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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호’와 ‘안성기’는 1980년作 <바람불어 좋은 날>이 상영되던 24일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간직된 오래 묵은 영화를 영화의 나이보다 어린 관객들이 보러 온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이영호는 ‘이장호’ 감독의 친동생이자 고운 얼굴선을 가진 미남자다, 26년이 지나 이제는 머리에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눈에 많이 띄어도 그의 얼굴에서 만큼은 세월의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변한 건 오직 그가 우리의 얼굴을 못 본다는 것 뿐. ‘이영호’는 <바람불어 좋은 날>을 찍은 이후, 점차 시력을 잃어 지금은 앞을 못 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일찍 알았다면 고칠 수 있었을 텐데 시대를 고민하고 영화를 사랑했던 한 청년은, 지금은 관객이 목소리와 몸으로 느껴지는 현장의 분위기로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생생히 기억해낸다.
‘김영진’ 평론가와 배우 안성기의 도움으로 무대에 오른 ‘이영호’는 매사 명쾌한 대답과 솔직함으로 좌중을 주도했다. 안성기 또한 특유의 포근한 말솜씨로 20년 전의 한국영화계의 현실을 생생히 이야기 해줘 젊은 영화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낯설지만 투박한 영화를 현재에 체험한 이 특이한 경험은 비단 이날 모인 소수에게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시네마테크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좀 더 다양한 영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기 애쓰는 곳이다. 검증받은 작품을 엄선해 상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영화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형성하고 영화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흡수 하는 곳, ‘서울아트시네마’
지난 19일부터 28일까지 스타 감독과 배우가 후원하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일주일간의 生生! 영화체험 기간이 아쉽게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 동안 박찬욱, 김지운, 류승완, 오승욱, 김홍준 감독과 평론가 정성일, 김영진 그리고 배우 문소리와 황정민은 자신들을 시네마테크의 친구라 자칭하며 영화제 기간 동안 근면성실한 태도로 영화를 보고 관객들을 맞아들였다. 스타를 보기 위해, 좋아하는 감독을 보기 위해 모여든 관객들은 스타와 함께 오래된 영화를 경험한 이 낯선 체험에 곧 익숙해졌고 시네마테크에 관련한 편견과 오해를 자연스레 벗어 던졌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근 100년 전의 영화를 관람한, 서울아트시네마를 처음 찾은 낯선 관객들이 이곳에서 다음에 열리는 회고전과 영화제를 방문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멀티플렉스에서 영화를 주로 소비했던 그들에게 이 작은 공간에서 받아들인 과거의 영화들은 근래에 본 상업영화들보다 더 선명한 기억을 남겼을 것이다.
김영진 평론가의 탁월한 선택 덕분으로 영화 <바람불어 좋은 날>이 현대의 젊은 관객들을 만나, 재발견된 배우 ‘이영호’는 시네마테크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대한민국의 관객 수준이 향상되고 영화 제작하는 사람의 수준이 향상되려면 시네마테크는 지금보다 더 활발하게 운영되어야 한다.”
이영호 선생님은 더 이상 영화를 눈으로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영화로 인해 건강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영화를 느끼는 그의 말은 시네마테크가 한국영화계에 얼마큼 필요한 존재인지를 다시금 곱씹게 만들어준다. 대배우 ‘안성기’ 또한 시네마테크의 중요성을 남다르게 인식한다. 데뷔한지 50년이 넘은 안성기에게 영화를 잊는 다는 건 과거와 미래를 한꺼번에 잃은 것과 마찬가지 일게다.
“(영화가) 앞에 것만 있고 과거가 없어지는 게 너무 안타깝다. 시네마테크는 과거를 기억해 미래의 한국영화를 볼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좋은 한국영화들이 많은데 한국영화계는 과거의 우리영화를 너무 빨리 기억 속에서 지우려고만 한 건 아닌지 이번 영화제를 통해 내 스스로 먼저 반성해 보기도 했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남국재견>을 끝으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과거의 시간으로 떠나버렸다. 열혈 영화광 ‘오승욱’ 감독은 마지막까지 행사장을 찾아 앞으로의 더 오랜 영화적 만남을 위해 작은이별의 말을 남겼고, 영화는 다시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로의 여행을 작은 공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시작한다.
취재: 최경희 기자
사진: 서울아트시네마, 최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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