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주의 성장영화의 진수
<나무없는 산>을 제대로 읽기 위해선 김 감독의 장편 데뷔작 <방황의 날들>(2006)의 호명이 필요하다. <방황의 날들>과 <나무없는 산>은 김 감독 특유의 ‘사실주의 성장영화’라는 점에서 동전의 양면과 다름없다.
<방황의 날들>은 이제 막 미국에 이민 온 10대 소녀 에이미가 겪는 방황과 사랑을 세묘하며 성장영화로서의 외피를 형성한다. 그러나 <방황의 날들>은 그 수 많은 성장영화와 동류로 처리할 수 없다. 청춘을 관통하는 뜻 모를 분노를 에너지 삼아 극을 전진시키지도, 감정의 진폭을 극대화하며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려 하지도 않는다. 카메라는 감정적 개입을 극도로 배제한 채 현실을 물끄러미 관찰하며 등장인물의 심리를 세세히 전달한다. 그렇게 영화는 등장인물의 감정을 층층이 쌓아가며 극장 문을 나서는 관객에게 정중동(靜中動)의 폭발력과 미학을 선사한다. <방황의 날들>이 지닌, 흔치 않은 영화적 미덕이다.
<나무없는 산>은 <방황의 날들>과 크게 차별화 되진 않는다. 어린 자매 진과 빈의 정서적 성장을 다룬 내용부터가 그렇다. 차이점은 현실을 전달하는 카메라가 더욱 진득해졌고,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더욱 세밀해졌다는 것이다.
생활고 때문에 어린 자매를 친척집에 맡기는 엄마, 돼지저금통이 꽉 차면 그 엄마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 자매, 그리고 그 자매가 신산한 삶의 한 과정을 통과하며 역설적으로 희망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은 지극히 낯익고 신파적이다. 그럼에도 <나무없는 산>은 통속영화의 서술법을 단호히 거부하며 독창적인 영화세계를 펼쳐낸다.
특히 주관적 시선과 객관적인 감정을 병치시킨 김 감독의 사실주의 기법은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다. <나무없는 산>의 카메라는 클로즈업으로 인물들의 얼굴을 잡아내면서도 건조한 쇼트들간의 충돌에 의해 주관적 감정을 차단시킨다. 각 세그먼트 사이에 끼어 드는 대도시와 소도시와 시골의 풍광도 관객의 과도한 감정이입을 막는 동시에 자매의 심리를 충실히 반영한다.
다르덴 형제 화법의 한국적 응용
김 감독은 “(벨기에의 거장) 장 피에르 다르덴ㆍ뤽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다르덴 형제에 대한 김 감독의 헌사를 굳이 듣지 않아도 다르덴 형제가 그에게 미친 영향력은 <나무없는 산>에서 쉬 감지된다.
인위적인 음악의 철저한 배제는 대표적인 예다. <나무없는 산>은 다르덴 형제의 모든 영화(<로나의 침묵>을 제외하고)가 그렇듯 감정의 변화나 고조를 음악에 의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르덴 형제의 영화처럼 <나무없는 산>은 서글픈 단조 음악이 스크린에 흐르는 듯 지극히 리드미컬하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이 벨기에 공업도시의 자동차 엔진과 기계음만으로도 주인공들의 심리를 적절히 드러냈다면, <나무없는 산>은 아이들의 속삭이는 듯한 짧은 대화와 웃음 소리 등으로 음악 이상의 효과를 구현해낸다. 지독하게 감정을 배제하면서도 인간적인 따스함을 놓치지 않는 영화적 시선도 다르덴 형제를 닮았다. <나무없는 산>은 다르덴 형제식 화법의 성공적인 한국적 응용이라 할만하다.
다르덴 형제의 화법을 일부 수용하면서도 김 감독은 독자적인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특히 이젠 사실주의의 클리셰가 돼버린 카메라 들고 찍기(핸드헬드)를 과감히 떨쳐내고 자신만의 화법을 구축한 점은 주목할 만 하다. <나무없는 산>은 들고 찍기는커녕, 되려 카메라의 움직임을 최대한 절제하며 관객의 감정적 동요를 방지하려 한다. 냉랭한 화면으로 심장에 불을 지피는, 개성적 화법이다. 두고두고 복기하며 기억해둘 만 김 감독만의 영화적 인장이다.
2009년 8월 27일 목요일 | 글_라제기 기자(한국일보 문화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