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슈퍼 히어로의 삶이란 언제나 의롭고 슬기로워서 개인적 고민과 고루한 삶이란 없을 거라고 단정지었던 것 같다. 그들의 사생활이야말로 너무나 극적이고 그 어떤 영화보다 드라마틱한데도 우리는 그 점보다는 우리와 다른 ‘능력’에 초점을 맞춰왔던 것이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다시피 외계에서 온 슈퍼맨의 자아 찾기나 어릴 적 트라우마를 지닌 배트맨 역시 유전자 변이를 겪은 엑스맨과 더불어 그 상처와 외로움을 지구를 구하는 역사적 사명으로 승화시키고 우상화됐다. 슈퍼 영웅들이 지구에서 평범하게 살기 위해 어떤걸 포기해야 하는지 실제로는 어떤 삶을 사는지에 대한 호기심은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이란 영화까지 탄생시켰다.
슈퍼맨조차 무서워한다는 파워를 지닌 'G걸'(G-girl)은 큐레이터란 신분으로 자신을 감추고 지구의 안녕과 세계평화를 지키는 희생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제대로 된 연애 한번 못할 정도로 바쁜 삶에 찌든 상태다. <킬 빌>에서 보여준 강인하고 섹시한 액션이 너무나 강렬해서인지 우마 서먼이 연기하는 슈퍼 영웅인 제니는 가벼운 데이트에도 강박증에 가까운 멘트를 날리고, 운 좋게 연인으로 발전한 뒤에도 남자친구의 회사동료를 질투하느라 뉴욕으로 날아오는 미사일도 모른 체(할 뻔)한다.
게다가 그녀가 평소 꿈꿔왔던 연애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이용한 것들뿐이라 하늘에서도 침대에서도 넘치는 힘을 보이는 제니를 감당해 내기란 쉽지 않다. 물론 평범하고 잔잔한 연애를 경험할 기회가 없었던 그녀를 사랑하기에 평범하기 그지없는 매트(루크 윌슨)의 이해력은 여느 남자와 다를 게 없다. 자신보다 강한 여자에게 (한때) 반했던 남자의 호기심은 금방 식어버린 채 이별통보로 이어진다. 본격적인 재미는 그녀의 복수극이다. 연애에 서툰 슈퍼 히어로의 응징은 철저히 여성의 입장에서, 또 넘치는 파워 면에서 다분히 남성적인 양면을 지닌다. 예고편에서 보여진 상어던지기와 차 던지기는 애교수준.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방법은 ‘사랑’이란 감정을 보는 남녀의 사고방식만큼이나 기괴하다.
<고스트 바스터즈>와 <베토벤>시리즈로 평범한듯하면서도 독특한 상상력을 덧댄 작품을 주로 연출한 이반 라이트먼 감독은 초능력을 지닌 여자주인공을 내세워 한없이 재미있고 유치하기만 한 일반적인 사랑싸움을 SF적으로 풀어내는 발칙함을 선보였다. 영화 후반부 선과 악의 대립이었던 제니와 베드램 교수의 비밀과 매트를 사이에 두고 펼쳐지는 두 여자의 싸움은 결국엔 적에서 친구로, 친구에서 동료로 변해가는 미국식 화해버전으로 마무리된다. 이 영화의 유일한 볼거리는 G걸이 출동할 때마다 보여지는 뉴요커 스타일이다. 단 한번도 겹쳐지지 않는 그녀의 유니폼은 슈퍼영웅의 제복사 마저 뛰어넘었다. 이야기가 아닌 그녀의 패션센스에 눈이 가는 이유는 재미있는 장면은 이미 예고편에서 다 봐버렸기 때문이다.
2006년 8월 17일 목요일 | 글_이희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