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때문에 바쁘기만 한 부모의 무관심이 원망스러운 코렐라인(다코타 패닝)은 새롭게 이사온 집을 구경하던 중 작은 문을 발견한다. 벽으로 막혀있던 문을 기이하게 바라보던 코렐라인은 결국 그 문이 새로운 세상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임을 알게 되고 그 곳에서 자신을 반갑게 맞이해주는 인형 눈의 부모를 만나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인형눈을 한 그 곳은 코렐라인을 위한 모든 것이 마련된 세계다. 일에 매달리는 진짜 부모와 달리 가짜 부모는 코렐라인에게 헌신적이고 자상하다. 하지만 단추를 단 눈은 때때로 기괴하며 음침한 예감을 부른다.
인형을 새롭게 봉제하는 바느질 장면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출발하는 도입부는 인형과 바늘의 이미지를 통해 순수함과 불길함이라는 양면성을 재단한다. 이 오프닝 시퀀스는 <코렐라인: 비밀의 문>(이하, <코렐라인>)의 상상력을 온전히 대변한다. 팀 버튼의 원작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연출한 <크리스마스 악몽>의 헨리 셀릭 감독의 새로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인 <코렐라인>은 <크리스마스 악몽>만큼이나 불길하고 순수한 악몽의 세계다. 세계적인 작가 닐 게이먼의 동명 원작을 영화화한 <코렐라인>은 동화적 세계관을 구술하는 텍스트를 표현력이 풍부한 이미지로 치환하고 새롭게 각색한다.
닐 게이먼이 창작한 원작소설을 기반으로 완성된 <코렐라인>은 이미지만큼이나 독창적인 세계관을 품은 스토리텔링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작품이다. 부모의 애정을 갈구하는 코렐라인이 현실로부터 느끼던 결핍을 우연히 발견한 비밀의 문 너머의 충족시켜나간다는 사연은 오늘날 어린이들을 고립시키는 어른들의 무관심과 맞닿아있으며 이에 대한 부모들의 책임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계몽적이다. 그러나 마치 음침하게 변주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판타지 버전같기도 한 <코렐라인>은 자연적이고 순수한 동화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기괴하고 음흉한 괴담의 기운을 그려넣는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을만 하다. 부모의 애정을 갈구하며 현실 안에서 결핍을 쌓아나가던 코렐라인이 우연히 발견한 비밀의 문 너머의 세계에서 부모와 빼 닮은 단추눈의 부부를 만나 그들이 제공한 환상적인 공간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과정은 순수한 아이들의 꿈을 대변한다. 그러나 친부모 몰래 매일같이 비밀의 문을 건너 대리만족을 만끽하던 코렐라인의 미소는 점차 위협적 예감으로 일그러진다. 단추눈의 불길함이 흉악한 송곳니를 드러내는 순간, 동화적 모티브에 가려 있던 악몽의 채색이 짙어진다. 코렐라인의 긴장감이 이미지를 타고 고스란히 객석으로 전이된다.
상반된 공간의 특성을 대변하는 대비적 이미지는 <코렐라인>의 세계관을 수식하는 미사여구로서 탁월한 기능성을 발휘한다. 특히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틀에 3D입체영상의 날개를 단 이미지는 기능적인 효과보단 입체적 감각 그 자체가 중시될만한 독창적인 이미지의 카니발을 선사한다. 스톱모션의 분절된 연속성은 물리적인 입체감을 구현하는 동시에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을 보존한다. 물리적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비주얼은 호러적인 긴장감을 연출하거나 캐릭터의 심리적 두려움을 생동감 있는 물리적 형태로 반영하는데 있어서도 효과적이다. 다만 아동 취향의 동화적 색채가 강한 소설을 원작으로 두는 만큼 이야기의 기본 맥락은 지극히 단순하고 지극히 교훈적인 결말도 상투적인 감상을 부른다. 이미지의 입체감에 비해 스토리의 평면성은 완전히 극복되지 못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코렐라인>은 수공예적인 제작방식만큼이나 풍부한 감수성으로 이뤄진 이미지의 체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통해 완벽한 인공적 자연스러움을 유지하는 요즘의 애니메이션의 월등함을 제치고 <코렐라인>의 진보된 투박함을 권할 수 있는 건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동화와 판타지를 아우르는 순수한 상상력이 황홀한 이미지의 날개를 달고 악몽의 카니발을 선사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균형이 황금비율을 이루는 <코렐라인>의 황홀경은 감성적 체온이 느껴지는 기술의 진보를 설명할 수 있는 성과 그 자체다.
2009년 5월 22일 금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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