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펄’의 선장 잭 스패로우가 극장가에 나타난 2003년, 전세계적으로 한화 7000억 원을 강탈(?)해간 이 뻔뻔한 해적은 순전히 자신의 딸과 함께 볼 영화가 <가위손>밖에 없다는 걸 깨달은 조니 뎁의 선택으로 탄생된 인물이다. “동화에나 나오는 해적이 주인공인 영화를 누가 돈 주고 보겠나?”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는 <캐리비안의 해적 : 블랙펄의 저주>는 평단과 대중의 인기를 독차지했고, 다음해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그렇게 건들거리는 몸짓과 애교 넘치는 히피 풍 선장 ‘잭’은 애꾸눈과 외발로 연상되던 ‘해적’의 이미지를 단박에 바꿔버렸고, 당장이라도 안기고픈 섹시함으로 재 탄생됐다.
두건이 잘 어울리는 잭의 외모가 조니 뎁의 우상 롤링 스톤즈의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드를 모방했다는 건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 하지만 그가 바란 캡틴 잭의 모습은 따로 있었다. “아이들은 물론 냉담한 지식인들도 좋아하는 사람,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 디즈니 캐릭터가 되길 바란다. 아직은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 일이라면 내가 해 볼만 하겠다고 여겼다.”고 회상한다.
부와 명예가 보장되는 인기에 안착하기는 커녕, 동시대 다른 배우들이 메이저에서 <스피드> <가을의 전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찍고 있을 때 짐 자무시, 존 워터스 감독과 함께 인디 영화에 집중해온 조니 뎁은 1990년 팀 버튼 감독의 <가위손>에서 강렬한 매력을 뽐내며 할리우드를 사로 잡는다.
스크린 속의 모습과는 달리 배우 개인의 생활 -폭행사건과 떠들썩한 연애-로 가십란을 채우던 그를 탐탁지 않아했던 영화계는 다시금 러브 콜을 보내고, 그와 상관없이 조니 뎁은 자신만의 확고한 의지로 영화를 선택해 나간다. 괴짜감독으로 유명한 팀 버튼감독의 페르소나로 분해 <에드 우드(1994)>, <슬리피 할로우(1999)>와 최근작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까지 함께한 경험은 그를 변신의 귀재로 칭송 받게 만든다.
작가주의적 컬트 영화에 주로 출연한 전작들과 아이돌 스타에서 문제아로의 과도기를 거친 조니뎁은 할리우드의 전설로 불리는 말론 브랜도와 함께한 <돈 쥬앙(1995)>을 연기하고, 평론가들이 극찬한 <도니 브래스코(1997)>에서 연기력의 대부로 불리는 알 파치노에게 밀리지 않는 FBI 비밀요원 역할을 계기로 베테랑 연기자로 거듭나게 된다. 특히, 1997년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생명을 파는 가장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브레이브>의 감독으로 칸에 초청되기도 한 이색경력은 뮤지션에서 스타로, 또 배우에서 감독으로 거듭나려는 조니뎁의 욕심을 살짝 엿볼 수 있는 행보다.
그런 의미에서 블록버스터급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 블랙펄의 저주>의 성공은 ‘흥행배우’로서의 자리까지 추가시켰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 영화가 큰 예산을 투입한 영화인지도 모르고 출연했다는 사실이다. “촬영이 반쯤이나 끝나고서야 예고편을 보고 ‘이게 이렇게 큰 영화였어?’하고 충격에 빠졌었다. (웃음)그런 면에서 난 너무 순진한 것 같다. 2편 <망자의 함>은, ‘잭’이라는 캐릭터를 이미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찍었기 때문에 작품을 이해하는 눈도 1편 보다는 훨씬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2편은 1편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크다. 극의 구조나 스토리가 촬영하기 훨씬 복잡하기 때문에 잭과 주인공들이 헤쳐나가야 할 위험의 수준도 훨씬 더 높아졌다.”는 그의 말처럼 <캐리비안 해적>시리즈는 부성애와 순진함, 이해력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전편의 주연과 제작, 감독이 3편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은 그들이 괴짜 집시들이나 유랑 서커스단처럼 끈끈한 유대관계로 뭉친 사이라는걸 극명하게 보여준다. “내가 연기한 캐릭터만큼 잭 스패로우를 연기할 대단한 사람들이다. 이제는 대 스타가 된 키이라와 올란도 때문에 변한 게 있냐고 많이들 물어보는데 그들은 여전히 상냥하고, 친절하다. 이 영화를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모두 다시 뭉쳐 비교적 비슷한 상황에서 함께 일해서 무척 즐겁다”는 조니 뎁.
인상적인 아이라인과 특유의 잔머리로 상황을 벗어나는 ‘캡틴 잭’이야 말로 영화를 보기 싫어하고 블록버스터를 싫어하는 평소 그의 성격으로 볼 때 가장 의외의 선택으로 보여진다. 어쩌면 할리우드에서 영원히 아웃사이더로 남을 것 같았던 조니뎁은 ‘블랙 펄’이 캡틴 잭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처럼 ‘연기’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망자의 함’을 찾지 못하면 유령선 ‘플라잉 더치맨’의 선장 데비 존스에게 목숨을 버려야 하는 잭의 운명은 어쩌면 우리가 조니뎁이 영혼을 팔아 만든 영화를 보고 그의 노예가 된 것처럼 가망 없어 보인다. 설사 된다 한들 누가 마다하겠는가. 영혼을 잠식시키는 그의 연기는 충분히 마력적이다. 캡틴 잭의 범상치 않은 외모처럼.
2006년 7월 11일 화요일 | 글_이희승기자
사진 제공_브에나 비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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