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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주 감독 인터뷰
변영주 | 2000년 5월 1일 월요일 | 이지선 기자 이메일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한 가지 이야기를 줄기차게 해온 감독 변영주씨를 만났습니다. 3월의 따뜻한 봄날, 보임의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영화와 가족, 한국사회, 리얼리즘 논쟁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이야기로 채워졌습니다. '낮은목소리'로 시작된 연작을 새천년에 와서 마무리한 유명한 독립영화감독, 그리고 여성감독 변영주는 참으로 씩씩하고 주관 뚜렷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이 인터뷰는 좀더 빨리 여러분께 보여졌어야 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이제서야 올리게 되었습니다. 변영주 감독과 독자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어 죄송하다는 말씀 드려야겠습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볼까요?

서로 자리에 앉아 명함을 주고 받고, 탁자에 재떨이를 놓고 하는 과정에 "화이트데이 사탕은 받으셨어요?"라는 몸풀기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변영주 감독은 "어, 화이트데이요? 그거 꼭 받아야 되는 건가?"라며 뚱하게 되묻는 통에 인터뷰는 어색하게 시작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순간 우린 할 말을 잃었던 거죠. 썰렁한 분위기가 잠시 감돌았습니다만, 오늘의 목적을 잊을 수는 없었죠. 지난 7년간의 작업을 마무리한 감독과의 만남이었기에 우선은 소감이 궁금했습니다. 그에게는 뭔가 특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더구나 '낮은 목소리' 연작은 각종 단편 영화제나 대학가에서나 겨우 소개되던 독립영화를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띄워 올린, 한국영화계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획득한 영화였으니까요.

"특별한 소감도 없고, 7년이 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중간 중간 2년 텀으로 1편씩 만들었고. 의무감, 당위성 같은 건 잘 모르겠고 그래서 특별한 느낌은 없어요. 앞으로 다큐멘터리를 또 만들려면 누굴 만날까, 하는 설레임. 그런 건 있죠. 난 감동을 받았던 다큐의 길을 따라간 것이고, 할머니들이 7년간 함께 했습니다. 낮은 목소리는 단순히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들의 생활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었으니까요. 1차 도달점에 다다른 것인데, 그 길을 피사체와 함께 해 기뻤죠. 사실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영화개봉은 축하받을 일이긴 하죠. 그러나 그럴 것도 없는 것이 내게 있어 개봉은 다른 영화의 경우와 의미가 많이 다르거든요. 다큐를 만들어 개봉하기엔 워낙 토양이 척박해서 그 동안 쌓은 빚에... 또 많은 것들... 하지만 뺏길 건 없다고 생각해요. 그 동안 그랬던 것처럼 빚은 갚아나가면 되고, 해 왔던 일이니 새삼 두려울 건 없는 거죠. 이런 영화들에게 개봉은 투쟁이거든요. 낮은 목소리는 개봉 할 수 있었지만, 다른 다큐들은 아니었으니까. 문화의 확장으로서 그를 위한 데이터로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전편도 그랬고, 대학가나 여성단체 등에서도 많이 상영을 하잖아요. 오히려 극장개봉보다 더 많은 관객을 그런 상영회에서 만나기도 할 텐데, 어느 쪽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는지?

"다큐멘터리 영화가 대중과 만나는 채널은 극장개봉과 상영관 만들기 두가지 방법이 있는데, 아무래도 후자 중심이예요. 이 경우 만날 수밖에 없는 사람만 만난다는 단점이 있겠죠. 아, 전에 낮은 목소리 개봉 중에 술 마시고 술 깨려고 극장에 왔던 한 아저씨가 있었어요. 극장 입구에 서있던 우리 스텝들은 그 아저씨를 보고는 '10분만에 나온다' '자느라 못나온다' '제발 코만 골지 마라'하며 웃으며 내기를 했을 정도였죠. 그런데 상영이 끝나고 나서 한참 후에 이 아저씨가 나와 설문지에 소감을 적었는데 "40평생을 살면서 이렇게 남자로 사는 것이 부끄러운 적은 없었다"고 하더라구요. 아마도 이런 것이 극장 개봉의 묘미가 아닐까요?"

