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에게는 극장은 물론이고, 극장 밖에서의 환상도 필요하다.” - 아돌프 히틀러
티베트 학살과 스촨성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도 중국의 고위인사들은 베이징 올림픽은 영향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치 앞을 보기 힘든 스모그에 지구환경 오염의 주범임에도 환경올림픽을 내세우는 뻔뻔한 민족이니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정상과 스포츠스타들이 중국의 인권과 환경문제를 질타하며 보이콧을 선언했을 때, 나는 정말 베이징 올림픽만큼은 철저하게 실패하기를 바랐다. 이런 가운데 베이징 올림픽의 막이 올랐고 그 화려하고 성대하게 준비되었다는 개막식을 보았다.
거칠게 말해서 장이모가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의 총감독에 내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내게 개막식은 보나마나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개막식을 끝까지 시청한 이유는 호기심에서가 아닌 장이모와 중국의 합작품이, 그러니까 중국정부가 투자 제작 배급을 맡고 장이모가 감독을 맡은 또 하나의 민족주의블록버스터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본 사람마다 느낌이야 제 각각이겠으나 한마디로 예상한 만큼을 보여주었으되 대단하거나 장엄한 느낌은커녕, 중국의 자아도취가 만들어낸 최고의 돈지랄(이런 저속한 표현 말고는 도무지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을 보았다는 허탈함 뿐이었다. 게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목적성이 드러나는 구성으로 인해 지루하기 짝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랬구나! 결국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이 중심 된) ‘하나의 꿈, 하나의 세계’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운 야욕의 신호탄에 불과했구나. 그러니까 전 세계인의 화합과 꿈이 담긴 잔치 한 마당에서 오로지 자국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대내외에 과시하고 첨단기술로 변화한 오늘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중화주의 예찬에 몰두한 장이모 연출의 개막식은, 아무 내용과 미학적 고민 없이 오로지 첨단기술에 의존해 영상혁명을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블록버스터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다는 말이다.
사실 1천억 원을 쏟아 부은 210분짜리 개막식의 총책임자로서 장이모만한 인물이 또 있을까? 중국인민의 고단한 삶과 끈질긴 생명력을 황토빛으로 채색함으로써 일찌감치 세계영화계의 인정을 받은 반면, 중국 내에서는 반체제 문화예술인의 대표적 인사로 낙인찍힌 그였다. 문화혁명기의 한 남자의 삶을 통해 중국사회주의를 비판하고 인생을 성찰하는 영화 <인생>의 제작을 위해 가짜 시나리오를 당에 제출했고, 주연배우 ‘갈우’에게서 일생일대의 명연기를 뽑아낸 장이모가 아니었던가! 그랬던 그가 돌연 할리우드와 손잡고 중국정부의 대대적인 지원 하에 국책영화 <영웅>을 만들었을 때, 뒤이어 내놓은 <연인>과 <황후화>로 중화주의의 홍위병을 자처했을 때 더 이상 그의 영화에서 기대할 것이 없음을 확신했다. 민중의 한 사람에서 당의 영웅으로 화려한 변신을 이룬 장이모. 그러니 이번 올림픽의 총 연출자는 장이모가 아닌 다른 인물이어야 할 어떤 이유도 없었던 셈이다.
장이모의 변절은 이미 1999년 <책상 서랍속의 동화>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을 때부터 전조가 보였으니, 그 어느 때보다 수상결과에 말이 많았던 이 영화제에서 장이모는, 더 이상 검열의 위협을 받는 감독이 아닌 중국정부의 지원 아래 놓인 감독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귀주이야기>와 별 다를 바 없는 농촌리얼리즘과 선전영화를 방불케 하는 무리한 해피엔딩은 장이모의 영화가 얼마나 변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그럼에도 장이모가 영화 ‘장인’의 이미지를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중국정부의 선전덕분이었다. (할리우드로 떠난 첸 카이거가 돈 때문에 변절한 세속주의자로 인식되는 것과 비교해보라) 때문인지 장이모를 보고 있노라면 등소평이 강조했던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이 절로 떠오른다. 영화를 만들던 쇼를 하던 개막식 연출을 하던, 위대한 중화사상을 세계만방에 알리면 그만이다? 내가 베이징 올림픽의 순수성을 의심했던 것도 순전히 장이모 때문인지 모르겠다. 또한 개막식을 보면서 베를린 올림픽을 기록했던 레니 리펜슈탈 Leni Riefenstahl이 떠오른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히틀러는 이미지 조작이 대중을 선동하고 그 영혼을 포획하는 데 동원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장치임을 안 파시스트였다. 그런 그에게는 두 명의 문화 조력자가 있었으니 ‘극장’의 레니 리펜슈탈과 ‘극장 바깥’의 알베르트 슈페어가 그들이었다. 슈페어가 극장 바깥에 나치의 망상을 건축물로 만들어낸 반면, 리펜슈탈은 보다 상징적이고 환상적인 방법으로 대중을 선동하게 되는데, 나치 전당대회를 기록한 <의지의 승리>와 베를린 올림픽을 소재로 만든 <올림피아>로 명실상부한 나치의 대표적 예술가로 자리매김한다. 때문인지 개막식만 놓고 보면 베를린 올림픽과 베이징 올림픽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다. 게다가 장이모의 개막식은 미학적 측면에서 아무런 감동과 감흥을 안겨주지 못했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은 적어도 리펜슈탈의 영상은 후대에게 분명한 것 하나를 남겼다는 사실이다. 다름 아닌 나치의 현상과 그 현상의 힘 그러니까 신비화와 볼거리를 통해 수 백 만 명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목적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를 영상을 통해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가히 선동매체로서의 영화의 힘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말이다. 그러나 장이모의 개막식은 오직 규모와 스펙터클의 과잉만으로 채워놓았을 뿐 아니라 철저하게 닫힌 영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물론 장이모에 대한 평가가 완성된 단계는 아니다. 그럼에도 훗날 장이모는 리펜슈탈의 발치도 좇아갈 수 없는 평가를 얻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리펜슈탈이 ‘오로지 자신의 예술’에만 관심 있던 감독이었고, 나치를 옹호했던 무수한 예술가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철저히 버려졌으며 히틀러 이후 다시는 영화를 만들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인해 근래에 들어 왜곡된 부분의 수정이 조심스럽게 시도되고 있는 반면, 장이모의 경우는 갈 수 록 오욕의 노예로 전락할 소지가 농후하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변질되어버린 한 예술가의 인생이 국가패권주의와 병치되고 있음을 발견하는 기분은 이처럼 찝찝하고 섬뜩하다.
2008년 8월 11일 월요일 | 글_백건영 영화평론가(네오이마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