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신이 다시 찾아왔다. 유력 포털과 언론이 2008년 10월 2일 아침 일제히 최진실의 죽음을 긴급 기사로 타전한 것. 자택 샤워부스에서 압박붕대로 목을 매달은 사체가 발견되었으며, 자살로 추정된다는 것이 소식의 골자다.
근래 故 안재환 죽음과 관련해 사채 추문에 얽힌 일이 있는데다, 아이 둘을 두고 죽음을 택했을 만큼 극단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추리가 더해지며 최진실 죽음은 명확하게 전후관계가 밝혀지기 전까지 한동안 연예 뉴스계에 큰 이슈메이커로 작동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밝혀진 증거가 전무한 상태에서 댓글과 소문을 통해 부풀려진 소식이란 대개 그렇듯 고인에 대한 근거없는 모욕이기 쉽고, 경박한 방정에 한 마디 보태는 일에 영화 매체가 나설 수는 없는 일이다. 그저 안타깝게 사라진 영혼을 기억할 뿐.
베르테르의 그림자가 자욱한 한국 연예계
엘비스 프레슬리나 제니스 조플린, 지미 핸드릭스처럼 약물중독에 의한 죽음이 거의 없는대신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연예인 죽음과 관련하여 가장 흔하게 들리는 이유는 역시 ‘자살’이다. 더구나 짧은 기간에 연달아 죽음이 벌어지는 일이 많다는 점이 특징. 혹자는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표된 이후, 소설 속 주인공 베르테르의 자살에 영향을 받아 유럽의 많은 독자들이 따라서 자살을 선택했다는 ‘베르테르 신드롬’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서로 연관이 크지 않은 연예인의 죽음 사이에 적용하기엔 무리다. 다만 비슷한 시기에 죽음을 택한 연예인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고, 때문에 우리가 특정 시간을 잘 기억하고 있기도 하다.
가장 가깝게는 한 달 사이에 당시 20대 후반 한창 나이였던 두 연예인이 연달아 죽음을 택했던 2007년 초로 돌아간다. 시트콤으로 스타덤에 오른 여배우 정다빈이 2월 10일, 그보다 보름정도 이른 1월 21일 아역배우 출신 가수 유니가 죽음을 택했다. 비슷한 또래에 한창 활동하던 연예인들이었고 공교롭게도 악플 등으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던 상황에서 선택한 죽음이 팬들을 경악으로 몰아넣었던 사건이었다. 무엇보다도 아직 할 일과 보여줄 일이 더 많았던 청춘이 미처 다 꽃 피지도 못한 체 삶을 마감한 것이 안타까웠다. 그보다 2년 빠른 2005년 2월, 거짓말 같은 자살 소식으로 인터넷 속보를 꽉 채웠던 이은주의 죽음. 텔레비전 드라마 〈카이스트〉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오, 수정〉〈주홍글씨〉같은 작품성 강한 작품에서 배우로서 갖춘 식견을 증명하고 드라마 〈불새〉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로 흥행에도 본격적으로 감을 쌓기 시작한 막 피우고 있던 배우의 죽음.
반복되는 죽음, 아쉬운 마침표
올드팬이라면 1995년 말 솔로 데뷔한지 얼마되지 않는 전 듀스 멤버 김성재의 죽음과 그와 겨우 두 달도 되지 않는 사이에 벌어진 1996년 1월 서지원과 김광석 두 가수의 자살이 기억날지도 모르겠다. 솔로 데뷔곡 〈말하자면〉이 성공적인 반응을 이끌어낸지 얼마되지 않아 호텔에서 발견된 김성재의 경우나, 데뷔 앨범을 성공시키고 2집 발표를 앞둔 스트레스로 죽음을 택했다 알려진 서지원, 지금도 여전히 〈공동경비구역 JSA〉같은 영화에서 아쉬움 짙게 묻은 대사로 남아 아련한 김광석처럼 당시의 충격적인 잇단 죽음은 당시를 살았던 젊은이들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가장 빠르게는 1990년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죽은 가수 장덕이 있겠다. 노래 뿐 아니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작곡가와 프로듀서로도 유명했던 장덕은 특히 죽기 직전 발표한 마지막 앨범의 타이틀 곡이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인 탓에 죽음을 각오한 것이 아니냐는 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죽음이 꼭 자살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올해만 놓고 보아도 4월 댄스그룹 〈거북이〉의 터틀맨 임성훈이 지병에 의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고, 같은 달 그룹 〈먼데이키즈〉 멤버 김민수가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했다. 드라마 〈최강칠우〉로 탤런트 경력을 본격적으로 쌓아가던 모델 출신 연예인 이언 역시 같은 해 8월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했다.
죽음에 이르는 길, 출발선은 어디인가?
잘 알려진 유명인사의 죽음이 공교롭게도 연이어 벌어진다. 유명인사가 아니어도 때 이른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안타깝다. 하물며 개인적인 관계가 아니어도 사랑하는 팬이 많았던 연예인은 어떨까. 아쉬움이 많으면 쉽게 인정하기도 싫은 법이다. 조금이라도 억울한 구석이 있다면 그 조금의 조금도 남기고 떠나보내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심리. 너무나 분명하여 이견의 여지가 없는 경우를 제외한 유명인의 죽음에 음모이론이 따라붙는 바탕에는 (언론이 가진 뉴스에 대한 강렬한 허기와 함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한 우리의 안타까움이 깔려있다. 그런 식으로 아직도 미국인 소문의 한복판에는 살아있는 엘비스를 본 사람이 있으며, 정치적인 목적에서 마를린 먼로가 살해당했다는 가설이 돌아다닌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대부분은 억측이고, 귀여운 팬심인데다 가벼운 소문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분명한 유서조차 없이 죽음을 택한 스타들에게 음모이론을 적용하는 것은 그래서 경박하다. 대부분은 술자리 안주거리로 삼기에도 얇팍한 탓이다. 아직 살고싶고 보고싶은 것이 많을 나이에 우발적으로 택한 죽음이 계획적이기 쉽지않다. 계획적이지 않으니 적절한 유서나 짜임새 있는 전후행동을 남기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자살 당시의 전후행동이 이상하다는 것만으로, 적절한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사자들의 죽음을 엉뚱한 이야기로 꾸미기에는 우리는 너무 아는 것이 없다. 범죄가 연관되었다면 적절한 증거를 수집한 수사관이 해결할 일이고, 몇 가지 조건에 비춘 자살자에 대한 불평은 우리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고통을 겪고 자살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측근이 할 말이다. 주변에서 가볍게 자살에 대해 억측을 하며 엉뚱한 이유를 찾기 보다는, 충동이 진짜 자살로 이어진 이유를 세계 자살률 2위를 달리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찾는 것이 더 논리적이지 않을까. 교통사고로 죽은 연예인의 뒤에는 다른 무엇보다 교통사고 세계 2위인 한국의 환경이 있지 않을까.
짧은 시간에 또 많은 연예인을 떠나보냈다. 우리가 사랑했던 스타이자,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확연하게 보여주는 이웃이기도 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글_유지이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