데뷰부터 지금까지 독립영화만 지속해 온 변영주 감독의 작업탓에 사람들은 변감독을 보며 한국영화의 판도 변화를 기대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독립영화와 변영주감독을 아예 등식화 시켜 버리는 경우도 있었고, 대개의 경우에는 변영주 감독을 독립영화의 대표주자 쯤으로 이야기 하고 있죠. 그런데 그의 이야기는 달랐습니다.

"한국영화 시장이나 사회를 바꾸고 싶은 건 아니예요. '독립영화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물론 아니고.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과 마주하면 좀 우습다는 생각을 해요. 안 그래요? 상업영화는 별로 없고 독립영화만 있다면 그건 또 얼마나 재미없겠어요. 물론 독립영화는 살아 남아야죠. 상업영화들 사이에 보여주지 못하는 틈새가 있을 거고, 그런 틈새에서 다른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나는 그 틈새를 넓히고 싶을 뿐이고."

그럼 본인이 지금까지 해 온 일의 성과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언론에서는 독립영화와 변영주 감독을 등식화시켜 생각하거나 독립영화의 대표주자라고 보도하기도 하는데.

"낮은 목소리의 개봉은 '이런 영화도 극장에서 상영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을 들게 해 주었어요. 그게 성과 아닐까? 그리고 내가 독립영화의 대표라는 말은 틀렸어요. 우리나라 독립영화계에서 중요한 사람들은 노동자뉴스제작단(이하 노뉴단)과 푸른 영상이라구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들과 다른 것들 사이에서의 가교 역할이죠. 기본적으로 나는 독립영화의 중심이 아니고, 그럴 수도 없지.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금의 역할에 충실하고 싶어요."

어쨌거나 '낮은 목소리' 이후 지금 독립영화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우리나라에는 두 가지 영화가 있거든요. 마치 프로야구와 핸드볼처럼. 프로야구는 인기 좋지만 정작 올림픽 나가 금메달 따오는 건 핸드볼이잖아요. 영화도 그래. 다들 열심히야 만들겠지만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이 따로 있고 밖에 나가 국위선양하고 상 받아 오는 것은 또 다른 영화들이고. 글쎄 이런 식으로만 나가면 모든 건 거품이 아닌가 싶어요. 모든 영화가 함께 발전할 수 있을 때 영화산업이 발전할 수 있을텐데. 현재의 주목도 좋겠지만, 구도가 뒤집힐 순 없지. 독립영화진영에 중요한 것은 자체내의 기획, 배급 시스템을 만들어 정착시키는 거예요. 프로야구와 핸드볼이 같아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죠."

'거품'이라고 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독립영화의 개념이 상당히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어요. 저예산 영화면 모두 독립영화처럼 홍보가 되고 있기도 하고...

"협의의 독립영화는 아마도 독립적으로 제작하고 배급하는 영화를 말하는 것일텐데, 현재는 지적한 것처럼 이것도 저것도 다 독립영화로 불리고 있죠. 영화과 졸업작품이 독립영화입니까? 그건 그냥 졸업작품일 뿐이죠. 진짜 독립영화라면 노뉴단에서 나오는 영화들일 겁니다. 보임은... 글쎄 그 중간에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독립영화는 확장 중에 있어요. 해피엔드의 청년이 했던 것처럼. 기획은 청년에서 배급은 명필름에서. 이런 식이거든. 개인적으로 이제 '독립'이라는 단어의 환상은 빨리 깨는 게 좋다고 봐요. 개별 감독, 개별적 영화팀이 있고, 그들이 방식을 선택할 뿐이지, 독립영화라고 다 좋은 영화라 말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건 '여성영화'라는 말의 경우에도 그렇고."

여성영화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낮은 목소리 연작 시리즈를 보면서 한편에서는 민족영화다, 또 한편에서는 여성영화다라고 말하더군요. 본인이 보기에는 어떤가요? 여성영화? 민족영화? 어느 쪽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으세요?

