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이 잠잠했던 건 농을 섞자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한미 FTA와 스크린쿼터 투쟁의 일선에 나선 그에게 대중은 냉혹했다. <올드보이>를 통해 국민 배우의 자리에 우뚝 올라섰던 시간은 부지불식간에 ‘어제의 영광’이 되어버렸다.
황정민은 ‘무릎팍도사’에 나와 말했다. “배우 나부랭이가 할 일이 뭐있겠냐. 진실한 연기를 하는 거 밖에.” 하지만 대중들에게 최민식은 배우가 지켜야할 선을 넘은 것으로 인식됐다. ‘쌀투쟁’ 집회에서 농민들에게 사죄의 절을 하고,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구호를 외치고, 각종 매체와 이론가로서 한미FTA와 스크린쿼터 철폐의 부당함을 역설한 것이 그의 ‘활동’ 이력 전부다. 그 결과는 캐스팅 1순위, 연기파의 대명사였던 배우에 대한 철저한 망각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는 사이 참여정부는 수명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고, 스크린쿼터는 관객들의 머릿속에 배부른 영화인들이 못 만든 영화를 구제하기 위한 핑계거리로 전락했으며, 단 한 번의 광고 출연으로 ‘사채 광고를 찍은 국민배우’로 전락해 버렸다.
그런 최민식이 신작 소식을 타전했다. 지난해 <검은 땅의 소녀와>를 선보인 전수일 감독의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이 그 신작이란다. 내용인 즉, “공장에서 사고로 사망한 한 네팔 노동자의 유골을 그의 가족에게 전해주고자 히말라야 고산마을을 찾아간 ‘최(최민식 분)’의 이야기”란다.
의미심장하다. 공장에서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의 유골을 그의 가족에게 전해주고자 고향으로 찾아가는 또 다른 노동자. 이건 중국인 ‘파이란’의 유골을 들고 오열하던 강재와는 차원이 다르다. <검은 땅의 소녀와>에서 사북이후 잊어버렸던 탄광이란 공간을 동시대에 되살렸던 전수일 감독이 최민식을 선택한 이유가 단지 연기력과 유명세 때문일까. 그럴 수 있다. 예술영화가 숨을 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스타의 캐스팅이니까. <해안선>의 장동건을 떠올려 보라. <해변의 여인>의 고현정은.
하지만 이런 외적인 요인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한국 공장에서 사망한 네팔 노동자를 한국 사회와 한국 영화로 바꿔치기 해도 될 것 같다는 기시감이 든다는 점이다. 그토록 경고했던 한미FTA와 스크린쿼터 폐지를 관망했던 ‘우리=가족’에게 유골을 전달해주는 최민식이라니. 과도한 망상인 것이 분명하지만 섬뜩하면서 아릿한 감정이 드는 것은 왜 인지.
과연 영화가 어떤 꼴로 완성될지 모른다. 전수일 감독의 동녘필름과 <올드보이> <식객>의 쇼이스트가 제작비 4억을 투자한다고 하고, 네팔에서 한 달 가량 촬영할 거란 얘기도 들려온다. 이러저러해도 좋은 작품이 완성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변화한 의식에 따라 실천에 나선 한 개인이 이렇게 몰락하는 건 옳지 않다. 여론이 악화되기 전에 찍은 광고로 몰염치한 연예인의 선봉에 오르는 것도 과도한 돌팔매다. 경제만 살려도 된다, 는 세상이지만 이건 한국과 한국영화계의 손실이다. 최민식이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스크린에 복귀하는 날, 제일 먼저 티켓을 끊고 발품을 들여 어느 극장에라도 향해야겠다. 최민식의 반가움 귀환을 축하하기 위해.
P.S...
본문에서 빼 먹은 것 같아 덧붙인다. 최민식이 사채광고를 찍은 걸 고운 시선으로 보면서 면죄부를 줄 생각은 없다. 그리고 그가 거의 첫번째 타자였기 때문에, 개인으로서 정치적 활동을 한 인물이기에 더욱 타겟이 됐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건 형평성의 문제인 거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사채광고에서 얼굴을 빼지 못했지만 친근한 이미지로 무마했던 탁재훈, 사채광고에 학력위조까지 문제가 됐지만 '태조왕건'과 '대조영'의 최수종 등 사채 광고에서 활약한 배우들은 수 없이 많다. 정치적 견해를 밝혔다고 해서 그에게 더 짙은 혐의를 씌우는 건 문제가 있지 않을까.
2008년 2월 4일 월요일 | 글_하성태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