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일본 동경 내에 있는 록본기 하얏트 호텔에서 <포세이돈>의 감독과 주연배우들의 내한 기자회견과 개별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여름의 길목에 들어선 요즘 전 세계를 물의 스펙터클한 공포로 몰아넣은 <포세이돈>은 볼프강 패터슨 감독의 장기와 주연배우들의 호연으로 인해 사실감을 얻었다는 평을 받은 대작영화다. 덩치가 큰 영화인만큼 영화 홍보도 대규모로 진행하는 <포세이돈>의 주연배우들과의 일본현지 인터뷰를 간단정리하면서 그들에 대한 단상도 짧게나마 적어본다.
☞ 이웃집 누이 같은 소탈함으로 다가온 가장 핫한 스타, 에미 로섬
추잡한 소문들과 위화감 느끼는 화려한 사생활 등 우리가 할리우드 스타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부러움과 경멸이 동시에 있어왔다. 린제이 로한, 패리스 힐튼, 니콜 리치 등 그들은 그 또래의 발랄함을 넘어 돈과 인기의 권력 앞에 자신의 젊음을 소비하는 완전 딴 세계 사람들로만 여겨졌다. <투모로우> <오페라의 유령>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에미 로섬’도 할리우드가 그녀에게 거는 기대만큼 실생활은 할리우드 말괄량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질문과 답변의 행간 사이에 생기는 짧은 침묵도 견딜 수 없었는지 먼저 웃으며 질문을 이끄는 미려한 말솜씨와 경망스럽지 않게 움직이는 손동작에선 그 또래 할리우드 스타에게서 볼 수 없는 순진함마저 묻어난다.
“동남아시아를 강타한 쓰나미 직후 대본을 받았다. 그래서 그런지 감정적으로 동요가 심했다. 정말 영화에서나 일어날 것만 같던 일들이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고 출연을 결심했다. 또한 배가 침몰하는 짧은 시간동안 다양한 인물들의 반응이 현실적이었고 내가 맡은 캐릭터 또한 강한 캐릭터여서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보다 더 많은 것을 영화 안에서 표현하고 싶어 하는 욕심 많은 여자였다. 그런 배우적인 욕심 때문인지 몰라도 에미 로섬은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감독들에게 러브콜을 받고 있는 가장 핫한 스타다. 쉽게 밝히지 못하는 사생활도 마치 오빠 언니에게 말해주는 듯, 다양한 표정으로 말해주는 에미 로섬은 할리우드 배우에게서는 느끼기 어렵던 인간미를 느끼기 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재난영화에 몇 번 출연해서 그런지 겁이 많이 없어졌다. 화성폭발을 소재로 한 재난영화에 출연한다면 정말 무서울 것 같다(하하). 재난영화의 매력은 시련 앞에서 사랑의 본질이 드러난다. 배우로서 그런 부분을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매력적인 일이다”
☞ 여유와 배려심이 남다른 포세이돈의 리더 조쉬 루카스
조쉬 루카스라는 배우가 있다. 조지 루카스 감독이 절대로 아니다. 헷갈리지 않기를 바란다. <스위트 알리바마> <스텔스>에 출연한 이 배우를 한국에서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볼프강 패터슨 감독이 만든 거대 블록버스터 <포세이돈>에서 그는 단연코 주연이었다. 섬세한 얼굴선은 강인함보다 부드러움이 녹아 있지만 상황마다 뛰어난 리더십과 책임감을 느끼는 그의 표정은 블록버스터가 놓치기 쉬운 인간미를 보충해준다.
“딜런은 태생적인 영웅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긍정적으로 변하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도박으로 남의 돈을 먹고 사는 사람으로 등장하지만 배가 뒤집히고 물이 점차 생명을 위협해 올수록 딜런은 좀 더 나은 인간으로 성숙해나간다”
차기작에 관련한 질문에 선뜻 대답을 하는 조쉬 루카스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이야기를 꺼낸다.
“<누가 다니엘 펄을 죽였는가?>라는 영화를 올 가을쯤부터 촬영한다. 나는 거기서 기자로 나온다. 그의 죽음을 취재하면서 아주 위험하고 섹시한 일에 빠져든다.”
‘위험하고 섹시한 일’이라고 차기작의 분위기와 내용을 암시하는 그의 표현력은 왠지 남다른 배우로 그를 기억하게 만든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통역사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조쉬 루카스에게서 한국배우에게는 쉽게 보지 못한 상대에 대한 배려와 여유를 본 것만 같아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아~ 일본까지 와서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아마 이건 질투일 거다. 영어를 잘했다면 조쉬 루카스가 본 기자에게 “땡큐~”라고 했을 텐데, 아쉽다. 쩝...
☞ 강렬한 연기로 오래도록 기억되는 배우, 커트 러셀
<분노의 역류>에서 눈 주위 경련을 일으키는 인상적인 연기로 커트러셀은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 뒤로 그의 영화가 나올 때마다 꼬박꼬박 챙겨보기는 했는데 기대에 부합하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그 강렬한 연기는 오래도록 그의 영화 앞에 나를 붙들어 매는 주문 같은 작용을 했다.
“<분노의 역류>에서 소방관 역할이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전직 소방관을 나온다. 이건 우연의 일치다. 의도된 설정은 아니다”
“<포세이돈 어드벤쳐>에서 진 해크만 역할을 내가 한 것이다. 진 해크만과 나의 공통점은 둘 다 나이가 많이 들었다 정도만 비슷할 뿐, 캐릭터의 성격과 영화의 스타일은 완전 다르다.”
많은 이들이 원작에서의 진 해크만을 기억하기에 피해갈 수 없는 의례적인 질문을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다. 노년의 길로 들어선 할리우드 베테랑 배우에게 받은 인상은 역시나 처음처럼 지혜롭다는 거였다.
“물속에서 촬영했기 때문에 감전의 위험과 심리적 불안감이 연기하는 데 가장 큰 적이었다.”
수많은 작품을 찍었지만 <포세이돈>만큼 힘든 작업도 없었나보다. 그러면서도 볼프강 패터슨 감독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렇지만 커트 러셀을 가장 잘 아는 감독은 따로 있다. 커트 러셀은 존 카펜터 감독과 무려 5번이나 영화작업을 같이 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존 카펜터 감독과 작업을 같이 하고 싶다. 설사 영화를 안 찍는다 하더라도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자신에게 질문 하나를 던지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한국기자단을 쭉 둘러보면서 일일이 눈을 마주치는 커트 러셀의 섬세함은 역시나 오래도록 그의 팬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의 다음 작품이 혹시나 시원찮더라도 평소와 다름없이 극장표를 끊고 있을 나를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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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_ 최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