"어... '여성영화'라는 단어에는 가치판단이 배제되어 있어요. 한 영화에 대한 칭찬은 '좋은 영화' 뿐이죠. 안 그렇습니까? 이상하게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영화가 무슨 칭찬처럼 통용되는데, 생각을 해보세요. 단순히 여성을 소재로 삼거나 그렸다고 그게 칭찬이 됩니까? 뭐, 개인적으로 볼 때 민족영화는 아닌 것 같고... 여성영화라고는 할 수 있을텐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영화는 수용자에게 다층적으로 읽힌다는 점이거든요. 수용자의 부분을 컨트롤 하는 것은 운동가죠. 그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라. 여성영화라고 하면 역사적 의미와 당대적 의미를 각각 가질텐데, 역사적으로 본다면, 마린고리스의 '침묵에 대한 의미'처럼, 마이너리티로서 여성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영화를 여성영화라 할 수 있는 거지. 그러나 당대적 의미는 달라요. 예를 들자면 '터미네이터 2' 같은 거. 이 영화가 한국사회에 개봉할 당시는 인신매매가 횡행하던 시절이었거든. 주인공 린다 해밀턴의 병원 탈출씬을 비롯한 여러 장면이 나올 때 관객석에서 많은 여성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를 하더라는 거죠. 갑갑한 한국사회에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 거예요. 지금 어디 가서 '터미네이터2'를 여성영화라고 말한다면 다들 웃겠지만 개봉당시 한국사회에서는 여성영화로서의 의미를 획득한 거예요. 결국 수용자들이 소화하기 나름이라는 얘기죠."

그렇다면 본인이 관객의 입장으로, 수용자 측면에서 자신의 영화를 평가한다면 어떨까요?

"글쎄, 관객의 입장에서? 일단 민족담론을 배제하려는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이미 나는 감독이고 내 영화를 전적으로 관객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건 불가능해요. 그저 난 페미니스트적 진보적 급진적인 문화를 지향하거든요. 영화라는 종교의 신봉자인 변영주에겐 여성주의적 시선이 담길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영화를 만들면서 '난 여성 영화를 만들거야'하고 시작하는 건 아니죠. 그렇게 생각하고 만드는 건, 좀 우습지 않아요?"

독립영화만 만들어왔고, 상업영화권에서도 성공하기 전까지는 돈벌기 어려운 게 영화판의 사정이고 보면, 사실 지금까지 돈을 벌었다고는 할 수 없을텐데요. 생계의 문제라는 걸 무시할 수도 없는 거구요. 그래서 말인데, 여성이기 때문에 영화를 하기에 더 쉬운 것은 아닌가요? 아무래도 한국사회에선 남자들에게 부양의 의무가 주어지고 여성의 경우엔 그 부양의의무에서 좀 자유롭지 않을까요?

"물론! 당연하죠! 맏아들로 태어났어도 이 길을 갔겠지만, 어려웠을 거라구요. 장산곶매나 푸른 영상에 있을 때 남자 선배들은 정말 어렵게 빙 둘러 영화의 길을 갔어요. 그들이 그렇게 돌아간 길을 나는 다이렉트로 올 수 있었어요. 막내이기에 더욱 편할 수 있었고. 물론 또 한국사회에서 여성에게는 결혼에 대한 부담이 주어지잖아요. 부양쪽은 좀 자유로워도. 일반적이었다면 나 역시 그랬을테지만, 다행히 집에서도 결혼에 대한 요구가 별로 없어요. 우리 부모님들이 트이신 분인 건지... 하여튼, 정말 다행이죠. 한국사회에서는 특히 '가족'의 의미가 강하고 특별하지 않아요? 정말 끔직할 정도로. 인터뷰를 여러 곳에서 하는데, '아, 내가 지금 한국에 있구나, 한국사람과 이야기를 하는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질문이 딱 2가지 있어요. 뭐냐하면, "결혼하셨어요?" 혹은 "결혼 안 하세요"하는 질문이 그 첫 번째고, 다큐멘터리를 이야기하면서 오로지 내 영화로만 한정시키는 거죠. 후자의 경우는 좀 다른 얘기지만, 여하튼 전자의 질문을 받으면서 늘상 느낀 건데, 한국은 '조루증의 나라'가 아닌가 싶어요. 사람을 빨리 늙게 하잖아요. 특히 남자들은 어리고. 늘 챙겨주는 엄마가 있고, 다시 아내가 생기고 해서 남자들이 한없이 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개인은 없고 가족만 있어서, 각각의 개인을 위한 문화는 별로 없어요. 특히 혼자 사는 성인들의 경우는. 20대 초반 중심의 문화는 영 재미가 없죠, 40대는 너무 빨리 늙고 있고. TV를 봐요. 토크쇼는 20대들이 장악해 맨날 말장난 뿐이고, 아침 프로들은 똑같은 내용을 사람만 바꾸어 되풀이하고 있잖아요. '프렌즈'같은 거 봐요. 걔들은 각자의 공간과 향유할 수 있는 문화가 존재한다구요. 그런데서 볼 수 있는, 혼자 사는 성인들을 위한 공간도 무엇도 한국사회에는 없다 그거죠. 그러니 맨 여관방 문화에서 못 벗어나지."(웃음)

