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안에서 서로에게 은밀한 유혹을 주고받았던 한 여자(성현아)와 한 남자(조동혁)가 그날 다른 장소에서 우연히 또 마주친다. 곧 이어 햇살 짱짱하게 들이닥치는 빈 건물 안에서, 그것도 안락한 소파 하나 준비되지 않은 곳인데도 불구하고, ‘무릎 까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함께 보는 이의 걱정을 사는, 격정적인 포즈로 마지막 절정을 누린다.
7년 사귄 남자와 결혼을 앞둔 여자의 단 하루 동안의 은밀한 유혹과 만남을 담은 김태은 감독의 <애인>은 사실 멜로보다 에로영화식의 유치한 설정(또는 화면구성)이 적잖이 눈에 띄는 영화다. 멜로와 에로 사이에서 주인공 여자와 남자는 아슬아슬하게 사랑의 줄타기를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애정행각은 고급멜로의 또 다른 이름, 격정멜로로 치닫지 못한다.
여자의 심리를 제대로 베껴보겠다는 야심찬 의도가 농후했던 쌈박한 포스터와는 달리, 영화 자체의 시선은 남자의 성적인 판타지 내에서 머무른다. 간혹 가뭄에 ‘콩’나듯 보이는 여자의 심리도 남자의 그 환상 안에서 이해되는 수준이랄까? 그럼에도 <애인>이 멜로를 가장한 질 나쁜 에로영화로 남지 않은 이유는 요즘 범람하는 섹스채널의 에로비디오의 장점을 잘 취합해 간드러진 ‘후끈함’을 전파하기 때문이다. 마치, 대머리 아저씨가 집권하던 80년대의 그 유명한 누님들의 불륜 X무비를 보는 기분이랄까?
‘멜로’라고 억지 주장하기보다 차라리 당당하게 ‘에로’임을 밝혔다면 <애인>은 분명 2005년 현재 다른 의미의 영화로 평가받았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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