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는 부천 영화제의 화제작 중 하나이다. 이미 영화에 대한 호평이 수런수런 영화팬들 사이를 떠돌고 있기 때문이다. 급격히 번져나간 입소문은 역시나 <메멘토>의 상영관을 북적이게 만들었다. 나 또한 어쩌면 '놀라운' 영화가 아닐까, 부푼 기대를 안고 극장을 찾았다.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바로 시간의 재배열이다. 관객은 보통 영화를 볼 때처럼 '어, 다음에 어떻게 되지?'가 아니라 '어, 이 앞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라는 의문에 게속 마주치게 된다. 즉, <메멘토>의 특별한 가치는 '결과'를 중점에 두었던 기존 영화를 뒤집어 '원인'에 주목하는 시각에서 비롯한다. 관객은 이 과정에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머리를 굴리게 되고, 이것을 신선하게 느낀다.
만약 <메멘토>의 플롯을 정상적인 시간의 흐름과 맞추어 짜 넣는다면 이 영화는 그저 시간을 잃어버리는 사내를 이용한 부패한 경찰과 마약상의 사기극 정도로 추락한다. 그리고 관객은 답답해서 가슴이 미어질 것이다. 아니, 저 나쁜 놈이 불쌍한 사람을 속여서 이용해 먹고 있잖아. 그리고 비열한 인간사회를 향한 한탄으로 침울하게 극장을 빠져 나올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메멘토>는 그런 느낌이 없다. 오히려 영화를 끝난 후, 가뿐하고 홀가분한 기분마저 든다. 이것은 시간을 짧게 분할하여 거꾸로 열거함으로써 긴장과 이완을 규칙적이고 지속적으로 반복하기 때문이다. 느닷없는 결과에 당황하여 긴장하던 관객은 전에 등장했던 결과에 대한 원인을 제공받음으로써 궁금증을 해소한 채 마음을 놓게 되고, 그 때 쯤이면 또 새로운 결과가 나타나는 식으로. 그래서, 마지막에는 아, 이거였구나 라는 깨달음과 함께 나누어져 있던 장면 장면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시야가 확 트이는 듯 뿌듯하기까지 한 것이다. 사실 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에 또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한이 없겠지만 말이다.
<메멘토>는 적당히 철학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감독은 우리의 '기억'을 조롱한다. 사실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이란 본질이 아니라, 본질의 상에 불과할테다. 그것은 볼록거울, 오목거울에 비친 사람처럼 굴절되고, 기울고, 휘어져 머리 속에 왜곡된 기억의 상흔으로 패인다. 이문세 아저씨의 '기억이란 사랑보다'라는 노래처럼 사랑의 기억은 본래의 사랑보다 더욱 과장된 슬픔을 지닌다. 물론 반대로 축소되는 경우도 있고. 말랑말랑한 기억의 자욱을 주무르는 것은 시간의 압박일 수도, 우리의 무의식일 수도 있다. 좀처럼 뚜렷하게 구체화시킬 수 없는 것들이다. 주인공 레나드는 '눈을 감아도 세상은 존재하는 것처럼, 기억이 없다 해도 나는 있다. 나는 나를 믿는다.' 는 대사를 남긴다. 하지만 어떤 인격의 존재는 그가 인식하고 소화한 삶의 공기가 연소하고 융화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볼 때, 기억의 불확실은 존재의 혼란으로까지 이어진다. 너는 이토록 기억이 흐릿한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 믿느냐. 관객석을 향해 감독이 은밀하게 던져놓은 미끼는 바로 이것이다.
적당한 집중력과 적당한 추리력과 적당한 철학적 사고를 갖춘 사람들에게 <메멘토>는 더할 나위없이 신선하고 매력적인 영화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마지막까지 풀어주지 않는 물음표들에 대해서, '눈을 감아도 세상은 과연 존재할까' 라는 화두에 대해서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본다면 우리는 <메멘토> 감상을 좀더 깊이 할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