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흉악한 범행 현장을 초반부터 방치해버리는 영화의 풍경과 마케팅 단계에서 살인마의 몽타주를 공개한 <우리동네>의 관심사는 ‘누구’ 혹은 ‘어떻게’와는 멀어 보인다. 결국 장르적 특성상 그 물음표의 빈자리를 메우는 건 ‘왜’다. 인물의 관계 속에 놓인 어떤 사연, 그리고 그로부터 잉태된 트라우마가 뒤틀어버린 인간의 내면. 마치 그것은 흑백의 양면처럼 급속히 표정을 바꾸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선천적 기질을 추적하는 물음과도 같다.
표면적인 관계 속에 놓인 진실의 표정. <우리동네>는 장르적 외피 속에 회심의 단도를 품었다. 세 인물의 관계는 과거의 사연을 통해 은연 중의 관계를 드러낸다. 또한 그 관계 속에 담긴 인물의 진실은 관계의 전형성을 입체적인 도면으로 발전시킨다. 우발적인 행위에서 빚어진 예기치 않은 사연은 자의식의 분노를 이기지 못한 잔인한 행위로 뻗어나가고 이는 타인의 우발적 행위를 모방하는 변태적 속성의 쾌감으로 변질되어 인물의 자의식에 봉인된다. 잔혹한 살인의 추억은 그렇게 죄의식을 덜어낸 채 결과적 행위만을 전이시키며 살의적 탐닉으로 가득 찬 욕망이란 괴물을 잉태한다.
<우리동네>는 스릴러의 특별한 계보이거나 스릴러의 문법에서 벗어난 별종이다. 그것은 독특하거나 혹은 어색하거나란 식의 이분법적 감상을 부를 빌미가 충분하다. 후더닛 구조의 추적을 배제한 대신 외부적으로 단선적으로 묘사된 인물의 구조에 담긴 내면적 사연으로 인물의 입체적 도면을 습득한 <우리동네>는 그 복잡한 심리적 관계를 통해 ‘왜?’라는 공백을 먼저 채워 넣은 뒤, 그 물음표의 파장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결말을 향해 서서히 접근한다. 이 과정에서 발견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스릴러적 본능이 아니라 원죄에 대한 책임과 죄의식과 무관하게 전이되고 자라난 살인의 계보, 즉 어떤 현상에 대한 이성적 물음이다.
저마다의 트라우마를 가진 두 인물이 제 각각의 사연을 통해 드러낸 진심이 맞닥뜨리는 순간의 정서적 공황감, 그리고 그 원죄의 교합으로부터 잉태된 돌연변이적 본능. 그 기묘한 삼각관계는 결국 우리동네라는 공간의 황폐한 인심과 엉키며 적막한 현실의 상을 환기시킨다. 죄의 결과적 행보보다도 죄를 잉태하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물음이 명시된다. 세월이 지나도 이렇게 변하지 않는 우리동네는 살인마가 살아도, 여인의 시체가 내걸려도 변하지 않고 이기적이고 무관심하다. 흉흉해진 동네의 사정 속에서도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기 전까지 땅값이 떨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인심의 표정은 재신과 경주, 효이의 옛 사연과 별다를 바가 없다. 안온한 일상의 그릇이 되는 여유로운 전경 속에 담긴 삭막한 군상의 내면은 마치 <우리동네>의 진정한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가늠하게 한다. 살인도 방관도 모두 다 그 거리의 표정이다.
물론 어떤 회심을 위해 장르적 그릇을 마련했다 하더라도 종종 그에 대한 치밀한 접근이 차단된듯한 인상을 남기는 몇몇 부분은 아쉽다. 구체적으로 극의 말미에 독자적 잠입을 꾀하는 재신의 무모한 행위는 할리우드 장르 영화적 클리셰를 잘못 적용한 사례처럼 느껴진다. 인물의 관계를 엮어내는 심리적 조합과 그를 통해 발생되는 드라마틱한 사건 배열은 독자적인 장르의 항로를 개척하는 성과로 느껴지지만 과잉과 절제를 오가는 호흡의 배합은 종종 기본적인 장르적 쾌감을 반감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 배우의 불꽃 튀는 열연 만큼은 영화적 결핍을 메우고 추가된 의도를 탄탄하게 밀고 나가는 든든한 밑그림이자 배경이 된다. 특히나 류덕환은 연기 자체만으로 소름을 돋게 만든다.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합니다. 극 중 오만석의 뛰어난 모창으로 불려지기도 하는 이문세의 노랫말은 <우리동네>의 핵심적 뉘앙스처럼 들린다. 스쳐가는 군상들로 이뤄진 삭막한 세태의 지정학적 표정. 무관심하게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로 채워진 동네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란 수식어를 달고 있다. 그리고 가식적인 미소로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뒤편엔 개인주의적 안온함에 물든 이기주의적 배타성이 존재하며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익힌 무관심의 영역은 때론 무시무시한 살의의 잉태조차도 방관한다. 결국 그의 본심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할 때 안이한 풍경은 끔찍한 살의를 고스란히 품어야 한다. 나는 우리동네를 알아도 우리를 기억 못한다. 그것이 오늘날 이 거리의 풍경이 가린 흉악한 진실이다.
2007년 11월 22일 목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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