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마다 상황에 맞는 영화시장을 갖추고 있다. 미국은 할리우드를 위시해 다양한 독립영화 제작이 이루어지고 있고, 우리나라는 극장 중심의 영화에만 편중되어 있다. 일본은 할리우드급은 아니지만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고 있으면서, 소위 3류 영화라 불리는 언더그라운드 산업도 활발하다. 일본 영화 전체에서도 제법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마이너 영화들이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장르 영화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 남성 팬들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로망 포르노는 물론, 잔혹한 고어 영화나 액션, 공포 영화들이 이러한 부류에 속해있다. 우리나라 대표 마이너 산업이었던 에로 시장이 열악한 제작 시스템과 낮은 완성도로 몰락을 맞은 것에 비해 일본은 장르 영화가 하나의 문화 영역으로서 파급력을 갖추고 있다.
<주온>은 이러한 일본의 장르 영화 시장의 히트 상품이다. 3분짜리 단편 영화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눈에 띄어 발탁된 시미즈 다카시 감독은 비디오로 제작한 <주온>으로 공포영화의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 냈다. 저주나 원한과 같은 동양적인 공포 요소를 일상생활이라는 평범한 공간 속에 녹여낸 새로운 표현방식은 그를 공포 영화의 새로운 히트 메이커로 만들었다. 비디오판 <주온 1,2>는 극장판 1,2로 다시 제작됐고, 이후 공포영화의 거장 샘 레이미 감독이 친히 할리우드로 불러들여 <그루지 1,2>로 공포 블록버스터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강한 효과음과 프레임의 비주얼로 공포를 만들어내던 서양의 일반적인 공포영화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동양적인 정서가 미국 시장에서도 크게 어필한 덕분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4,000억 원의 흥행 수익을 기록한 <주온>이 10주년 기념작으로 야심차게 제작됐다. <주온: 원혼의 부활>이라는 제목 그대로라면 마치 시리즈의 프리퀄이나 최소한 연장선상의 영화를 연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렇게 밀접한 관계는 없다. <주온>이라는 타이틀과 귀신들린 집이라는 익숙한 장소를 빌려오긴 했지만, 독립적인 이야기를 갖추고 있고, 형식에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시미즈 다카시가 제작을 맡았지만 그보다는 두 신인 감독의 색다른 시도가 더 두드러지는 영화로 완성됐다.
<주온: 원혼의 부활>은 <하얀 노파>와 <검은 소녀>의 두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본가로 명성을 쌓은 미야케 류타 감독이 연출한 <하얀 노파>는 저주가 깃든 집에서 벌어진 니시오기 일가족 살인사건에서 희생된 할머니 원혼을 소재로 한다. 원혼은 10년이 지나도록 니시오기 집안의 손녀와 친했던 아카네의 주변을 맴돌며 끊임없이 희생자를 찾는다. 일가족을 살해한 장남은 자살했지만, 자살 장면을 녹음한 테이프가 경찰에 전해지며 저주가 전해지고, 집으로 케이크를 배달하러 갔던 배달부 역시 집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 <검은 소녀>는 일본 공포영화계에서 흔치 않은 여성 감독 아사토 마리의 작품이다. 태어나지 못하고 죽어간 쌍둥이 소녀의 원혼이 ‘검은 소녀’가 되어 사람들에게 복수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유 없이 발작을 하는 후키에. 병원에서 검사를 해 보니 몸 안에서 죽은 쌍둥이 동생의 흔적이 발견된다. 제거 수술을 하면 될 줄 알았으나, 그 흔적에는 영혼이 있다. 자신의 정체를 본 간호사의 주변 사람들을 처참하게 죽이고, 자신을 없애려고 했던 영매 역시 가만두지 않는다. 또한 영매를 통해 자신을 해하려 했던 엄마와 언니인 후키에까지 모두의 목숨을 앗아간다.
두 작품에서 두드러진 부분은 편집을 통해 이야기를 독특하게 구성했다는 점이다. 내러티브를 따라가는 이야기 구성이 아닌 캐릭터를 소개하는 짧은 영상을 무작위로 이어 붙여 이야기를 완성한다. 처음에는 각 캐릭터별 이야기만 짧게 등장하는 탓에 분산된 이야기가 집중력을 떨어뜨리지만, 후반부에 모든 이야기가 하나로 완성되고 각 캐릭터들이 어떤 이유로 죽음을 맞았는지를 알게 되면 공포는 배가 된다. 이야기 속 캐릭터가 사건을 풀어가는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파격적인 형식을 사용했지만, 형식적인 부분과는 다르게 소재적인 측면에서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하얀 노파>에서 니시오기 일가 실인사건과 그로 인해 저주가 깃든다는 이야기는 오리지널 <주온>과 그나마 닮아 있지만, <검은 소녀>는 <주온>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완전히 독립적인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죽은 쌍둥이 형제의 원한을 소재로 한 영화는 이미 스티븐 킹 원작의 <다크 하프>나 태국 공포영화 <샴> 등에서 소개된 정통적인 호러 아이템이 아니던가.
과거 <주온>이 전해줬던 으스스한 공포는 맛보기 힘들다. 침대 밑이나 이불 속, 욕실 등 예상하지 못한 일상 공간에서의 공포가 <주온>의 매력이었지만, <주온: 원혼의 부활>은 도움닫기가 너무 길다. 무서운 장면이 나오기 전에 다양한 효과음과 카메라 앵글로 충분한 호흡을 주면서 타이밍이 어긋나고, 깜짝 놀라게 할 의도적인 장면에서도 귀신의 등장 위치까지 눈치 챌 정도로 뻔한 흐름을 보여준다. 알면서 당하는 것이 공포영화라지만, 적어도 <주온>이라면, 10주년 기념작의 <주온>이라면, 이러한 규칙을 넘어서면서는 노련함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10년간 <주온>의 팬이었던 관객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주온>의 상징과도 같은 ‘끄어어억’ 하는 숨이 넘어가는 효과음도 자주 사용되고, ‘툭, 툭’하고 주기적으로 벽을 때리는 소리도 등장한다. 하얀 얼굴의 하얀 몸을 한 <주온>의 대표 캐릭터 ‘토시오’도 출연한다.(<검은 소녀>는 토시오와 상반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시나리오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영화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는, 그야말로 우정 출연 정도다. <주온: 원혼의 부활>은 지난 10년간 공포영화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었던 <주온>을 기념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당시의 충격이 너무 컸던 탓인지, 과거 <주온>이 보여줬던 새로운 공포보다는 숱하게 다뤄진 정통 공포영화를 답습하는 느낌이 강하다. 공포 그 자체에는 모자람이 없지만, 뭔가 부족한 2%는 어디 가서 찾아야 하나.
2009년 7월 7일 화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