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랑설화를 모티브로 한 공포영화 <아랑>은 여러모로 한국인의 정서와 맞아떨어지는 소재와 스타일을 취합해 볼만하게 재구성했다.
어떤 공포영화가 안 그러겠냐만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장면에서 공포를 가속화하는 느낌은 말 그대로 섬뜩하다. <아랑>의 장점은 의례적인 장치들을 적절한 곳에 안배했다는 거에 있다. 신예 안상훈 감독의 연출 솜씨는 특이할 만하지는 않지만 헐거운 곳 없이 무난하게 처리했다는 점에서 높이 살만하다.
정직이 풀린 소영(송윤아)은 잔혹한 살해현장을 바로 배치되고 거기서 신참형사 현기(이동욱)을 만나 파트너가 된다. 단순 원한살인으로 사건의 초점을 맞추던 소영과 현기는 피해자의 주변인물들이 하나둘 비슷한 살해수법으로 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고 직감적으로 이 사건에는 뭔가 다른 사연이 있음을 느낀다.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사건은 진행되고 그 와중에 소영은 10년 전 죽은 한 소녀의 영혼을 찾아 나선다.
<아랑>에선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사랑받고 그 사랑 때문에 처참하게 짓밟히는 소녀가 나온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에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억압 혹은 핍박받는 존재였다. 문화가 발달하고 복잡해지면서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생기는 이러한 긴장관계는 좀 더 다변화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는 고전적인 여성의 한을 그다지 각색하지 않고 현대로 그대로 옮겨놓는다. 여기서 ‘재해석’이란 단어를 쓰지 않은 것은 사건을 풀어가는 소영이 10년 전 죽은 소녀와 같은 상처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소영의 트라우마는 그녀의 직업이 형사라는 점에서 딱 떨어지는 설정은 아니다. 그러나 원혼의 복수심과 슬픔을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해주는 매개체로서 소영의 상처는 그 기능을 다하고 있다.
고전적인 소재에서 오는 식상함을 소영이 완화하고 있음이다. 그렇다고 <아랑>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여성을 소재로 한 여성영화라고 볼 수는 없다. 카메라의 시점은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으며 딱히 어떤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받지도 못한다. 가장 익숙한 소재에서 공포를 끌어다 관객이 원하는 지점에서 관객이 원하는 만큼 <아랑>은 공포를 선사할 뿐이다.
2006년 6월 21일 수요일 | 글_ 최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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