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사람)들은 왜 우리만 만나면 ‘음악하기 힘드시죠?’ 라고 묻는 거야?” 지난 1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이야기> 속 인디 뮤지션들이 내 뱉은 말이다. 그들은 ‘인디와 밴드 음악=배고프고 힘들다’라는 세간의 선입견에 불만을 토로한다.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그 편견에 콧방귀 뀌듯 항변하는 영화다. 밴드 ‘타바코 쥬스’의 드러머이기도 한 감독 백승화는 ‘밴드 하는 사람들을 이상하거나 불쌍하게 보는 선입견을 깨기 위해’ 드럼 스틱 대신 카메라를 들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렇게 묻고 싶어질 거다. “음악 하니까 즐겁죠?”라고.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의 중심에는 라이브 클럽이자 인디레이블인 ‘루비살롱’이 있다. 홍대에서 이름 꽤나 알렸다는 리규영이 애인의 갑작스러운 임신 때문에 인천으로 낙향, 부평 모텔촌에 차린 가게다. “홍대의 클럽데이처럼, 부평에 모텔데이를 만들어 보겠다”는 이 특이한 남자의 시작은 미비했다. 하루 평균 관객 6-7명. 모텔데이는커녕, 모텔로 쫓겨나지 않는 게 다행이지 싶을 정도다. 하지만 그의 음악 인생은 찌질이들의 대마왕 ‘타바코 쥬스’와, 우주에서 온 록 전도사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가세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6mm 카메라 하나로 완성된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루비살롱’과 이 레이블의 두 밴드 ‘타바코 쥬스’, ‘갤럭시 익스프레스’에 대한 1년간의 생생한 기록이다. 그것도 아주 사적인 기록. 촬영과 편집까지 도맡은 감독이 ‘타바코 쥬스’의 멤버라는 사실은 카메라 앞에 선 그들을 무장해제 시키는 무기로 작용한다. 쉴 때 뭐 하냐는 질문에 “야동 본다. 야동 때문에 컴퓨터도 큰 걸로 바꿨다”는 천연덕스러운 대답이 튀어나오고, 19금 가득한 음담패설이 오고간다. 거침없는 욕설은 물어 무엇 하랴. 가식을 집어 던진 그들의 모습은 가공하지도, 익히지도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함을 영상에 투과시킨다. 1990년대 중반 홍대 록의 부흥을 이끌었던 ‘크라잉 넛’ 한경록의 거친 내레이션도 그 날것의 생동감에 한층 힘을 더한다.
‘타바코 쥬스’와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상반된 스타일은 각본 없는 이 다큐멘터리에 극적인 재미를 제공하는 또 하나의 무기다. 폭발적인 무대매너를 지닌 ‘캘럭시 익스프레스가’ 무대와 방송을 종횡무진하며 승승장구해 나갈 때, 술 마시다 공연 펑크 내기가 다반사인 ‘타바코 쥬스’는 여전히 ‘루비살롱’ 주변에서 쥬스를 빤다. 아니, 또 술을 마신다. 결국 소속사 사장에게 치이고, 멤버 사이에 싸움이 붙더니, 급기야 보컬 권기욱은 무단 탈퇴 소동까지 벌인다. 그런데 다시 돌아온 권기욱의 말이 압권이다. “열심히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 근데, 우린 열심히 안 하잖아.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석고대죄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초치는 소리라니.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자조 섞인 이 말은 그가 첫 음반 발매 기념 공연에서 흘리는 눈물과 만나면서 감동의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그의 눈물이 “우린 잘 될거야”라는 백 마디 말보다, 더 진한 진심을 전하기 때문이다. 말이 아닌, 마음을 통해 록 스피릿을 보여주 것. “훌륭한 로큰롤이란 와 닿는 것”이라고 했던 존 레논의 말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물론, 손발 오그라드는 꼴을 못 보는 ‘타바코 쥬스’ 멤버들은 권기욱의 눈물을 “쪽팔린다”며 놀려댔지만 말이다.)
영화는 끊임없이 묻는다. 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이들의 답변 속에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가장 밀착해 있는 건, 리규영의 말이다. “록? 아무것도 없는 거지. 놀았으면 끝인 거야. 그게 록이야.” 순간을 즐기는 것. 그 속에서 행복을 얻는 것. 이것이 영화가 말하는 록 스피릿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이다.
2010년 4월 22일 목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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