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핑퐁>으로 화려한 데뷔를 치르고, 그 후 <애플시드>(04)의 프로듀서을 거쳐, 본작 <벡실>의 풀CG로 실사보다 더 리얼한 애니메이션의 미지의 영역을 개척한 소리 후미히코 감독. 한편, 세계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주목하는 계기가 된 한 사람으로 일본과 미국의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드디어 2006년 <철콘 근크리트>을 통해 감독 데뷔한 마이클 앨리아스. CG업계 출신의 감독으로 더불어 마츠모토 타이요 만화를 원작으로 영화를 찍었다는 공통점뿐만 아니라 두 사람은 매우 오래도록 교유 관계를 형성하며 영화를 통해 뜨거운 열정을 나누는 우정을 다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 누구도 알지 못한 비밀이 최초로 공개되는 귀중한 대담이 <벡실>에서 현실화 됐다!
두 사람은 이전부터 사이가 좋았다고 들었어요. 언제, 어떻게 서로 알게 되셨나요?
소리 후미히코 감독(이하 소리) 굉장히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 왔어요. 한 10년 됐나?
마이클 앨리어스(이하 마이클) 그렇죠. 그 정도 된 것 같네요. 저는 SOFTIMAGE라는 CG 제작소프트를 만드는 회사에 있었는데, 거기서 입사했던 때가 1994년쯤이었고… 바로 일본으로 와서 여러 회사를 거친 상황이었어요. 그 중 TBS에 소리 감독이 있었어요
그럼, 장래 영화감독으로 이렇게 만나게 될 거라고는…
소리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마이클 기회가 없었지만 늘 가까운 곳에 있었어요. 원작으로 영화를 찍은 <핑퐁>, <철콘 근크리트>도 그렇고..
소리 원작자 마츠모코 타이요와 마이클이 굉장히 친한 사이라는 건 저도 나중에 듣고 많이 놀랐었죠.
마이클 역시, 기술자라는 동지 의식이 오래도록 들었어요. 미국 전시회 시그래프에서 우연히 딱 만나기도 했구요.
소리 미국에 USC 대학 부로 유학하고 있을 때, 연구과제가 ‘일본 애니메이션 CG 작업’이라는 것이었어요. 당시는 입체 3D CG를 애니메이션처럼 표현하는 기법이 없었어요. 그 사이에 마이클이 그것을 개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구요. 툰쉐이더(Toon shader)이라고, 3D를 2D로 만드는 컴퓨터 소프트입니다.
마이클 처음으로 도쿄에서 만났을 때도 그렇고, 소리 감독은 LA에 있었고, 사실은 굉장히 가까운 곳에서 개발하고 있었어요. 아마 작업장에서 걸어서 3분 정도 되는 거리에요.
소리 맞아요. 당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 일을 하고 있었고, 디지털 도메인에 있었을 때에요. 알고 있었나?
마이클 디지털도메인에 자주 놀러 갔었는데, 소리 감독이 거기 있었다는 사실은 일본에 돌아와서 알았습니다.
본래부터 이러한 기술이 영화 등에 사용될 거라는걸 눈치 채고 계셨나요?
마이클 아뇨. 당시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어요. 프로그래밍도 독학했고, 당시 컴퓨터 수준도 낮았고, 왠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이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기본적으로 여러 가지 실험이 이루어진 다음에 실현된 거에요. 스스로 게임보다, 영상, 영화 쪽으로 흥미가 있었어요.
소리 그 당시에는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CG가 크게 사용되기 시작했어요. <터미네이터 2>가 91년, <쥬라기 공원>이 93년… 저도 그런 방향으로 공부에 전념했었죠.
그러나 서로를 크리에이터로서 알게 된 것은 그 후의 일이었군요.
소리 이 사람을 엔지니어마인드를 가진 우수한 기술자로 생각했었죠.
마이클 서로가 말이죠. 소리 감독이 영화 감독을 목표로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어요. 친구와 함께 <핑퐁> 시사회를 보러 갔었는데 이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이 갔었어요. 처음에 <핑퐁>을 영화를 찍고 있다는 말도 못 들었을 뿐더러, 감독이 소리 감독이이라는 걸 알았을 때의 그 충격이란… “어? 정말? 진짜?” 이런 기분이었어요.
