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빨갱이’와 ‘양놈 앞잡이’로 부르며 피터지게 싸워대던 1950년 어느날, 전쟁이 터진 지도 모르고 평화롭게 살던 강원도 산골 ‘동막골’에 북한군과 남한군 미 연합군이 모여든다. 며칠째 산속을 헤매던 국군 일행은 약초를 캐던 사내를 발견하고 경계하며 총을 겨누지만 “뭔 사람이 아는 체를 그리해요? 낯짝에 작대기는 들이대고….”라는 말만 듣는다.
오발된 수류탄이 옥수수 창고에서 터져 순식간에 팝콘이 되어 하늘에서 떨어지자 “이게 모냐? 가락지냐? 그거 당기니까..눈이 오네” 라고 말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동막골에서 이들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결론적으로 이 세 부류의 군인들은 각자의 군대에서 낙오자에 지나지 않는다. 표대위 일행은 각자의 사연으로 군대를 탈영했고 인민군 리수화 일행은 부상자는 사살하고 이동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무시하고 끝까지 같이 가다 매복한 국군의 공격에 팀원 전체를 잃었던 것.
알 수 없는 이유로 동막골에 추락한 미 전투기 조종사 스미스 또한 부상당한 몸으로 어느곳에도 속하지 않은 채 거리를 둔다. 이들이 화합하는 결정적 계기는 감자밭을 헤치는 맷돼지를 잡으면서다. 동막골 사람들의 유일한 골칫거리였던 맷돼지를 잡으면서 서로 대립하던 그간의 감정을 누르고 놀라운 팀웍을 보여준다.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인민군 소년병이 돌멩이를 던져 방향을 틀고, 표대위가 깔리기 일보 직전인 그를 감싸 안는다. 마을 사람들이 밧줄을 걸어 중심을 잃은 멧돼지를 공격하기 위해 목발로 짚고 있던 막대기를 던져 주는 건 ‘스미스’고, 결정적으로 막대기를 꺾어 멧돼지의 목에 꼽는 건 인민군 ‘리수화’다.
이들은 창고가 다 채워지면 여길 떠나야 하는 외부인이지만 동막골 사람들은 이들을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인다.결국엔 동막골이 자신들로 인해 폭격 당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이들은 힘을 합쳐 동막골이 아닌 다른 지점으로 유인하기 위해 합심하면서 ‘전쟁’이란 소재를 바탕으로 인간의 순수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이미 CF에서 그 천재성을 인정받은 박광현 감독은 입봉작 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만큼 매끄러운 영상에 감동까지 버무려 놓았다. 감초 역할을 하는 임하룡의 연기는 친삼촌 같은 푸근함으로 극 전체를 아우른다.이 영화의 최대 장점은 각자의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 배우들이 한 명도 없다는 것. 묵직하게 극을 이끄는 주연배우들을 살려주는 건 새로운 ‘광녀’캐릭터를 만들어낸 강혜정과 마을 사람들로 나오는 조연 배우들이다.
산 너머 터지는 폭탄들을 생전 처음 보는 불꽃놀이마냥 신기하게 쳐다보는 마을 사람들과 수십대의 비행기에서 쏟아지는 폭탄을 두려움 없이 올려다 보는 배우들의 표정을 오버랩 시키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각본을 쓴 장진 감독의 천재성이 다시 한번 느껴진다.
한가지 아쉬운점은 멧돼지를 잡는 장면을 지나치게 슬로우로 보여줘 판타지적인 요소가 강하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웃고 즐기기엔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너무 잘 풍자한 듯한 느낌이 지워지지 않아 영화 보는 내내 웃지만 결국 남는 감정은 ‘슬픔’뿐이다.