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신의 존재마저 부인하는데 영화 초반 극중 교회집사인 오지선(김남주)이 아들을 잃고 기도하는 모습은 인간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신에게 기대는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개인적 고통에 직면한 그녀가 성경책을 찢으며 십자가 목걸이를 버림으로써 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이야말로 결국 인간의 평온함만이 유지시킨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신의 울타리 안에서 평온하게 살 것 같았던 평범한 가정이 남의 일인 줄만 알았던 범죄를 통해 처절하게 깨지면서 종교의 한계와 현실의 차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동시에 종교를 외면하고 탈진해 버리는 아내와 달리 신을 믿지 않았던 한경배(설경구)가 가장 애타는 순간에 신을 찾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구원’과 ‘용서’ 사이에서 영화는 실화에 가장 가까운 결말, 즉 ‘복수’로 흘러갈 것임을 숨기지 않는다. <살인의 추억>이 미결 사건에 대한 희화적인 유머감각을 담아 만들어졌다면 <그 놈 목소리>는 철저히 객관성에 입각해 회고적으로 영화를 풀어나간다. 실제 사건의 경로와 시간 순서대로 촬영된 영화의 긴장감은 군더더기 없다. 협박 전화를 그대로 삽입한 엔딩부분은 너무나 생소해서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사실 두 시간 내내 스크린을 응시하게 만드는 건 영화가 지닌 재미보다는 실화가 가진 무게감 때문이다. 비극을 담은 영화의 특성상 재미를 따질 순 없지만 유괴란 소재에서 오는 정신적 압박과 긴장감은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건’ 그 이상을 뛰어넘지 못한다. 하지만 아들의 뉴스를 내보내며 울부짖는 설경구의 열연과 실제 검게 피 멍든 가슴을 드러낸 김남주의 모습은 영화가 지닌 슬픔을 배가시킨다. 영화는 관객에게 ‘분노’를 강요한다. 그리고 ‘그놈’을 잡기 위한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한다. 결국 <그놈 목소리>는 15년간 10만 명의 경찰인력이 투입됐어도 잡지 못했던 범인의 실체를 영화로 완성시켜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장 높게 만들었다. 동시에 범인이 범행장소를 다시 찾게 되듯이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 중에 섞여 있을지도 모를 ‘그놈’에게 죽음보다 더한 삶의 무게를 덧씌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다시금 너의 ‘죄’를 기억하고, 결코 잊지 않을 거란 사실을.
2007년 1월 24일 수요일 | 글_이희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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