소리 정말 그때 오랜만에 다시 만나서 영화감상도 들려 주었구요. <철콘 근크리트> 작업을 하고 있다는 소식도 듣고 “이 사람이 드디어 감독으로 진출하는구나”란 생각에 왠지 모를 동지감을 느꼈습니다.
당시에 이러한 영화가 좋았다던가, 이런 감독이 대단하다라던가 그런 이야기는 없었겠군요.
마이클 전혀 없었어요 (웃음)
이번 <벡실>에는 소리 감독이 LA에 살고 있을 때 느꼈던 것을 작품으로 만들었다고 들었어요
소리 LA에서는 모두가 차로 이동해요. 세계 어딜 찾아봐도 그 정도로 가족 전원 모두가 여기저기 분산되어 차로 나뉘어지는 느낌은 놀라웠어요. 회사와 집을 상자(=택시)로 이동하는 것만 봐도,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곳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마이클 쇼핑을 하러 가도, 세탁소를 가더라도 금방 가까운 거리도 차로 이동하죠. 역시 직접 거리를 걷고 활보하는 생활 같은 건 없어요.
소리 그런 의미에서 가까운 미래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뭐랄까, 대화가 없어도 괜찮다고나 할까. 외국인들은 영어로 떠들지 않아도 생활할 수 있어요. 그것은 흥미로운 일이면서도 무서운 부분이기도 하고, 지나친 생각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일본도 점점 그런 식으로 변해가는 건 아닐까 싶었어요. <벡실>의 발상 시점은 거기부터 시작됐고 처음 <벡실>에서 시작한 시퀀스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사기도 했어요.
마이클 반대로 도쿄는 거리에서의 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어느 길을 걷다가 우연히 아는 사람을 딱 마주치는 일도 빈번하고, 사람과 직접 접하는 것이 싫은 일이 아니죠. LA에 태어나 자란 저로서는 처음 여기 왔을 때 그러한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끼곤 했어요.
반대로 마이클 감독은 미국인이지만 굉장히 일본적인 경치와 정서를 가진 다카라마치를 배경으로 <철콘 근크리트>만들었는데요, 소리 감독 입장에서 봤을 때, 거기에 역시 외국인으로서의 시점 같은 것이 느껴지던가요?
소리 그렇죠. 마이크가 외국인으로서 동경해오던 부분이라 할 만한 것이 잘 드러나더군요. 다카라마치의 분위기가 굉장히 친절하면서도 정중하게 묘사되어 있었어요. 분명 마이클이 일본에 와서 외국인으로 처음 접했을 당시, 소중하게 느꼈거나 재미있다고 느꼈던 부분이, 거기에 집약되어 있어 잘 느껴졌어요. 마을이 주인공이 되어 가는 것도 기분 좋았구요.
마이클 그러한 것들을 모두 담아내야 된다는 필연성을 느꼈어요.
소리 버스 체인지씬이 있는데, 그것은 일본인에게는 있을 수 없는 장면이어서 머리를 한대 맞은 듯 굉장하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벡실>은 완전한 3D라서 오버스러운 부분이 없고, 사진이라 생각하고 찍었어요. 반면 <철콘 근크리트>는 물론 화학작용을 중요시 했겠지만, 그림 자체만으로 굉장히 즐길 거리가 많이 들어 있어요. 그것만으로도 부러웠어요.
마이클 그러나 사실은 그 버스 씬은 각본에 없어서 처음에는 없애려고 했었어요.
소리 그렇구나(웃음)
마이클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아침과 밤을 뜻하는 형제로 쿠로와 시로의 각각의 마을을 보여주려는 의도였습니다. 작화 감독님이 굉장히 치밀해서 처음 1분 정도 예정되었던 것이 점점 길어져 버렸어요. 처음에는 여기서 힘이 너무 들어가버리면 안되지 않을까 라는 의문도 들었지만, 지금은 해서 잘됐다 싶어요. 만들어서 즐거웠고 저도 좋아하는 장면이구요.
