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헐리우드 영화의 맛
나는 영화평을 쓰기엔 -수준 이라기 보단- 눈높이가 참 낮은 관객이다. 단적으로, 난 오락으로써 그 자체의 기능에 충실한 헐리웃 상업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헐리웃 액션을! 다소 식상한 감도 없지 않지만, 어쨌거나 짜릿한 카타르시스와 나름의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헐리웃 영화의 경쟁력은 탄탄한 각본(이른바 그들이 자랑하는 웰-메이드 시나리오)과 축척된 기술력(요즘 그들이 집착하는 테크놀러지) 그리고 막강한 스타시스템(단순 조명/분장, 그 이상의 무엇)이 결합하며 이루어내는 삼중주 앙상블의 상승효과! 그래서 나는 헐리웃이라 불리는 시스템 혹은 인프라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1."재밌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여름영화 골라잡기에 나선 관객 대부분이 원하는 정보는 이것이리라. 완성도를 떠나서 "재미있다/없다 한마디만 해!"라는 식으로 물어보는 이들이 꽤 많다.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경우라면, 대게 "볼만해"라고 답한다. 그러나...
2.이런 사람만 봐라.
툼 레이더는 철저하게 "재미"라는 관점에서 봐도, 뭔가가 빠진 듯한 느낌의 영화다. 그래서 다음 3가지부류의 사람들에게만 권하고 싶다. (괄호는 [툼 레이더]의 특징)
1) 매트릭스식의 액션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 (액션만 줄줄이)
2) 안젤리나 졸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 (졸리의 독무대)
3) 원작 게임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 (게임과 비슷함)
3.이런 사람은 절대 보지마라.
강도가 센 공포영화에는 "임산부 및 노약자가 관람을 삼가…" 권고 딱지가 붙듯이 [툼 레이더]같은 영화 역시 다음과 같은 취향의 분들은 관람을 피하는 게 상책일 것이다.
1) 전형적인 헐리웃 액션영화의 패턴에 질린 사람. (새로움이 없다)
2) 처절하고 리얼한 액션만 쳐주는 열혈액션팬. (다소 황당하다)
3) 지성파를 자부하는 지적인 취향의 관객. (평론가의 표적)
4.맛이 왜이래?!
[툼 레이더]가 재미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감정이입이 안된다. 왜 감정이입이 안될까. 우선 캐릭터의 문제! 눈부신 안젤리나 졸리의 육체적 매력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캐릭터는 별 빛을 발하지 못한다. 그녀는 너무 완벽하다. 돈도 엄청나게 많지,(대저택에 사는 백만장자 상속녀) 굉장한 미인이지,(물론!) 싸움도 잘하고 못하는 운동도 없는 것 같다.(원더우먼 뺨친다) 그뿐인가. 신화와 역사, 문학은 물론 외국어에도 능통하고(영화 내내 강조한다), 알고 보니 천재 아버지를 둔 천재 소녀였다.(영화의 라스트에서 그녀는 엄청나게 어려워 보이는 기하학 문제를 문학적 상식으로 아주 손쉽게, 그것도 단번에 풀어버린다)
이게 어디 사람인가. (007도 이렇지는 않다. 적어도 그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직장인에다, 여자에 약하다는 약점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주변 캐릭터들도 건조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 졸리(라라 크로포드)에게 무서울 게 있겠는가! 안 그래도 주인공인데! 영화는 애초에 우리의 주인공 졸리에게 위험(두려움과 컴플렉스)따윈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그러니 스릴과 서스펜스가 웬말인가.
그리고 드라마의 (치명적인!)문제. 스토리 자체가 황당하다.(설명하기도 멋쩍다. 다만 '제5원소'수준이라는 것만 귀뜸하겠다) 그렇다고 독창적이냐 하면 절대 아니다. 이제 "시나리오가 영화화 될 확률이 교통사고 당할 확률보다 낮다"는 헐리웃의 안목이 의심스럽다. (하긴 최근 일련의 헐리웃 블록버스터들을 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이제 결론을 내자. 그럼, [툼 레이더]에서 건질 건? 아찔한 졸리의 몸매, 현란한 영상 그리고 사운드트랙 정도. 전곡을 들어본 결과, 영화음악 선곡만큼은 기대 이상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