확신에 찬 어투로 이야기를 시작한 변영주 감독은 반은 농담처럼 그러나 진지하게 '혼자 사는 사람을 위한 문화'의 필요성에 대해 열변을 토했습니다. 조목조목 예를 들어가며 말하는 그의 말솜씨는 논쟁에서 앞에 앉은 사람을 설득시키기에 상당히 유효하겠다 싶더군요.

맞는 말이예요. 그런데, 그렇다면 무슨 해결책 같은 건 생각하신 적 있으신지?

"그래서 개인적으로 35세까지는 결혼을 안 해야 한다고 봐요. 무슨 서약서를 쓰든 캠페인을 하든 해서 결혼을 안하고 혼자 살게 하는 거야. 그렇게 해서 개인, 즉 성장한 성인들만의 문화를 만드는 거지. 정말 지겹잖아요. 대체 오전 10시에 집에 사람이 있을 거라고 전제하고 방송을 하는 근거는 뭐냐구. 난 항상 그거 못 들어서 행사에 참여 못하니 벌금내고 그러는데, 얼마나 억울하다구요. 매달 저녁 반상회는 또 왜 해요? 아줌마들이 모여서 얘기해 봐야 뭐 수다밖에 더 있겠어요? 동네 얘기, 행정이나 관리 문제는 대표를 뽑아서 해결하면 되지않나? 혼자 사는 사람들은 대체 어쩌라는 건지, 참. 벌금이야 내라니까 내긴 하지만 억울하기 그지없어요. 아, 짜증나는 거 또 있다! 경로석!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지만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에 난 경로석에 절대 앉지 않아요. 일반석에 앉는데, 피곤하고 힘들어 지친 날도 결국은 일어나야 한다는 거. 경로석에 자리가 비어있어도 와서 툭툭 무릎을 치는 할아버지도 있더라구. 지하철을 탄다는 건 몸을 어느 정도 운신할 수 있다는 건데, 그 바로 옆 경로석까지 가는 게 힘들어서 날 일으킨다는 건 이해가 안 가잖아요. 아, 더 짜증나는 건 그런 할아버지 옆에서 큰소리로 떠들며 사람 무안주려 하는 아저씨들. 자신은 안 일어나면서, 왜 나만 갖구그래. 젊은 게 죄지 싶기도 하고, 간혹 화가 나서 '오늘 사고쳐 봐'하다가도 비겁하기 때문에, 참죠." (웃음)

기본적으로 한국의 가족제도를 반대하는 것 같은데, '낮은 목소리'의 할머니들을 보면 오히려 그들 나름대로 가족을 구성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는데...

"아, 그런 가족이라면 권장해야죠. 그러나 한국사회에서의 가족이라는 의미는 단순히 그런 의미의 가족이 아니잖아요. 가족이라는 제도자체가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었으니까."

'낮은 목소리2'의 경우엔 강덕경 할머니의 죽음을 너무 담담하게 담아 냈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요.

