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극의 총체
사극이 사극이 아닌지는 좀 됐다. 실록을 바탕으로 역사를 기술하던 이른바 정통 사극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팩션'은 <다빈치 코드>에만 붙일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최근 사극은 판타지보다 더 판타지에 가깝다. 드라마의 토양이 태생적으로 허구일 수밖에 없지만 실존인물과 역사를 바탕으로 한 시대극은 다른 장르보다 엄격한 사실관계에 얽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이는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든 가공인물을 내세웠든 마찬가지다. 이야기는 정사는 물론 진위여부야 어쨌든 기록으로 남아있는 야사와도 한참 멀어져있다. 주인공의 출생비화는 알에서 나왔다는 박혁거세의 신화보다 더 운명적이고 극적이다. 고증보다 무한 상상력을 원동력으로 삼은 현대 사극은 소재의 다양성은 물론이요 기존의 왕조 정치극에서 무협, 멜로, 추리, 판타지까지 장르의 영역을 넘나든다. 심지어는 실존인물의 성별을 바꾸기도 하는 불경함(?)을 저지르기도 했다.
변화의 시작으로 꼽히는 것은 <다모>다. 궁과 왕족에서 벗어나 지방관청과 번잡한 저잣거리로 파고든 드라마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내세우며 그보다 더 풍성한 이야기를 길어 올렸다. <다모>는 사극이 실록에 의지하지 않고도 탄탄한 서사를 구축할 수 있음을 보여줬고 무협물을 도입해 영화보다 영화 같은 스펙터클한 영상을 선보였다. 기존 사극의 공식에서 벗어난 드라마는 이야기, 장르, 소재, 스타일 모든 면에서 사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끝없는 미션수행으로 사극의 작법을 뒤바꿔놓은 <대장금>이 전파를 탔고, 사극도 블록버스터가 가능함을 보여준 <해신>이 출몰했다. 여기에 <주몽>에서 엿보였던 사극의 판타지화가 <태왕사신기>를 통해 절정에 달하면서 사극은 정말 더 이상 사극이 아니게 됐다. 대담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현대 사극 앞에서는 '역사왜곡' 운운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이들이 사극을 통해 풀어내고자 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변치 않는 인간 본연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대인의 실상과도 엄연히 맞닿아 있다. 우리 역사상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을 히로인으로 점찍은 <선덕여왕>은 이 모든 변화와 진화의 총체다.
판타지의 절정
왕을 주인공으로 권력투쟁의 역사를 그린 <선덕여왕>은 정통사극의 맥을 이어갈 수도 있는 작품이다. 권력의 중심을 남성이 아닌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는 설정은 여성 권력 암투의 끝을 보여줬던 <여인천하>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선덕여왕>이 수혈 받은 것은 정통사극이 아니라 <다모>의 비장미와 <대장금>의 新 여성주의, <해신>의 글로벌한 역사관 그리고 <태왕사신기>의 영웅 신화 같은 판타지 사극이다. 드라마의 기본이 되는 인물구성부터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든다. 타이틀은 '선덕'여왕'이지만 <선덕여왕>은 '미실(고현정)'이라는 실존 혹은 허구의 인물을 또 다른 중심축으로 내세운다. 미실은 훗날 발견된 '화랑세기'에만 기록된 인물. 하지만 필사본 '화랑세기'의 진위여부가 불분명해 그녀의 존재 역시 지금까지 논란에 휩싸여 있다.
존재 자체가 모호한 인물이나 <선덕여왕>은 과감히 미실을 훗날 선덕여왕이 되는 덕만(이요원)과 함께 드라마의 전면에 내세운다. 아직 덕만의 성장이 채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지금까지 <선덕여왕>은 미실이 매회 못 박는 대로 '미실의 시대'다. 안 그래도 기록물이 가장 적은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정사에도 기록되지 않은 인물을 내세웠으니 <선덕여왕>이 우리가 아는 역사의 수순대로 흘러가지 않으리라는 것은 예정된 일.
