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동심은 어른의 상상력을 넘어선다. 시각으로 보이는 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색다르게 해석하고, 신선하게 창조하는 능력은 직사각형의 현실에 갇힌 어른의 사고로는 범접할 수 없는 것이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발랄한 제목의 영화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가스 제닝스’ 감독은 이러한 아이들의 맑고 고운 위트를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을 통해 진정 판타스틱하게 표현해 냈다.
80년대 영국의 한 마을. 엄마, 할머니, 여동생과 살고 있는 윌(빌 밀러)은 음악과 TV를 엄격하게 금하는 종교적 공동체에 속해 있는 어린 소년이다. 아빠가 죽고 오직 그림그리기로 외로움을 달래던 그는, 어느 날 학교에서 악동으로 소문난 리(윌 폴터)와 마주친다. 반 강제로 리의 집에 가게 된 윌은 그곳에서 처음으로 TV를 보게 된다. 그것도 전지전능하고 무엇이든 만능인 <람보>를. 그때부터 윌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람보>뿐이고, 자신의 그림 소재인 <람보의 아들>로 리와 영화를 찍기로 한다. 그들은 주연, 촬영, 소품, 미술, 의상, 엑스트라까지 모든 것을 단 둘이서 진행한다. 하지만 이 초특급 프로젝트에 갖가지 일들이 끼어들면서, 영화는 점점 산으로 가고 그들의 우정도 삐걱거린다.
‘가스 제닝스’ 감독은 <람보>를 본 순간 완전 넋이 나갔던 자신의 유연시절 모습을 ‘윌’과 ‘리’에게 고스란히 투영시켰다. 세상에 두려운 것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람보를 통해 자신의 사춘기 불안과 혼란을 치유했다는 가스 제닝스. 그는 영화 속 아이들을 통해 ‘가능’과 ‘치유’를 이야기한다. 윌은 엄격한 종교 때문에 시청각 시간에는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복도에 혼자 있어야 했다. 하지만 종이에 갇혀 있던 그림을 영화라는 환상의 현실로 옮기는 순간 모든 속박에서 헤어 나온다. 두려움이라는 단어도 없다.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지 못했던 소심함은 람보의 아들을 맡고 모든 위험한 장면을 대역 없이 하는 덕에 자연적으로 치유됐다. 이것은 리도 마찬가지다. 이혼한 부모의 부재와 자신을 하인 부리듯 하는 형으로 인해 문제아가 된 리는 어른처럼 담배를 피워대고, 문제를 일으키며, 주변으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킨다. 그에게 영화는 현실로부터의 도피수단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는 영화감독은 그를 지켜주는 판타지고, 이러한 자신의 세계에 윌을 참여시키는 것은 무엇보다 특별한 우정의 표시다.
아이들은 상상을 영화라는 현실의 장치로 만들어 나가며 서로의 외로움을 치유하고 우정을 나눈다. 그리고 늘 조용했던 윌이 소리를 지르고, 늘 상대를 윽박지르는 것이 당연했던 리가 흘리는 눈물은, 그동안 각자의 환경에서 억눌려 있던 감정의 표출임과 동시에 서로 닮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영화를 만들며 기쁨과 슬픔을 겪는다. 그러면서 ‘함께’라는 것의 의미를 찾아간다. 상대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우정이라는 결정체가 의미 있게 와 닿는다. 또한 가정의 지나친 관심과 속박으로 숨 막혀하는 윌과 무관심으로 인해 외로워하는 리의 모습을 통해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연기가 처음인 주인공들의 연기는 베테랑급이다. 덕분에 시종일관 경쾌하다. <람보의 아들>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소리 내어 웃지 않을 수 없다. 오랜만에 만나는 재밌고 따뜻한 영화다. 여기에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미덕까지 갖추었다. 그저 행복할 따름이다.
2009년 3월 27일 금요일 | 글_김선영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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