"모두 좀 애들 같아요. 슬픔은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우린 영화에 그분의 영혼을 담고 싶었던 거죠. 그저 슬프다고 우는 것은 그분을 위한 게 아니라구. 이건 쉽게 찍은 영화가 아니예요. '낮은 목소리2'의 그부분 찍을 때 연출부랑 스탭 중에 촬영 중에 울거나 하면 전부 쫓아내 버렸어요. '차라리 밖에 나가 울어라'하고. 강덕경 할머니 당신께서도 자신의 죽음을 고스란히 담아주길 원하셨었고. 그래서 촬영 중엔 모두 숨 죽이고 있다가 '컷' 소리만 떨어지면 화장실로 비상계단으로 나가 울어대는 통에 병원 분위기가 상당히 음산해졌었죠. 귀신나올 것 같다면서 다들... 하긴, 병원 복도랑 비상계단이 얼마나 음침해. 그런데서 곡소리가 나니 그런 말도 나올 만 했죠. (웃다가) 게다가 사실 난 노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없기 때문에 별로 친근감을 느껴본 적이 없고. 노인과 직접적으로 만난 것은 낮은 목소리의 할머니들이 처음이었거든요. 내가 할머니들과 함께 보낸 7년은 영화를 찍기 위한 거였지, 다른 건 아니었어요. 이렇게 말하면 오해도 생기겠지만, 가장 정확한 표현이죠. 그리고 그걸 잊으면 자가당착에 빠지고 말아요. A에 관한 영화를 찍을 때는 A가 가장 중요한 겁니다. 내가 이제 다른 영화를 찍는다면, 할머니들과의 친분관계는 일 다음이 되는 거죠. 그렇다고 종군 위안부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더니 입장을 뒤집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할 수는 없어요. 어쩔 수 없어요. 섭섭해하는 할머니들도 있지만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이셨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거니까."

'숨결'에서는 직접 인터뷰어로 나서지 않고 할머니들끼리 인터뷰를 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어요?

"다큐 찍는 사람은 위안부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없어요. 미국의 사진작가 한 사람은 다이어트 하는 사람을 찍기 위해서 직접 그들과 같이 생활을 하고 거식증이 걸렸다는 이야기도 있고, 하여튼 완전히 객관적으로 세상을 본다는 건 말이 안돼요.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다큐는 나레이션이 주가 된 거예요. 그건 가식이죠. 진실이 아니라. 객관적인 척 하는 다큐멘터리는 객관적이지 못해요. 다큐는 거짓을 말하지 않아야죠."

인터뷰어가 할머니였으니 꽤 어려웠겠어요. 낮은 목소리2에서도 할머니들이 자의적으로 판단해 연기를 한 부분이 있었다는 말이 있었는데, '숨결'은 어땠어요? 듣자니 '숨결'은 즉흥연주와 같은 과정이었다고도 하던데?

"'낮은 목소리2'의 경우엔 연기가 아니라 익숙해진 거죠. 그러고 나니 할머니들이 가장 잘 할수 있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무런 연습없이 그냥 상황만 주고 할머니들끼리 얘기하는 걸 담는 거죠. 깜짝 이벤트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실패하면 영화자체를 그냥 엎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전에 했던 100피트 필름모으기 운동도 안 한 거예요. 그것도 일종의 투자인데, 내가 그냥 엎어 버리면 그 투자에 대해서 책임질 수 없으니까. 뭐, 변영주식 즉흥연주라고 하면 그 말도 맞죠. 위험한 상황도 많았어요. 하지만 '숨결'이 가장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나중엔 인터뷰어 맡은 할머니랑 다른 할머니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쟁같은 게 생겨서 서로 카메라에 많이 잡히려고 하기도 하고. 이야기를 주도하려고도 하고."

일전에 한 20대초반 여성대상 잡지에서 한국의 여성영화인을 다루면서 변영주 감독을 언급한 것을 본 적이 있어요. 성공하려면 '남들이 도전하지 않는 것에 도전해라'하면서 소개를 했던데, 그런 평가나 언급은 어떻게 생각해요?

"그래요? 그런 게 났었나? 난 주위의 평가는 신경 안 써요. 이전까지의 내 작품에 만족하긴 하지만, 글쎄, 성공이라는 개념은 잘 모르겠어요."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세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거...?

