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다 한 발 늦게 접한 소식에 의하면, 거침없이 상종가를 달리는 탤런트 송일국과 핏불테리어의 집요함으로 무장하여 심은하 단독 인터뷰 성공이라는 혁혁한 무공을 세운 전력의 소유자 김순희 기자 사이의 진실공방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검찰이 송일국의 폭행사건은 무혐의 처리한 반면 여기자를 무고죄로 불구속기소해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여기자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법정투쟁을 선언하기 이르렀다.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연예기자와 스타 사이의 공생관계가 발전적이거나 혹은 상호파괴를 통해 이어져왔음을 감안한다면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인터뷰라는 것이 사전 약속을 통해 진행돼야 함은 두말 할 필요 없는 일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특정한 목적 때문에 인터뷰이 측에서 먼저 접촉해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예민한 사안에 연루되거나 이슈의 중심에 선 인물의 경우 인터뷰 성사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힘든 경우가 다반사다. 결국 잠입 기습을 감행하거나 막무가내로 물고 늘어지기로 상대의 허락을 얻어내는 일이 벌어지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또 설사 인터뷰가 성사되었다고 하더라도 몇 가지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러니까 지나치게 사적이거나 불미스런 과거사에 관한 언급은 피해주길 바라는 인터뷰이(interviewee)와 최대한 비밀스럽고 공개된 적 없는 이야기를 끌어내려는 인터뷰어(interviewer) 사이에 긴장과 줄다리기가 그것이다. 결국 모범답안만을 내놓으려는 인터뷰이로부터 진심을 듣기 위해 인터뷰어는 갖은 수단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를테면 상대의 신상을 속속들이 파악하여 인간적으로 접근하는 고전적 방법에서 상대의 치부와 문제를 수집한 후 이를 빌미로 흥정하거나 진실을 털어놓게 만드는 야비한 방법까지 다양하다.
송일국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인터뷰어의 지나친 직업의식과 특종강박증은 때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과연 스타의 사생활은 어디까지 보호받을 수 있으며, 팬과 대중의 알권리를 내세워 무자비할 정도로 먹잇감을 쫓는 기자의 행위는 어느 선까지 용인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최근 개봉된 영화 [인터뷰]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만나게 될 모든 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작품이다. 즉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개성파 연기자 스티브 부세미가 연출을 맡은 이 영화에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승부와 최선의 해결책이 고루 담겨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특종을 내지 못해 편집장으로부터 신뢰를 잃은 정치부기자 피에르와 B급 공포물을 통해 섹시스타로 부상한 철부지 여배우 카티야 사이에서 벌어진 인터뷰를 소재로, 하룻밤 동안 밀고 당기는 두 사람의 공방전을 생중계하듯 그려낸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특종강박에 사로잡힌 기자의 비인간적 행위를 보여주는데 머물지 않는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를테면 무자비한 인터뷰어의 비신사적 관행의 결과가 특종이라는 날개를 달고 승승장구해온 동안, 스타들 또한 역공의 무기를 준비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카디야가 자신의 집으로 피에르를 입장시키는 뜻밖의 순간, “눈물 연기는 자신 있어요” 라던 카티야의 말이 현실에서 위력을 발휘하던 순간, 전장에서도 살아 돌아온 피에르가 하찮게 여긴 여배우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지던 순간, 우리는 하룻밤 동안 인간관계의 참담한 모양새-화해와 다툼과 인간미와 직업의식이 뒤엉킨 아노미상태-를 목도하게 된다. 감독은 기자와 스타 사이의 인터뷰를 통해 편견이 가져온 불신과 내적변화에 집중하면서도 스타들 마음에 내재된 방어기제가 얼마나 본능적으로 또 팔색조의 형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인터뷰는 일종의 ‘게임’ 이다. 지혜로운 스타는 때론 거침없이 솔직하게 때론 보이지 않는 가식적인 방법으로 인터뷰의 주도권을 잡곤 한다. 예컨대 스스로를 비하하면서 인터뷰어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는 모니카 벨루치 같은 배우가 있는 반면 꾸밈이 없고 솔직한 답변을 통해 상대를 사로잡는 스타도 있다.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로 인터뷰했을 때, “영화는 얼마나 많이 보나요?” 라는 질문에 “나는 [대부]란 영화도 아직 안 봤어요. 전 제가 나오는 영화 말고는, 영화 잘 안 봐요”라며 솔직하게 대답한 안젤리나 졸리가 대표적인 경우다.
그러고 보니 2006년 초여름 [강적]의 언론시사회장 소동이 생각난다. 당시 기자회견 방식을 놓고 주연배우 박중훈과 기자 사이에 작은 이견이 있었고, 일부 인터넷 매체의 사진기자들을 중심으로 단체보이콧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에 질세라 이어진 박중훈의 일갈. “기자가 양아치도 아니고.....” 물론 기자는 절대로 양아치가 아니다. 그럼에도 기자인지 파파라치인지 구분 안 되는 수준 낮은 기자들이 널렸다는 것은 문제다.
영화가 끝날 즈음이면, 왜 피에르가 별 볼일 없는 정치부기자에 머물고 있는지, 그의 취재가 왜 편집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지, 스캔들 메이커에 마약을 일삼는 카티야가 어떻게 폭발적 인기를 유지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알려준다. 역시 스타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닌가 보다.
글_백건영 영화평론가(네오이마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