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책상의 양 끝에 한 소년과 박사들이 앉아 있다. 박사들에게 무언가를 테스트 받고 있는 그 소년에게는 다름 아닌 특별한 능력이 있다. 바로 남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이다. 그리고 이어서 묘한 느낌의 음악과 함께 독특하면서도 생뚱맞아 보이기까지 하는 오프닝 장면이 등장한다. 비범한 능력을 가진 어리바리 청년 수민(진구)과 그의 특별한 일상들을 담은 영화 <초감각 커플>은 오프닝의 느낌 그대로 ‘독특+신선+생뚱’의 느낌을 골고루 지닌 초감각적 영화다.
마치 <X-File>류의 미스터리 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오프닝만 봐서는 ‘초능력 소년’이란 제목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초능력을 숨긴 채 조용히 살아가던 수민은 어느 날 우연히 낯선 소녀 현진(박보영)을 만나게 된다. 느닷없이 다가와서는 졸졸 따라다니며 귀찮게 하는 것은 기본이요, 귀엽고 어리기만 한 외모와 달리 아이큐 180으로 박학다식한데다 이상하게 수민의 초능력까지 통하지 않는다.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던 수민의 일상은 현진의 만남과 함께 시끄러워 지기 시작한다. 남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영화나 만화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럼에도 영화 <초감각 커플>이 신선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독심술을 지닌 주인공과 그것을 알아봐주는 천재소녀의 만남을 통해 로맨틱 코미디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렇듯 <초감각 커플>은 어눌한 말투의 수민과 시끄러운 속사포 소녀 현진이라는 상반된 캐릭터의 조화, 거기에 더해진 초능력이라는 이색적인 소재를 꽤나 흥미롭게 짜맞추어가는 노력이 엿보인다.
조용히 살고 싶은 수민에게 나타난 현진은 수민이 지닌 초능력을 이용해 한창 수사 중인 유괴사건을 함께 해결할 것을 권유한다. 영화는 엉뚱한 커플의 로맨틱 코미디적 분위기에서 순간순간마다 미스터리적 스릴러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로맨틱 코미디와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장르를 ‘초능력’이라는 소재 하나로 엮어가는 이야기 역시 나름 독특한 느낌을 전달한다. 하지만 신선한 시도와는 달리 유치한 설정들은 후반으로 갈수록 지루하기만 하며, 구태의연하고 당황스러운 반전은 어색하기까지 하다. 많은 단편영화들로 실력을 다져 온 김형주 신인감독의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들이 군데군데 엿보이며, 개성 있는 캐릭터와 소재는 시선을 끌지만 정작 장편영화로서의 힘은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약 85분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러닝타임에도 순간마다 늘어짐을 느끼게 되니 말이다.
어색한 반전에 이어 난데없이 등장하는 짧은 애니메이션 역시 독특함과 동시에 당황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TV애니메이션 <장금이의 꿈> 시나리오에도 참여한 바 있는 김형주 감독의 재능을 보여주는 이 짧은 애니메이션은 영화의 만화적 느낌을 십분 살려주지만 이미 늘어질 데로 늘어진 사람들에게는 당황스럽기만 할 뿐이다. 참고로 영화 <초감각 커플>은 올해 3분기 문화관광부 주최 ‘디지털콘텐츠대상(DC) 영상콘텐츠 부문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또한 영화를 보면서도 느끼겠지만 공원과 집, 미술관 등 몇 안되는 로케이션 장소와 두 주연배우를 제외한 지극히 낯선 연기자들(대부분이 연기도 어색하다!)은 <초감각 커플>이 저예산 영화임을 자연스럽게 확인시켜 준다. 이처럼 이색적인 소재와 독특한 스토리가 분명 시선을 끌고 있지만 매끄럽지 못한 편집과 맥없이 늘어지는 후반부는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올해 영화들을 통해 주연급 연기자로 거듭난 진구의 어눌한 연기와 드라마 및 영화로써 가장 바쁜 한 해를 보낸 박보영의 대책없이 발랄한 천재 여고생 연기는 유쾌한 궁합을 보여준다. 소재나 캐릭터, 이야기, 두 주연배우의 연기 등 개별적으로는 신선함이 돋보이지만 막상 모아 놓고 보니 생뚱맞기만 한 느낌은 제목마냥 ‘초감각적’이기까지 하다. 그래도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해서 그야말로 특별출연의 역할을 제대로 해준 개그우먼 정주리 덕에 큰 웃음 한번 ‘빵’ 터뜨리고 나올 수 있을 테니 서둘러 나가지는 마시길.
2008년 11월 27일 목요일 | 글_김진태 객원기자(무비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