소리 역시…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마이클에 의해 일본 애니메이션과 전혀 다른 것이 나올 수 있었던 거구나 싶어요.
마이클 지금까지 보고 좋아했던 실사영화에서의 표현을 애니메이션에서 해보고 싶었어요. <철콘 근크리트>는 좋은 스탭들에게 둘러싸여 그것을 실현해볼 수 있었어요. 아마 이러한 감상이 내가 CG로 만들었거나, 소리감독이 손으로 그린 애니메이션을 한다고 하더라도, 나올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을까요. 예를 들어 <벡실>의 카메라 워크라 한다면 헬리콥터에서 찍은 신이거나, 캐릭터를 쫓아가며 보여주는 거나 거기에 있는 무엇인가를 목격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두근두근 거렸어요. 이런 것을 할 수 있어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서로의 작품을 보고 이 부분은 좋았거나 부러웠다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소리 마이클과 함께 작업을 한 사람들은 베테랑들이에요, 특히 <철콘 근크리트>의 미술 감독은 굉장한 스탭입니다. 게다가 그가 그린 그림은 세계가 노릴 만큼 대단하죠. 거기 그대로 반영할 수 있었던 2D 애니메이션은 정말 부러웠어요.
마이클 그렇게 말한다면 <벡실>의 미술 감독 역시 <마인드게임>(04)에서도 훌륭한 작품의 미술을 그린 분이잖아요. 단지, CG와 디자인과 센스가 반영되었다고 해도 그런 그림 자체가 나오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소리 원래 그림의 유연함과 치밀함은 다른 형태에서 음미할 수 있으니까요.. 이번 <벡실>에는 직접 3D 디자인한 부분이 더 늘었어요. 특히 캐릭터 부분에서요.
마이클 아 그렇군요. 종이 위에 그려도 입체적으로 느껴지지 않은 것들이 많으니까요.
소리_ 여러 가지 각도에서 성립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죠. 특히 얼굴은 일러스트그림에서 그대로 차용한다고 할 때, 조금이라도 카메라가 움직이면 끝장이에요.
마이클은 소리 감독의 작품이 어땠나요?
마이클 우선 <핑퐁>을 좋아해요. 그 원작을 택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벡실>은 무엇보다도 저그가 놀라웠어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박력! 마리아와 벡실이 클라이막스에서 저그 아래를 통과하며 위를 올려다보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 굉장했어요. 아 저런 액션의 긴장감 넘치는 부분, 파이널 스테이지라고 할까, 최후의 장면에서 대량의 저그가 덮치면서 뒤쫓아오는 장면은… 내가 영화관에 있다는 것도 잊을 만큼 실감났어요. 이제까지 영화 보면서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데 말이에요. 정말 굉장한 감격이었습니다. 재미있었어요.
음악은 어땠어요? <벡실>도 <철콘 근크리트>도 해외에서 댄스 뮤지션 아티스트를 기용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네요
마이클 그닥 화제라고 말하기는 못하지만, 어쨌든 Dead can dance가 참여했다는 것은 칭찬하고 싶어요(웃음). 대학 시절부터 좋아했어요. 제 작품에도 사용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그런데 그 곡과 어울리는 영상은 좀처럼 어렵다고나 할까. 나중에 하늘에서 황폐화된 마을로 카메라가 들어가는 장면에 나온 그 음악이 참 의외여서 좋았어요. 무척이나 좋았어요. 누구의 곡인지 모르겠지만요.
소리 그건 M.I.A라는 가수에요. 비범하게 인상적인 아티스트에요. <벡실>의 경우, 서비스 정신을 갖추자는 의지로 시작했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과 함께 활기차게 해보고 싶었어요.
마이클 한 사람의 작곡가에게 맡길 생각은 못했나요? 아 그러고 보니 <핑퐁>도 같은 접근이었네요.
소리 그렇지요. <벡실>처럼 오리지널 작품에 지명도도 없는 작품이라서 축제처럼 화려하게 꾸며보고 싶은 것도 있었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기분도 있었어요.
