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몰랐을까?
제목이 너무 길다 싶을 때부터 눈치챘어야 했는데... 줄리엣 비노쉬, 다니엘 오떼이유란 이름을 보고선 짐작했어야 했는데... 깜박 놓쳐버렸다.
이 영화...악명 높은 프랑스 영화다...<이런 그래도 가끔가다 재미있는 프랑스 영화에게 실례의 말씀>
장황한 설명대신 한마디만 던져야겠다. 이 영화 지루하다..
시사회에 같이 간 친구는 영화관 앞에서 계속 되묻는다. "영화제목이 뭐야?" 야! 그렇게 말해줘도 못 외우겠냐?? [1850 길로틴 트래지디] 어쩌면 그렇게 감쪽같이 몰랐을 수 있을까? 길로틴이라면 프랑스 혁명을 뜨겁게 달궜던 단두대인데 나는 어리석게도 깨닫지 못했다. 단두대라는 자막이 뜨기 전 까지 길로틴을 그저 잘생긴 남자 이름이려니 상상하고 있었다. 자 그러니 친구여 어서 나의 머리를 잘라라...
이런 실수는 이미 예정된 미래였는지도 모른다. 원래 영화 보러 갈 때 두 눈만 번쩍 뜨고 가는 나이기 때문에 이런 어리석음을 범한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조금이라도 내용을 알고 보는 것은 얼마나 나의 상상력을 좀 먹는 일인가? 한편의 영화마다 모험을 걸어보는 일도 즐겁운 일이다. 가끔 이런 영화에 호되게 걸려 친구의 쇠꼬챙이에 담금질도 당하지만 그러나 우연히 좋은 영화를 발견하는 유레카의 순간은 얼마나 감동인지 다들 짐작할 것이다.
정말 길로틴이 남자 이름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초반에 이 영화가 [인디안 썸머]같은 살인자와 군인 부인간의 사랑 영화일거라고 생각했다. 과연 그도 그렇다. 그 둘은 처음 만난 순간 왜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는지? 살인자 "닐(에밀 쿠스트리차)"이 어떤 과부와 혼외정사를 가질때 "라 부인(줄리엣 비노쉬)"은 왜 얼굴을 붉혔는지? 조용히 한글 공부 잘 하다가 왜 서로의 손가락은 맞대고 수상한 눈빛은 쏘아댔는지? 나만 오해한 걸까?
처음에는 이 영화가 [피아노]인가 싶었다. 교양있는 라 부인과 원초적 닐이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는 내용이 아닐까 짐작했었는데 아니다. 이 영화는 어설픈 휴머니즘을 담고있는 국민계몽 영화이다. 닐은 어느 날 밤,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늙은 영감을 난도질한다. 그가 뚱뚱한지 덩치인지 얼마나 뚱뚱한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조금은 엽기적인 살인이다. 닐은 이러한 죄로 사형이 언도되지만 조그만 섬에 길로틴(단두대)은 존재하지 않고 그의 형은 잠시 중단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대위의 아내인 "라 부인"은 살인자 닐에게 관심을 갖는다. 남편이 총독에게 혼나든지 말든지 지역의 유지들에게 홀대를 받든지 말든지 개의치 않고 닐을 감싸기에 여념이 없다. 남편인 대위도 철없는 부인의 행동을 나무라지 않고 내버려둔다. 라 부인의 교육아래 선행을 쌓아가던 닐은 살인마라 불리며 돌팔매질 하던 마을사람들에게 용서를 받고 신임마저 얻게 된다. 게다가 과부와 눈이 맞아 결혼까지 하게 된다. 라 부인과 남편은 이러한 닐의 사면을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에 닐은 사형당하고 만다.
아무튼 이 영화는 한 살인자가 교양있는 부부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악인에서 선인으로 바뀌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정의라는 냉혹한 이름으로 심판되는 법의 의미를 묻고있다. 사형이 꼭 이루어져야 했는지 법의 냉정함을 비난하고 있다. 아아... 이런 거창한 말로 영화를 설명하려니 벨이 꼬인다. 그래도 감독이 충분히 표현해 내지 못한 것뿐이지 아마도 처음 의도는 그랬었으리라. 하고 싶은 말을 전하지도 못하고 이 영화는 관객에게 실망만을 안긴채 끝을 맺는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을 기억한다. 가슴이 시큰할 정도로 절망에 빠진 한 연인을 기억한다. 아마도 당신도 기억하겠지. 파리의 다리에서 서로의 절망을 안아 감싸던 그들을 말이다. 이 영화의 감독이 바로 [걸 온 더 브릿지]를 만든 그 사람이다. 정말 깜짝 놀랐다. 어쩌면 그토록 세련된 감각의 영화작법을 구사하는 감독이 이런 질척한 영화를 만들었는지 정말 인터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가끔은 이렇게 허방다리도 짚는 법인가 보다.
영화보는 내내 몸이 꼬여 혼났다. 아마도 같이 본 모든 사람들이 그랬으리라. 누군가 나가면서 한마디한다. "한시간 반밖에 안해서 다행이다." 그래요. 정말 다행이죠. 그래도 빨리 끝나서... 이렇게 재미없고 지루한 영화가 길었어봐요 우리 모두 나가 쓰러졌을 겁니다.
전작은 참 괜찮은 영화였는데 도대체 감독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이렇게 엉성한 내용과 어설픈 구성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이끌어 내려하다니 비싸 보이는 척 하는 싸구려 영화에 바보취급을 당한 느낌이다. 왜 [걸 온 더 브릿지]같은 멋진 영화를 만든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든 것일까? 정말 알 수 없다. 혹시라도 감독의 이름에, 배우의 이름에 혹 해 이 영화를 고를 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건넨다. 믿지 말지어다. "삶과 죽음 사랑과 슬픔의 드라마" 속지 말지어다. "이것은 실화다! 그가 죽어야 한다면, 세상의 사랑도 죽어야 한다!!" 정말 아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