도 코믹한 캐릭터를 보여줬다. 특히 어려움이 닥치면 도술을 부려 현시대로 도망치거나 무기를 구해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장면은 재미있는 설정이었다. 이후 <슈퍼 홍길동> 시리즈는 김정식, 이창훈, 이봉원으로 교체되었고, 임하룡, 장두석, 조금산, 이경애 등 추억의 코미디언들이 대거 참여했다. 또한 쌍라이트 조춘, 강리나, 그리고 어린 시절 양동근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김청기 감독이 심형래를 필두로 주로 코미디언과 함께 작업한 건 아니다. 1988년 제작과 연출을 맡은 <바이오맨>은 박중훈을 주인공으로 한 한국판 히어로 영화다. <바이오맨>은 괴한에 의해 죽음을 당하지만, 사이보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 도일(박중훈)이 악당을 물리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부족한 예산에도 많은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감행한 탓인지 매끄럽지 않은 이야기 구성과 히어로 영화에 적합하지 않은 엉성한 영상으로 큰 사랑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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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트태권V>를 만들며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을 이끈 김청기 감독이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많았다. <로보트태권V>는 자연스럽게 <마징가 Z>와 비교되면서 인기를 끌었지만 그 만큼 닮은 꼴이 많았다. 김청기 감독은 모 인터뷰에서 로봇이라는 설정 자체는 유사성이 있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을 베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마징가 Z>가 권선징악의 스토리에 폭력을 미화했지만, <로보트태권V>는 태권도라는 고유무술과 함께 캐릭터의 다양성이 큰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표절 시비는 계속됐다. <로보트태권V>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기동전사 건담>의 로봇 캐릭터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또다시 제기되었고, <스페이스 간담 V>는 아예 일본 완구를 베끼기까지 했다. 또한 ‘우뢰매’에 등장하는 로봇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문제의 근원은 제작비였다. <스페이스 간담 V>는 한 완구업체에서 똑같이 만들면 제작비의 1/3을 준다는 제안으로 승낙한 것이다.
김청기 감독이 표절시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명실상부 한국 애니메이션을 이끈 장본인임에는 틀림없다. 그는 처음으로 국내에서 로봇 애니메이션을 시작했고,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했던 로봇 캐릭터를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변화시켰다. 특히 <우뢰매>를 통해서는 애니메이션과 실사를 합성하는 실험적인 도전도 했다. 1997년 <의적 임꺽정> 이후로 연출작이 없었던 김청기 감독은 현재 지난 2002년부터 준비해온 <광개토대왕>을 진행중이고, 동시에 3D 입체 애니메이션을 기획하고 있다. 또한 <로보트태권V>의 디지털 복원판이 8월 일본에 정식 개봉할 예정이다. 69살의 노장 감독의 꿈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2010년 6월 10일 목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