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뉴올리언스. 가난하지만 꿈 많은 소녀 티아나(애니카 노니 로즈)는 레스토랑을 개업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만 한다. 어느날 파티에서 일을 하던 티아나는 마법사 파실리에(키스 데이빗)의 유혹에 빠져 개구리가 된 왕자 나빈(부르노 캠포스)을 만난다. 그리고 동화책처럼 소원을 이루기 위해 두 눈 딱 감고 입을 맞춘다. 허나 소원은커녕 나빈처럼 개구리로 변한 티아나. 다시 인간이 되기 위해서 티아나와 나빈은 깊은 숲 속에 사는 주술사 마마 오디(제니퍼 루이스)를 찾아 길을 떠난다.
이게 얼마만인가? 2004년 <카우 삼총사>의 흥행 참패로 더 이상 2D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안겠다던 월트 디즈니가 6년 만에 <공주와 개구리>로 2D 애니메이션을 부활시켰다. 90년대 초, 월트 디즈니는 잇달아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 등을 흥행시키며 남녀노소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CG 애니메이션이 연달아 관객의 눈을 사로잡으면서 2D 애니메이션은 점차 우리의 기억 속에 잊혀져 갔다. 하지만 첨단 기술이 판치는 시대에, 월트 디즈니는 반대로 2D 애니메이션 <공주와 개구리>를 내놓았다. 게다가 최초로 흑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 결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영화 톱 10(Top 10 Movies of 2009)에서 1위에 선정됐고, 올해 골든 글러브 장편 애니메이션 부분 후보에까지 오르는 등 다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동화 원작을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각색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왔던 디즈니의 이번 선택은 ‘개구리 왕자’다. 1920년대 뉴올리언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영화는, 동화책에서 나올 법한 마법 같은 이야기는 온데 간데 없고, 소원은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이루어진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내세운다. 아버지의 소원이었던 레스토랑을 열기 위해 악착같이 일을 하는 티아나는 영화의 성격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캐릭터다. 또한 티아나는 <인어공주>의 ‘에리엇’이나 <미녀와 야수>의 ‘벨’처럼 주체적인 여자 캐릭터의 계보를 잇는다. 더불어 <공주와 개구리>는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서 처음으로 흑인여주인공을 등장시켜 그 당시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끝내 자신의 꿈을 이룬다는 강인함을 부각시킨다.
월트 디즈니의 전통적인 2D 애니메이션답게, 영화는 정감 어린 그림채와 부드러운 색채로 90여분을 여백 없이 채운다. 주요 캐릭터는 일일이 사람의 손을 거쳐 둥글둥글한 모습으로 친근감 있게 표현된다. 특히 개구리로 변한 티아나와 나빈, 그리고 그들의 여행을 도와주는 악어 루이스와 반딧불 레이는 징그럽다기 보다 귀엽게 보인다. 원색 고유의 빛깔을 유지한 듯한 영화속 색체는 3D 애니메이션의 현란한 영상미와는 다르게 편안함을 전한다. 물감을 묻힌 붓으로 바로 원안에 색을 칠한 듯한 부드러움과 함께 황토색으로 물든 뉴올리언스의 도시, 녹색으로 만든 미시시피강 주변의 숲들은 영화의 흡입력을 더한다. 그리고 뉴올리언스의 전통 음식인 베이넷(밀가루 반죽을 튀겨 하얀 설탕가루를 뿌려 먹는 음식)과 검보(채소와 고기를 넣은 스튜식의 스프) 등 맛있는 음식을 등장시켜 시각 뿐만 아니라 미각까지 유혹한다.
그동안 <인어공주>의 ‘Under The Sea’ <알라딘>의 ‘A Whole New World’ <라이언 킹>의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등이 아카데미 음악상을 휩쓴 저력이 증명하듯,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음악은 한 축을 담당한다. 이번 영화에서는 <토이 스토리>시리즈와 <몬스터 주식회사> 등의 음악 감독을 맡았던 랜디 뉴먼의 지휘아래 뉴올리언스를 대표하는 재즈를 삽입한다. 아예 루이 암스트롱이나 레이 찰스를 연상시키는 악어 루이스와 반딧불이 레이의 음악은 재미를 더하고, 티아나의 목소리로 들리는 흑인풍의 뮤지컬 넘버는 이제껏 디즈니에서 들을 수 없는 색다른 음악을 들려준다. 게다가 NE-YO가 직접 작사 작곡한 밝고 경쾌한 엔딩 크레딧곡 ‘Never Knew I Needed’는 영화의 백미다.
<공주와 개구리>는 이전 작품들에 비해 디즈니를 대표할만한 명작은 아니다. 동화 속 이야기를 현실에 맞게 각색하고, 흥겨운 음악과 따뜻한 그림채 그리고 마지막 사랑으로 마무리되는 결말은 그동안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숱하게 봐왔던 요소들이다. 하지만 이 요소들은 6년 이란 시간 동안 CG로 도배된 애니메이션에 익숙해진 관객에게 향수를 느끼게 한다. 어쩌면 단점으로 작용될 수 있는 디즈니 고유의 레퍼토리는 영화에 힘을 더하며, 82년 동안 쌓아 놓은 노하우를 자신 있게 드러내는 밑바탕이 된다.
2010년 1월 20일 수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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