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해 보이는 세 여고생이 가톨릭 여자 고등학교의 성당에서 한 날 한 시에 같이 자살하자는 약속과 함께 혈서를 쓰고 있다. 그런데 그 경건하면서도 불길한 의식이 끝나자마자 또 다른 여학생이 옥상에서 떨어져 자살한다. 학교가 발칵 뒤집힌 건 당연지사. 그 와중에 죽은 여학생과 친분이 있던 이 세 여학생들에게 자살한 여학생이 귀신이 되어 찾아온다. 그리고 꽤나 복잡할 것 만 같던 자살 사건의 진상은 중반 이후 꽤나 친절하게 밝혀지기 시작한다.
귀기서린 여고생들이 돌아왔다. 그런데 시의적절하게도 자살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전 대통령이 허공에 몸을 던지고, 무명 여배우의 자살 사건이 허망하게 갈무리된 2009년의 대한민국에서 자살은 분명 무시 못 할 화두다. 그러나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이러한 자살을 공포영화의 소재로 활용한 것이 꽤나 발칙했나보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자살이란 모티브가 꽤나 불온해 보였는지 영화의 1차 심의 결과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매긴 바 있다. 방학을 맞은 10대들이 꽤나 열광하는 이 '교복' 공포 영화에 철퇴를 내리려는 심산이었던 셈. 하지만 재심의를 청구한 끝에 제작사 씨네2000은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아냈다. 과연 자살이란 소재만을 문제 삼아 청소년들의 관람을 무작정 막는 것이 과연 온당할까? 또 영화라는 것이 지엽적인 사유나 정치적 고려로 관객들이 관람하기도 전에 먼저 재단되어도 되는 것인가?
그러나 이러한 질문에 답을 해 주기에 <여고괴담5-동반자살>은 자살에 대해 심오한 성찰을 보여주거나 작금의 사회 분위기를 리얼하게 담아낼 생각이 거의 없다. 영화는 그보다 그간 <여고괴담> 시리즈의 장점들을 다이제스트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고 있는 듯 보인다. 자살이란 코드를 제외하고는 먼저 작품성 면에 있어 가장 성공한 2편과 닮아 있다. 동성애 코드까지는 아니더라도 여고생들 사이의 죽음을 뛰어넘는 우정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면에서 그러하다. 자살을 둘러싼 이유 중 하나로 임신이 제시되는 것도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친구들 사이의 경쟁심리를 다룬 것은 3편 <여우계단>과 닮아 있고, 소중했던 친구가 귀신으로 귀환한다는 면에서는 4편을 연상시킨다. 자, 1998년 개봉, 당시 한국영화로서는 드물게 흥행에 성공하며 시리즈물로 안착한 <여고괴담>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이자 10주년 기념작은 이렇게 당도했다.
하지만 <여고괴담5-동반자살>은 무척이나 게으른 종합선물세트다. 입시라는 지옥과도 같은 환경에 대한 사회적 고찰도 없고, 장르에 대한 고민도 없다. 자살이란 소재는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그걸 다루는데 있어 크게 고민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귀신을 등, 퇴장 방식이나 플래시백의 활용은 더더욱 덜컹거린다. 그러니까 자살 소동의 피해자인 언주는 귀신이 되어 나타날 때 어떠한 원칙도 없고, 색다른 스타일도 없다. 공포영화 특유의 음향효과가 전주곡을 알리면 피 칠갑을 한 채로 잠시 겁을 주는 식이다. 더욱이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플래시백은 너무나도 안일하다. 플래시백의 주체도 없이 장황하게 언주와 소이의 관계 변화나 1등 유진의 심리를 평면적으로 드러내는 식이다.
스타일만 놓고 봐도 더더욱 문제 투성이다. 일단 신인 이종용 감독의 영화 전반을 관장하는 연출력이 전무하다. 특히 초반부 설정 숏 조차 없이 내러티브를 그저 흘러가게 만드는 건 무시못할 약점이다. 맥없는 편집의 리듬을 커버하기 위해 동원된 것은 음악의 과잉이다. 영화의 정서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촬영이나 편집의 묘미가 아닌 과잉된 음악의 사용이다. 음악이 먼저 정서를 규정하면 관객은 그저 넋 놓고 따라가야 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귀신과 마주한 뒤부터 변해가는 세 친구의 공포가 전혀 관객에게 전이되지 않는다. 귀신의 묘사에 있어서도 어떠한 혁신이나 새로움도 찾아 볼 수 없다. 분장만 놓고 보면 <월하의 공동묘지> 수준이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여고괴담5-동반자살>이 더더욱 아쉬운 점은 바로 자살이란 소재 자체에 있다. 영화는 분명 자살이란 문제적 행위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만들면서, 자살을 선택한 자에게는 위로를, 동시에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들에게는 공포영화 다운 단죄를 내린다. 무엇보다 자살한 친구를 아꼈던 소이가 평생 느껴야 할 상실감을 전달하려는 노력만큼은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클라이막스에 거의 멜로드라마에 가까운 정서의 과잉을 목도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아마도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이 영화를 고깝게 본 것은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현 시국을 고려했기 때문이리라. 사회적 타살에 가까운 일련의 자살에 우리 사회는 아무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것과 달리, 영화 속 자살 클럽 친구들은 철저하게 심판을 받는다. 그렇게 공포영화의 귀신이나 괴물은 모든 억압된 타자들을 대변한다. 그러나 자살한 자는 말이 없다. 하지만 분명 사회적이든, 개인적이든 그 책임은 누군가가 져야 한다. 비록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여고괴담5-동반자살>은 이러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여고괴담> 시리즈가 계속 살아남아 한국사회의 억압의 지점들을 계속해서 건드려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9년 6월 17일 수요일 | 글_하성태(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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