부실한 기록사이와 의도적인 왜곡의 틈을 메우는 것은 첫째도 둘째도 상상력이다. 드라마는 덕만이 훗날 선덕여왕이고 김유신(엄태웅)이 가야 출신 김서현의 아들이며 천명공주(박예진)이 김춘추(유승호)를 낳는다는 최소한의 역사적 사실만을 바탕으로 그럴 듯한 판타지를 직조한다. 역사 속에서 존재 자체가 모호했던 미실은 삼국시대는 물론 이후에도 없을 막강한 여성권력자로 등극하고 덕만에게는 북두칠성의 여덟 번째 별의 주인이라는 출생신화가 덧입혀진다. 서역에서 보낸 덕만의 유년기, 덕만과 천명의 첫 만남, 미실과 덕만의 대립구도 등 대부분이 허구다.
드라마는 아예 판타지물의 서사를 적극 차용하기도 한다. <선덕여왕>의 판타지가 극에 달했던 에피소드는 단연 '사다함의 매화'였다. 백성은 물론 왕까지 미실에게 두려움을 갖게 했던 '사다함의 매화'는 미실의 힘의 원천이며 악의 근원이다. 선왕의 후궁에 불과했던 미실은 이것을 지님으로써 신에 가까운 힘을 갖게 된다. 덕만 일행은 미실이 수 십 년 간 감췄던 힘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미실의 과거와 현재를 추적한다. 선한 주인공들이 절대악의 근원을 파괴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는 판타지물의 가장 기본적인 서사. ‘사다함의 매화’는 인간인 미실에게 절대 권력을 안겨준 <반지의 제왕>의 절대반지이자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의 호크룩스인 셈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
판타지의 시작이 가공의 세계를 구축하고 완성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미실의 신라’라는 가공의 시대를 창조한 <선덕여왕>은 2009년의 이야기를 서라벌로 가져가면서 판타지를 완성한다. <선덕여왕>이 갖가지 장르와 상상의 혼용임에도 불구하고 정통 사극 못지않은 명분과 당위성을 얻는 이유는 덕만과 미실의 대립구도에 깔아놓은 이중, 삼중의 텍스트들 때문이다. 판타지의 외피를 두른 <선덕여왕>의 속내는 결코 비현실적이지 않다. ‘사다함의 매화’는 미실이 ‘왜 절대 파워의 소유자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했지만 역으로 그녀 역시 천인(天人)이 아닌 불완전한 인간임을 입증하는 에피소드이기도 했다. 미실이 진정 두려운 존재인 이유는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오로지 뛰어난 정치력으로 왕권을 넘어서는 권력을 쌓아올린 그녀의 극악함은 마법도 초능력도 없는 현실에서 가능한 절대악의 파워를 보여준다. ‘사다함의 매화’의 정체를 밝히는 것은 덕만 일행의 지혜와 용기가 아니라 미실 그녀다. 덕만에게 그것이 책력임을 말하는 미실이 믿고 두려워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다. 그런 자신에 대한 확고한 신념 때문에 그녀는 “백성들은 가난하다. 천 년 전에도 그러했고, 천 년 뒤에도 그러할 것이다. 그것이 백성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미실의 말과 행동에 기시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선덕여왕>은 곳곳에서 현실과 부딪히며 묘한 공명을 일으킨다. 미실은 두려움에 떠는 덕만에게 자신이 만들어낸 암흑의 시대에 복종할 것을 나긋한 목소리로 종용한다. 그리곤 두려움에 대처하는 방법 두 가지를 알려준다. 도망치거나, 분노하거나. ‘사다함의 매화’가 만들어낸 미실의 정치쇼 ‘월식’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그녀는 더 큰 욕망으로 점철된 핏빛 장막을 걷어 올린다. 미실의 완전무결한 자신감과 술수는 그 어떤 반발도 허락하지 않는다. 신라 전역에 공포를 심는데 성공한 미실은 숙적 김서현에게 실상 굴복을 요구하는 손을 내민다. 선하지만 노회한 정치가 김서현은 한없이 정치적인 결단을 내린다. ‘사다함의 매화’ 에피소드가 예사롭지 않은 이유는 이런 권모술수와 야합이 현대인의 눈으로 봐도 결코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가 아니라 인간이 마땅히 느껴야 할 분노가 먼저’라는 김유신의 외침은 어떤 구호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가슴을 강하게 때린다.
현실적 함의가 깊어지고 넓어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선덕여왕>의 판타지는 강력해진다. 덕만의 정의와 용기는 결국 미실이라는 절대악을 넘어설 것이다. 동일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선덕여왕>이 외면하기 힘든 판타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2009년 8월 5일 수요일 | 글_하정민(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