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극장판 4부작은 그 유기체적인 특성을 증명하는 새로운 <에반게리온>의 진화적 결과물이다. 정형되지 않은 세계관을 새로운 틀에 넣고 주조한 또 다른 판본이다. <에반게리온>의 조물주 안노 히데아키가 ‘리빌드(Rebuild)’를 천명하며 그 첫 번째 결과물 <에반게리온: 서>(이하, <서>)를 공개했을 때, 이미 그 세계는 뒤틀리고 있었다. 다만 보다 구체적인 파격적 실체를 드러내기 위한 워밍업으로서 <서>를 마련했을 뿐이다. TV시리즈로 상영한 <신세기 에반게리온> 26부작 가운데 6부까지를 변주해 나열한 <서>는 원작에 대한 기시감 속에서 꿈틀대는 파괴적 전조를 드러내며 기존의 팬덤을 또 한번 끓어 올리는데 성공했다. 단순히 질적으로 발전된 이미지를 전시하는 수준을 넘어 기존의 세계관을 융해시키겠다는 잠재적 욕망을 감지하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예고는 <에반게리온: 파>(이하, <파>)에 이르러 본격적인 실체를 드러낸다. <에반게리온>에 탑승한 팬들을 파격적인 파란의 대지로 발진시킨다.
원작의 팬이라면 도입부에 등장하는 새로운 영상만으로도 파격적인 감상을 얻을 것이다. <파>의 곳곳엔 원작의 흐름을 거부하듯 어긋나는 서사의 흔적과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발견적 영상들이 자리하고 있다. 기존의 시리즈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유형의 에반게리온과 캐릭터가 등장하며 이를 통해 서사적 너비를 확장하는 동시에 기존의 형태와 판이한 서사적 진행을 확보해나간다. 기존의 시리즈가 묘사했던 캐릭터의 성격마저 무마시키는 동시에 관계의 틀마저 온전히 다른 것으로 변형시키고 그 순차적인 캐릭터 등장 시점마저 완전히 무너뜨려버린다. 가장 파격적이라 할만한 지점은 두 편의 시리즈가 남겨진 이 신극장판의 중반부에 다다르는 역할을 하는 <파>의 서사가 이미 지난 시리즈의 결말부에 접근해버린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 끝에서 ‘써드 임팩트(third impact)’의 시작을 언급해버림으로써 그 이후에 지속될 두 편의 서사가 도무지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 그 방향성을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내달려 버렸다. 실로 폭주적인 진화를 거듭한다. 그것을 무엇이라 말해야 할지 당황스러울 정도로.
신극장판으로 <에반게리온>을 처음으로 접한 관객들에게 <파>는 단순히 놀랍게 뛰어나거나 이해할 수 없게 난해한 작품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기존의 원작 시리즈에 대한 경험치가 있는 관객이라면, 또한 그 이상의 애정을 지닌 팬이라면 <파>를 통해 충격과 경악의 감상적 지배를 느낄 확률이 크다. <서>가 만들어낸 서사적 오차범위를 통해 변화의 징후를 예감하거나 각오했던 이라 할지라도 <파>가 새롭게 선사하는 파괴적 위력과 건축적 징조들은 그 이후를 예측할 수 없게 생소해서 기다림을 견딜 수 없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원작의 형태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전혀 다른 감정적 관계를 형성하는 결말부의 파격은 이 새로운 신극장판의 궤도가 더 이상 원작 팬의 정보량 안에서 해독될 수 없을 것임을 호기롭게 선언해버린다.
“이번만큼은 신지 네가 원하는 세상을 남겨주겠어.” 카오루의 대사는 신극장판이 던지는 구체적 선언을 대신한다. 기존의 팬덤을 배반하듯 붕괴적인 네거티브를 그려낸 TV시리즈의 결말이나, 보다 서사적으로 완성된 형태를 선보이는 구극장판의 파국적 결말과는 또 다른 차원의 신세계를 기대하게 만든다. 동시에 이번 신극장판이 기존의 오타쿠적 세계를 온전히 망가뜨림으로써 오타쿠적인 팬덤의 질서를 냉소하고 이를 통해 성장과 변화를 촉구하던 성격과 지향점이 달라지리라는 예감도 가능하다. 자신의 선택 앞에 유약하기만 했던 소년 신지는 과감히 자신의 결정을 통해 폭주를 감행하고, 자신의 감정을 침전시키듯 살아가던 소녀 레이는 모성적 본능을 이끌어내며 소년의 성장을 촉매한다. 오래 전 팬덤을 이뤘던 관객들의 성장만큼이나 <에반게리온>도 진화했다. <파>는 에반게리온을 위한 창세기 외전, 아니 신창세기나 다름없다. <에반게리온>의 팬을 자처하는 누구라도 그 끝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물론 그것은 탄식이 아닌 탄성이리라. 새로운 복음이 도래한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으라.
Service! Service!
무엇보다도 <파>를 이을 또 다른 복음의 서 <에반게리온: Q>를 예고하는 '서비스! 서비스!'는 꼭 챙길 것. 물론 누구보다도 에바의 팬을 자처하는 팬이라면 자막의 오름과 함께 상영관을 꽉 채우는 'Beautiful World'를 찬송가처럼 듣고 있겠지만. 게다가 그 끝까지 챙겨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것을 아는 당신에게 그것이 분명 ‘잔혹한 갈망의 테제’가 될 것이라는 사실도 자명하겠지만.
2009년 11월 20일 금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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