마이클 사실은 <핑퐁>도 원작만 읽었을 때는 꽤 어둡다는 이미지였는데요. 그것을 영화로 보니까 뭐라고 해야 할까, 건들건들거리는 것 같은 기분 좋은 리듬감이 느껴졌어요. 그런 느낌은 음악에 의지한 부분도 컸다고 생각해요. 이번에도 여러 가지 장르가 뒤섞여 좋은 이미지를 만드는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어요.
소리 스토리와 영상으로 재미있다는 느낌이 없는 부분도 음악으로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어요. 반대로 <철콘 근크리트>는 음악에서 통일감이 느껴지는 반면 분위기는 <핑퐁>과 통하더군요. 반대로 영상은 폭력적이구요.
마이클 그렇죠. 내용이 너무 풍부해서 설명 없어도 앞으로 전진해가는 영화가 돼버렸죠. 음악으로 캐릭터가 이런 녀석이라던가, 이건 앞서 같은 녀석이라든가 설명해주는 것 같아요. 또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슥-하고 관객의 귀를 기울이게 하는 힘을 음악에 실어줬죠.
소리 음악을 맡은 Plaid와는 꽤 자주 만나며 이야기를 나눴나요?
마이클 그렇죠. 굉장히 빨리 초기 단계부터 참가해서, 우선 원작을 읽거나 배경이나 캐릭터를 보거나 했죠.
소리 우와 대단하네. 미팅은 런던에서?
마이클 처음에는 그랬어요. 그 뒤에 동경으로 오기도 하고. 결국 그들과 2년을 계속 함께 하면서 일을 했어요. 그러니까 그림이 완성되기 전부터 음악은 조금씩 만들어져 가고 있어서, 보통과 반대의 과정을 거쳤어요. 그림이 어느 정도 완성되고 최종적으로 이러한 영상이 될 것 같다는 설명도 없이 영상 없는 부분이 있을 지라도 음악은 만들어져 있어 작업하기 수월했어요. <벡실>은 전부 영상이 만들어진 다음에 음악을 의뢰했나요?
소리 러프 영상 단계부터 시작했어요. 가능하면 해외로 보내서 음악을 붙여 반대로 받는 작업을 했어요.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영상과 결합하여 음악을 만들어 받았어요.
마이클 그러니까 피트감(fit)이 있다는 거네요. (잘 맞아떨어졌다는 의미인 듯)
소리 그리고 이러한 댄스 뮤직계의 아티스트로서 더 감상적으로 되기 쉬운 사람들에게 감정 에 호소하는 부분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굉장히 충실하게 감정을 이입해서 각본을 읽어 놀랬어요.
마이클 저도 음악을 부탁했을 때, 그것을 가장 걱정했어요. 영상과 결합해서 감정적인 표현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 못했고. 단순히 기분상 음악을 만드는 건지, 기술을 갖고 작업하고 있는 건지 감이 안 오더라구요. 그런데 의외로 제대로 하고 있더군요.(웃음)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기대되는 점을 한마디씩 부탁 드립니다
마이클 짧은 단편도 좋으니까 꼭 손으로 그린 애니메이션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관여해온 실사와 CG와는 전혀 작업도 다르고, 그림을 그려 캐릭터를 움직이거나, 배경을 만드는 작업에도 전혀 손을 쓰지 않은 세계이니까 순수하게 연출만으로 할 수 있잖아요. 그것을 소리감독이 그림을 그려 만든다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나중에 소리감독이 마츠모토 타이요씨 원작으로 다시 한번 만들면 좋겠어요.
소리 저는 마이클이 미국인이니까 가령, 헐리우드에서 마이클을 감독으로 해서 일본애니메이션을 만들게 하는 것을 보고 싶어요. 그게 손으로 그린 것만 아니라 CG 애니메이션도 좋겠구요. 역시 일본 감독과 헐리우드는 그다지 잘 맞는 상성(相性)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역시 언어의 장벽도 있고. 마이클은 이제 일본인의 마인드를 갖고 있으니까 일본 스탭들을 잘 모아서, 헐리우드 프로듀서와 제대로 해보면 좋겠어요. 두 개의 문화가 잘 들어 맞는다면, 이걸 기회 삼아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거라 기대됩니다.
인터뷰제공_(주)프리미어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