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귄지 100일 된 기념으로 여행을 떠났던 태훈(서준영)과 미정(이민지)은 양쪽 부모님에게 호된 꾸지람을 듣는다. 결국 태훈과 미정이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만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사건은 일단락된다. 하지만 태훈은 미정이 보고 싶은 마음을 이기지 못해 계속해서 그녀의 집과 학원 주변을 서성거린다. 미정은 그런 태훈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태훈의 방황은 학교와 부모에 대한 반항으로 이어진다.
모든 것이 미완성이고 불안정했던 시절. 그 시절의 미풍 한 점은 회오리바람 못지않다. <회오리 바람>은 모든 일들과 감정이 폭풍처럼 다가왔던 10대 시절을 그린 영화다.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이 이야기는 평범하다. 10대 소년, 소녀의 풋사랑은 어른들의 반대에 부딪히고 두 아이들에게는 ‘성장’이라고 이름 붙여진 시간이 주어진다. <회오리 바람>은 그 시간의 질감과 무게를 묘사하는데 중점을 둔다. “나의 10대 시절을 투영했다.”고 밝힌 장건재 감독은 태훈을 고통스러운 시간의 화자로 삼는다.
철저히 태훈의 시점으로 움직이는 영화는 기실 태훈의 성장담이나 다름없다. 미정과의 사랑이 어려워질수록 커져가는 감정이나, 연애도 아르바이트도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답답함은 모두 태훈 만의 것이다. 영화는 그런 소년의 어지러운 감정을 생생하게 그린다. 반항심과 그리움에 어쩔 줄 몰라 하고, 미숙하고 순수한 만큼 치기어리고 대책 없는 ‘고딩’ 태훈은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수없이 마주쳤을 것 같은 평범한 캐릭터다. 때문에 <회오리 바람>이 일으키는 감정의 크기는 관객이 태훈이라는 캐릭터에 얼마나 공감을 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하지만 <회오리 바람>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진정성 담긴 캐릭터나 10대 시절에 대한 통찰이 아니라 장건재 감독의 연출력이다. 단편 영화 시절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해온 장건재 감독은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는 첫 장편영화 <회오리 바람>에서 그간 쌓아온 녹록치 않은 연출력을 선보인다. 적절한 플래시백은 이야기가 늘어질 때마다 새로이 긴장감을 환기시키고 다양한 앵글은 소년의 마음을 다각도로 비춘다. 특히 인물에 적극적으로 다가서다가 과감하게 멀어지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대사 열 마디보다 태훈의 심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무거운 마음의 짐을 등에 업고 산비탈을 오르고 오르는 태훈의 뒷모습을 멀리 잡은 장면은 최근 한국영화에서 본 장면들 중 가장 시적이다. 이야기가 지루할 틈이 없는 속도와 리듬은 10개월 편집의 결과다. 밴쿠버국제영화제 용호상 수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2010년 2월 22일 월요일 | 글_하정민(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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