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떼끄의 프렌즈임을 자칭하는 ‘오승욱’ 감독은 모두가 인정하는 서울아트시네마 VIP단골관객이다. 그가 2000년에 <킬리만자로>를 찍고 지금까지 후속작을 만들지 않는 이유가 영화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어 그렇다는 소문이 돌 정도니, 이 못 말리는 영화광은 아마도 당분간 서울아트시네마에 자주 출몰할 듯하다.
짱깨영화에 남다른 애정과 재미난 말빨로 DVD 코멘터리 캐스팅 일순위인 ‘오승욱’ 감독이 추천한 영화는 <황야의 무법자>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석양의 갱들>이다. 블록버스터급 재미를 보장하는 당 영화 시네마떼끄의 든든한 지원자이고픈 무비스트가 전격 초이스한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대표작이라면 <달러 삼부작>이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를 꼽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겠지만, 20세기 초 멕시코 혁명을 배경으로 좀도둑 후안과 IRA출신의 폭파전문가 숀의 우정을 그린 <석양의 갱들> 역시 레오네식 웨스턴의 매력과 감독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함께 담아낸 흥미로운 영화다. <석양의 갱들>은 전/후반부가 이질적인 두 개의 플롯이 구성되어 있어 마치 두 편의 영화가 하나로 연결된 듯 보인다.
전반부가 위력적인 다이너마이트에 얽힌 해프닝과 그를 이용하여 은행을 털려고 하는 계획을 코믹하게 묘사했다면, 후반부는 피로 얼룩진 멕시코 혁명의 참상과 피지배계급의 저항을 스펙터클한 총격씬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와 같은 이질성은 내정된 감독이 중도에 레오네로 교체되었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지만, 동시에 코믹함이 강조된 스파게티 웨스턴의 외피에 당대의 현실에 대한 감독의 정치적 코멘트를 담아내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오쩌둥의 혁명론을 인용하며 시작된 영화가 시종일관 지배계급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석양의 갱들>은 일견 좌파성향의 감독이 전세계를 뒤흔들던 68혁명의 물결에 대한 지지선언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무솔리니 체제와 2차대전을 직접 경험한 레오네는 폭력에 기댄 사회변혁에 부정적인 입장이었고, 정치적으로 과격했던 당대의 정치적 스파게티 웨스턴이나 고다르의 영화들에 대해서도 일관되게 비판적 입장을 취해 왔다.
잔인한 학살씬이 몇 번이나 등장하고, 정부군 장군을 나찌처럼, 혁명가를 기회주의적 배신자처럼 묘사하는 <석양의 갱들>은 정치적 명분하에 자행되는 모든 종류의 폭력에 대한 감독의 염증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석양의 갱들>에서 폭력의 쾌감은 사람과 사람이 총을 맞대고 결투하는 장면이 아니라, 대량의 다이너마이트로 다리를 파괴되고 열차끼리 충돌하는 스펙터클에서 나온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제목이 < A Fistful of Dynamite >인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석양의 갱들>가 레오네의 영화 중 가장 정치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스파게티 웨스턴 고유의 매력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눈에 대한 클로즈업과 빠른 편집의 총격씬, 그리고 엔리오 모리꼬네의 턱없이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선율 등은 레오네식 웨스턴의 매력을 만끽하는 데 충분하다. 여기 다시 한 번 비열한 불한당들이 펼쳐지는 복수와 배신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그 점은 배경이 서부이거나 멕시코 혁명의 한복판이거나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