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적인 정서를 담은 원작이 헐리웃에서 재구성 되었을 때, 그 결과는 그럴 듯하게 만들거나 실망스러운 것 둘 중에 하나라 할 수 있다. 특히, 원한과 구구절절한 사연이 주요 테마가 되는 동양의 공포영화의 경우 헐리웃에서 리메이크 되었을 때 대부분이 후자의 결과를 보여주곤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공포영화로서는 대단한 흥행을 기록했고, 일찌감치 헐리웃에 판권이 팔렸던 김지운 감독의 영화 <장화, 홍련>의 리메이크 격이라 할 수 있는 <안나와 알렉스> 역시 그 결과를 미리 말하자면, 앞서 말한 후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사고로 엄마를 잃고 충격에 빠졌던 안나는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안나의 집에는 그녀의 아버지와 자유분방하고 든든한 언니 알렉스가 여전히 안나를 반겨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 온 안나를 반겨주는 새로운 이가 있었으니, 바로 간호사 레이첼이다. 두 자매의 새 엄마가 되고자 하는 레이첼을 미워하는 언니 알렉스와 불편하기만 한 레이첼의 존재는 안정을 취해가는 안나를 또다시 혼란스럽게 만든다. 영화 <안나와 알렉스>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핵심적인 모티브는 원작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의 주인공인 두 자매와 아내를 잃은 아버지, 그 빈자리를 채우고자 하는 새 엄마와 그들이 함께 사는 한적한 저택에서의 기이한 일들까지 원작에서 사용된 주요 키워드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원작의 주요 모티브를 비롯하여 두 자매가 함께 하는 강가장면 및 일부 공포장면 등 우리나라 영화 <장화, 홍련>을 연상시킬만한 주요 장면들이 군데군데 엿보이는 것도 원작을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색다른 재미가 될 만하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스토리, 결말, 캐릭터 등은 감독의 의도대로 <장화, 홍련>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탄생했기에 굳이 두 영화를 일일이 비교하지는 않으려 한다. 그럼에도 영화 <안나와 알렉스>만을 두고 보았을 때, 원작과 뚜렷한 차이를 보인 스토리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우선 원작과의 두드러진 변화는 가족괴담에서 심리 스릴러로의 장르적 변화라 할 수 있다. 집으로 온 뒤 악몽에 시달리는 안나, 그리고 불쑥불쑥 등장하는 세 아이들의 환영, 언니 알렉스와 레이첼 사이의 갈등, 그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사고들까지 영화는 여기저기 미끼를 설치하고, 미스테리적 심리 스릴러로서의 모양을 갖추어 나간다. 하지만 지나치게 느린 전개와 반복적인 공포는 오히려 장르적 재미를 떨어뜨리고, 생뚱맞은 반전을 거듭하고, 난데없이 정통 스릴러로 변모하는 후반부는 억지스럽기까지 하다.
사실 <장화, 홍련>과 달리 도전적이면서도 반항적인 이미지를 지닌 두 자매 캐릭터가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극중 안나와 알렉스를 연기한 에밀리 브라우닝과 아리엘 케벨의 소녀적인 매력도 좋지만, 그보다 두 자매의 새 엄마가 되고자하는 간호사 레이첼을 연기한 엘리자베스 뱅크스의 이중적인 연기가 꽤나 인상적이다. 세련되고 차분하면서도 차갑고, 도발적인 팜므파탈적 매력을 동시에 발산하는 그녀의 매력이 다소 밋밋하고 평범한 분위기 속에서 그나마 입체적인 느낌을 가미하는 요소가 되어 준다. 이와 더불어 헐리웃 공포영화의 주특기라 할 수 있는 흉측한 몰골을 한 유령 등의 비쥬얼적인 공포요소는 늘어지는 순간마다 한 번씩 놀래켜주며 공포영화임을 수시로 확인시켜 주기도 한다.
아무리 다른 모양의 옷을 입히고, 이리저리 각색한다 해도 원작과 비교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리메이크작의 숙명이다. 스토리의 긴장감이나 구성, 캐릭터의 매력, 그리고 공포영화로서의 장르적 재미, 게다가 미술적인 비쥬얼과 음악 등 어느 하나 원작을 능가하지 못하는 <안나와 알렉스>는 87분이라는 꽤나 짧은 런닝타임 동안에도 원작이 지닌 매력과 재미를 지속적으로 되새김질 시킨다. 그것이 아무리 리메이크작의 비극이라 해도 <안나와 알렉스>는 보고 나오는 순간 관객들은 하나같이 ‘진리 아닌 진리’를 깨우치게 될 것이다. 김지운 감독과 임수정, 문근영, 염정아, 김갑수, 이들이 만든 <장화, 홍련>이 얼마나 명작인가 하는 것을.
2009년 4월 6일 월요일 | 글_김진태 객원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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