"일관성, 하려는 이야기가 살아있는가의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데... 개인적으로 나에게 영화는 유희예요. 그렇다고 그게 다라는 것은 아니고.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즐겁기를 바란다는 거죠. 얼마 전에 임권택 감독님의 '춘향뎐'을 봤는데, 좋은 영화더라구. 직업인으로서의 책임감과 작가로서의 실험이 공존하는 영화였어요. 홍상수 감독이나 박광수 감독의 영화도 그래서 좋아하고. 지난해 박광수 감독의 영화 '이재수의 난'의 경우 '불친절한 영화다' 뭐다 하며 악평일색이었는데 그거 참 맘에 안 들었어요. 아니, 대체 뭐가 불친절하다는 거야? 난 그렇게 친절한 영화도 드물더구만. 좋은 영화지. 안 그래요?"

(이 대목에서 기자와 변영주 감독 모두 흥분하여 떠들어대자 보임 사무실의 직원 한 분이 "여기 아무도 '이재수의 난'이 잘 못된 영화라고 하는 사람 없어"라며 우리를 진정시키기도 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스타워즈'예요. 그건 내게 종교니까. 그러고 보니, '스타워즈 에피소드 1'에 대해서도 구구하게 말이 많았는데, 적어도 그 영화에 대해 말하려면 그 이전의 연작 시리즈 3편을 다 보는 노력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예요? 그것두 좋은 영화야." (웃음)

그럼 본인의 영화가 어떤 의미이기를 바라세요? 좋은 영화?

"글쎄요? (웃음) 내 영화는 전복적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계속 소통에 관한 것이 화두일 거예요. '낮은 목소리'에서도 할머니들은 50년간 문을 닫았었는데, 그러다가 세상과 소통하려고 마음을 열었어요. 그것을 함께 할 수 있어 기뻤고."

데뷔 이후 계속 독립적 작업만 해왔는데, 상업영화, 극영화를 해 볼 생각은 없으신지?

"다음 영화는 극영화를 해 볼 예정이예요. 그러니 아마도 상업영화가 되겠죠? 현재 작업 중이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상업영화만 할 거라고는 말 못하죠. 단편 찍다가 상업영화, 극영화 데뷔작 찍고 나면 다시 단편을 안 찍는 경우가 많은데, 난 그거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앞으로도 오고 가면서 일을 할 생각이예요."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다음 작품에 대한 말이 무성하거든요. 극영화가 될 거라는 말은 이미 들었지만... 힌트를 좀 주시죠.

"아... 이거 소문나면 안되는데... (잠시 웃음) 다음 영화는 귀신이야기를 해 볼 생각이거든요. 그렇다고 무섭거나 처연하지는 않고, 그냥 불쌍한 귀신 이야기예요. 몇 십 년간 귀신으로 있지만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귀신은 보이고 놀래켜야 존재의 의미가 있는 건데, 안보이니까 불쌍한 귀신 아닙니까. 그런 귀신이 사람의 눈에 몇 십 년만에 뜨이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뤄보려 하는데... 아직은 뭐 몰라요. 어떻게 될지."

할말은 많았지만, 다음 인터뷰 일정이 잡혀 있다는 변영주 감독을 계속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의 다음 영화를 기대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지만, 달변과 유쾌한 독설로 채워졌던 한시간 반 동안 우리는 그의 자신감과 일에 대한 확신, 사랑을 보았습니다. '어째서 한국영화 토론프로그램에서는 변영주 감독을 패널로 부르지 않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침없는 달변에 유쾌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독설들은 담담하게 주장을 전하던 영화들이 과연 어떻게 나올 수 있었을까를 의심하게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그러한 씩씩함이 7년간 하나의 작업을 그침없이 할 수 있는 토대였을 거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더군요. 어쨌거나 앞으로 당분간은 그를 더 주목해야겠습니다. 그의 다음 영화를 보면 또 다른 이야기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와의 만남은 '변/영/주'라는 이름 석자가 쉽게 잊혀질 만한 것이 아니라는 무게감을 확인시켜 주는 자리였습니다. 그의 귀신 이야기를 기대해 봅니다.

취재: 오상환, 이지선 기자

3 )
kpop20
기사 잘 읽었어요   
2007-05-26 00:00
soaring2
앞으로 많은 활동 기대할께요^^   
2005-02-13 23:07
cko27
변영수 감독님 최근 근황이 궁금하네요.   
2005-02-06 18:0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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