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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크게 들을 것> 그리고, 귀에 담아 올 것!
2010년 4월 12일 월요일 | 백건영 영화평론가 이메일


홍대 밴드 생활을 접고 부평으로 들어온 리규영(이규영이 아니다). 그는 “그저 국악이나 들어야 하는 사람들의 동네” 부평의 모텔촌 사이에 위치한 술집을 인수해 ‘루비 살롱’이라는 라이브 카페를 만든다. 이어 홍대에서 활동 중인 라이브 하나 만큼은 죽여준다는 ‘갤럭시 익스프레스’와 인디밴드 중에서도 막을 자가 없다는 막장밴드 ‘타바코 쥬스’를 이곳으로 불러들인다.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의 시작도 이와 때를 같이 한다.

2009년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 수상작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타바코 쥬스의 드러머인 백승화가 연출 촬영 편집을 도맡아 완성한 다큐멘터리다. 인디밴드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답게 록음악으로 채워진 영화는, 두 개의 축, 즉 갤럭시 익스프레스와 타바코 쥬스의 일상과 음악세계를 번갈아 보여준다. 다큐멘터리가 연출자의 의도에 따른 편집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 마련인데 반해, 이 영화에서 백승화는 관습적으로 다큐멘터리의 길을 따라가지 않는다. 이를테면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언젠가는 들국화나 롤링 스톤즈처럼 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객기처럼 뿜어내는 빤한 얘기라든지, 현실에의 좌절과 눈물어린 자기고백으로 채우며 신파를 좇는 대신, 공연과 노래를 들려주는데 집중한다는 것. 속칭 간지와는 거리가 먼 인디밴드를 대상으로 만드는 다큐멘터리라서 일까. 카메라는 감추거나 가리거나 거르지 않은 채 날것의 모습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는데, 록밴드의 트레이드마크로 오해할 수 있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솔직한 대화와 무책임해보이기까지 한 일탈적 행동들이 그것이다. 아, 정말 술, 노래, 여자가 록밴드의 전부란 말인가. 무슨 질문에도 4차원적으로 대답하는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생뚱맞음과 “록밴드를 왜 하느냐?”는 물음에 고민 없이 대답하는 권기욱의 무대책은 영화를 통해 확인하시길.

감독의 의도를 알기 힘들 정도로 좌충우돌하는 초반을 지나 중후반에 이르면서 영화는 나름의 영화적 형식을 갖춰가기 시작하는데, 이는 전반적으로 아마추어냄새가 풍기는 가운데 의외의 영리한 숏들로 인해ㅡ예컨대 허름한 포장지를 뜯자 나타나는 뜻밖의 근사한 물건들처럼ㅡ가능해진다. 흥미로운 점은, 두 팀의 인디밴드가 나오지만, 한쪽은 각종 페스티벌의 서브에서 메인으로 올라가는 과정을 그린 대중적 성장담을 취하고 있으며, 다른 한쪽은 불발과 해체 일보직전의 불화를 겪는 과정에서의 내적 성장담을 대비적으로 보여준다는 데 있다.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이 아마추어의 작품치고는 흡인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기도 하다.

한 영화 안에서도 감독의 애정이 편중된 탓일까. 그럴 리야 없겠지만 외적 성공을 선취한 갤럭시 익스프레스 보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타바코 쥬스에 더 정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록 다큐멘터리임에도 외치고 부르짖고 폭발하는 모습보다 질박한 인간냄새에 더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술이 좋아 공연 펑크 내기 일쑤요 음반작업도 대충대충인 듯 보이는 이들이지만, 1집 발매공연을 통해 그들은 한층 성숙해지며 보는 이를 숙연케 만든다. 어쿠스틱기타 반주에 맞춰 여자 친구에게 바치는 보컬 권기욱의 노래가 흐를 때, 자유와 저항의 록밴드 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끼는 소중한 순간을 마주할 수 있으리라.

다만, 그런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던 영화가 마지막에 이르러, 이제는 어엿한 인디레이블의 대명사로 발돋움 한 루비 살롱의 멤버들, 예컨대 갤럭시 익스프레스, 타바코 쥬스, 이장혁 밴드, 검정치마 등이 한 자리에 모인 콘서트 장면을 보여줄 때, 느닷없이 ‘루비 살롱’ 홍보필름으로 둔갑하는 듯한 혼란스러움은 아쉽다. 그럼에도 우리가 알고 있던 홍대의 인디밴드의 실상을 단편적이나마 체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그 의미를 취득한다.

크라잉넛과 노브레인로 시작하여 언니네 이발관과 장기하와 얼굴들과 소규모아카시아밴드와 요조를 관통하는 홍대 밴드의 연보 속에, 엄연히 이들도 있음을 기억해달라는 감독의 전언.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노숙자인지 밴드인지 구분이 안 가는 타바코 쥬스와, 소질 없는 드럼 실력이지만 꽤나 재미있는 다큐멘터리를 완성한 백승화와, 부평 모텔 촌의 끈적거리는 밤을 록으로 수놓겠다는 루비 살롱의 리규영의 자유로운 삶이 부럽기까지 하니 어쩌란 말이냐.

촬영 시작 때만해도 무명이었으나 이제는 홍대의 대표밴드로 성장한 갤럭시 익스프레스와, ‘변방에서 중심’을 추구하는 데는 관심조차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시 못 할 음악적 재능을 지닌 타바코 주스를 통해, 록밴드와 록의 불모지 부평의 인디레이블 루비 살롱을 이야기하는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답답하고 꽉 막힌 세상을 향해 외치는 또 다른 저항이다. 그러니 반드시! 극장에서 큰 화면으로 볼 것. 권기욱의 걸쭉한 샤우트를 귀에 담아올 것.

글_백건영 영화평론가(무비스트)     

18 )
withyou625
잘 읽었습니당..ㅎㅎ   
2010-05-20 05:30
ggang003
잘봤습니다   
2010-05-17 09:36
iamjo
글쿤요   
2010-05-10 21:01
kby131
재밌었습니다   
2010-04-30 02:17
hrqueen1
밴드는 직접 겪어보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어울림누리에서의 봄, 여름이면 찾아오는 직장인밴드의 그 즐겁고 신나는 추억은 올해도 기다리게 하지만요....   
2010-04-18 15:34
mvgirl
밴드에 대한 다큐   
2010-04-17 12:14
happy4334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2010-04-15 13:01
seon2000
잘봤어요   
2010-04-15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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